[스페셜1]
저런 것까지 앓아가며 사는구나, 보여주자는 거였다
2014-10-21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화장> 임권택 감독

잘 알려진 대로 임권택 감독은 김훈의 소설 <화장>을 원작으로 동명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화장>은 화장품 회사의 중역 오 상무(안성기)가 투병 중인 아내(김호정)에게 헌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사의 젊은 여직원 추은주(김규리)에게 몸과 마음이 끌려 갈등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힘든 거요, 만족을 못하는 거요.” 임권택 감독은 인터뷰 도중 종종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이 곧 그가 이번에도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는 바로 그 뜻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작품이 완성된 지금, <화장>을 만들어온 과정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100편 넘게 해온 감독이기 때문에 기왕에 찍어왔던 영화들 바깥으로 빠져나와 다른 것으로 보이는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했다. 원작 소설의 문장이 지닌 힘, 이런 걸 영상으로 담아내보자 하는 것이었다. 찍어가면서 이런 것들을 해결해야 했다. 완고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은 채 촬영을 시작했기 때문에 수도 없이 많은 수정을 거쳤다. 기왕에 짜놓은 어떤 틀을 부수고 달리해보기도 하고. 하지만 너무 힘들었다, 그게.

-각본 송윤희, 각색 육상효, 이렇게 되어 있는데, 각본과 각색의 주안점은 어떤 것이었는지.
=송윤희 작가는 의사 출신이다.(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의 감독이기도 하다.-편집자) 의사다운 전문 지식을 갖추고 영화에서 그 장기를 잘 발휘했다. 송윤희 작가가 미진할 수도 있는 다른 쪽을 잘 채워준 것이 육상효씨 역할이었다.

-“나는 자연을 많이 찍어온 감독인데 이번 경우는 병원, 회사, 장례식장이라는 한정된 실내 공간을 많이 찍게 되어서 난감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다.” 촬영 종료 직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래도 도리 없이 그 장면들을 찍을 수밖에 없는 거다. 병원 안에서라면 죽어가는 환자로서의 아내와 힘겹게 병 수발하는 남편의 관계를 찍을 수밖에 없는 거고. 나는 극을 진행하는 가운데에도 자연이나 또 다른 배경들을 시각적으로 다채롭게 펼쳐서 관객을 끌어가는 그런 감독인데 갑자기 실내 장면들만 찍는 건 도무지 쉽지가 않은 거다. 그래도 그런 거를 우리 김형구 촬영감독이 잘 극복해냈다.

-극중 다양한 시간대를 표현할 때 주요하게 의중에 두었던 점들은 어떤 것인지.
=이 영화는 어떤 흐르는 시간의 순서를 따르는 영화가 아니므로 이날의 이야기가 불쑥 떠오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또 저날의 이야기가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시간상으로 두서없이 벌어지는 그런 것을 찍자는 것이었다. 한쪽으로는 아내의 병 수발을 하면서 또 한쪽으로는 한 젊은 여자에게 치우쳐가는 오 상무의 상념인 거다.

-첫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상여가 나가는데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붉은옷을 입은 추은주가 상여를 따라가고 있다.
=이런 거는 현실이 아니지 않은가. 오 상무가 아내와 추은주 사이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총체적 감정인 거지. 어떤 관념으로 이루어진 거라 볼 수도 있는 거고. 아내의 죽음 행렬을 추은주가 따라간다는 것은 있을 리 없는 일이지만 이게 바로 아내와 추은주 사이에서 갈등을 앓는 오 상무의 상인 거다. 꿈일 수도 있고 상상의 세계일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것을 찍어냄으로써 두 사람 사이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오 상무의 마음을 그릴 수 있는 거다. 그게 시작으로 인상적이어서 썼고.

-추은주에 대한 오 상무의 성적인 환상 장면에서 오 상무의 아내가 있는 병원 장면으로 도약하는 것 같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병원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내가 죽었으면 좋겠지!” 하고 화를 낸다.
=그건 이런 거다. 아픈 아내라고 해서 남편이 다른 여자 때문에 마음을 앓고 사는 그런 기미를 모르겠는가. 모른다면 그게 거짓이지. 그런 게 아내 입장에서 계속 쌓여 있다가 마침내 터져나오는 거지.

-앞서 말한 내용들과 전부 연관이 있겠지만, 영화의 초점이 오 상무의 심리적 혼란과 갈등에 많이 맞춰져 있다.
=병으로 누워 있는 아내를 두고도 다른 여자에 대한 상념이 달라붙는 걸 떨치지 못하는 오 상무의 그 마음의 추이를, 살면서 드러내기 부끄러운 바로 그런 것을 총체적인 영상으로 보여주어서 아, 인간이라는 게 저런 것까지 앓고 살 수밖에 없구나 하는 걸 보여주자는 거였다. 이런 갈등을 앓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그 인간의 조건, 그게 예쁘게 찍혔어야 하는데, 보기에 어떨지 모르겠다.

-<화장>은 내년 초 개봉예정인데, 개봉을 기다리는 지금 마음은 어떤지.
=작살난 영화도 있고(웃음), 어쩌다가 히트작도 더러 있고 해도, 늘 불안하다. 영화가 돈이 들어가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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