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준비 끝!
2014-12-02
글 : 김정원 (자유기고가)
20년 만에 돌아온 전설의 바보 콤비 <덤 앤 더머 투>
<덤 앤 더머 투>

그러니까 5년 전이었다, 이 바보 같은 짓이 시작된 건. 호텔에서 TV를 보던 짐 캐리는 흥분해서 <덤 앤 더머>의 감독 바비와 피터 패럴리 형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방금 <덤 앤 더머>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는데, 끝내주더라고요. 우리, 이거 한번 더 해야겠어.” 그리하여 해리와 로이드, 1편으로부터 20년이 지나 지천명의 나이를 넘겼어도 여전히 나무랄 데 없는 바보와 그보다 더 바보가 다시 찾아왔다. 털 달린 강아지 모양 밴을 되찾아, 추억의 사운드트랙 <Boom Shack-ALak>을 타고, 그들이 질주한다. 아무리 멍청해도 죽으란 법은 없는 그들만의 천국을 향해.

1994년에 개봉한 <덤 앤 더머>는 한편의 영화 이상으로 남았다. 미국에선 4주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고 국내외 흥행 수입은 2억5천만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또 봤고, ‘덤 앤 더머’는 누군가 멍청한 짓을 할 때마다 쓰이는 보통명사가 되었으며, 중국에선 가장 많이 팔린 해적판 DVD코미디영화라는 소문이 났다. <덤 앤 더머 투>의 배급사 유니버설에 따르면 이 속편의 첫주 관객의 25%는 <덤 앤 더머>를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25살 이하의 젊은이들이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받았고 톱스타 짐 캐리가 부추겼다고는 해도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20세기 스타일의 코미디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심지어 짐 캐리는 자기가 진짜 전화를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딴청을 피우는 중이다). 전설이란 흘러간 옛이야기일 뿐이니 더럽고 파렴치한 ‘화장실 유머’의 시대는 오래전에 작별을 고했다. 제작사는 선뜻 지갑을 열지 않았다. 패럴리 형제도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영화를 보러 올 것인가. 그 질문에 고민하던 형제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해리와 로이드처럼, 이제 중년이 되었을 관객도 자라지 않았다고, 여전히 멍청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밀고 나가기로.

과연 <덤 앤 더머 투>는 후안무치하다. 그토록 오랜 세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배가 나오고 머리가 빠지고 주름이 늘었을 뿐, 하는 짓은 여전한 해리와 로이드를 뻔뻔하게 들이민다. 안녕, 어떻게 지냈어? 우리야 뭐 항상 똑같지, 라고. 그리고 진짜 똑같다, 변한 게 없다.

미국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마치고 20년이 지난 현재, 해리(제프 대니얼스)와 로이드(짐 캐리)는 치명적인 병에 걸린 해리에게 신장을 기증할 혈육을 찾고 있다. 문제는 자식도 없는 외아들 해리가 입양아라는 것. 하지만 부모님 집에는 10대 시절 해리가 가출한 다음에 도착한 그의 여자친구 프리다 펠처(캐슬린 터너)의 엽서가 남아 있었다. 임신했으니 연락하라는 엽서에 희망을 걸고 프리다를 만난 해리와 로이드는 그녀가 낳은 아이 페니(레이첼 멜빈)가 갓난아기 때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신장을 찾아, 아니 잃어버린 딸을 찾아, 해리와 로이드는 두 번째 여행을 떠난다.

나이가 무색한 그들의 웃픈 유머

패럴리 형제는, 저명한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처럼 예외가 있기는 했어도, <덤 앤 더머>가 대체로 혹평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누가 그랬어요, 이건 당신 생에 최고로 멍청한(dumbest) 영화가 될 거라고. 그래서 생각했죠.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이 영화 제목이 괜히 <덤 앤 더머>겠어?” 하지만 이번엔 훨씬 심하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이 영화는 한 여섯번쯤 웃기는데 (시나리오작가가 여섯명이니까) 작가 한명당 한번씩 웃긴 거다”라고 썼다. 반면 제대로 웃은 사람도 있다. <시카고 리더>는 “얼간이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온 50대 스타들을 보는 건 다소 당혹스러운 일이다. 옛날에 좋아했던 밴드의 재결합 공연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덤 앤 더머> 속편은 충분히 제 몫을 하며 웃기는 구석이 있다.”

나이 먹은 남자들이 30대에 했던 짓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걸 보는 건 분명 편할 수만은 없다(심지어 그들은 서른일 때도 열살짜리보다 유치하고 무례했다). 해리와 로이드는 아직도 소변과 대변과 방귀로 장난을 치고, 불쌍한 눈먼 소년 빌리를 괴롭히고, 핫도그를 한입에 쑤셔넣으려고 케첩과 머스터드를 뚝뚝 흘리며 곡예를 하고, 미녀들을 보면 눈을 빛낸다, 그 여자들을 덤불에 집어 던지고 싶어서.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악당이 불쌍할 지경이다. 저런 녀석들하고 같은 차를 타고, 거침없이 내뿜는 암모니아 가스에 중독된 채 엘패소까지 가야 한다니, 댁도 참 안됐어.

그래도 해리와 로이드는 즐겁다. 그게 해리와 로이드다. 동전 한닢 없는 맨몸으로 자전거보다 작은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신이 났던 그들은 이번엔 뼈대만 남은 밴을 타고서도 아무 근심 없이 유쾌하기만 하다. 어쨌든 운전대는 무사하고 바퀴는 굴러가니까. 무시무시하게 낙천적이다. 처음엔 한심하지만 보다 보면 왠지 나도 저렇게 멍청했으면 싶어진다.

<에이스 벤츄라2>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속편에 출연하지 않았던 짐 캐리의 마음이 움직인 것도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실제짐 캐리는 우울하고 소심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피터 패럴리는 말했다. “짐 캐리가 로이드를 연기할 때면 그는 짐 캐리가 아니라 그냥 로이드다. 그리고 로이드가 된 짐 캐리는 기분이 좋아진다. 행복해진다.”

원래 심각한 배우지만 짐 캐리가 우겨서 <덤 앤 더머>에 출연한 제프 대니얼스도 해리와 로이드를 진심으로 좋아한다(패럴리 형제는 제프 대니얼스를 쓰고 싶지 않아서 당연히 거절하겠거니 기대하며 출연료 5만달러를 불렀지만, 그가 대뜸 승낙하는 바람에 당황했다). “나는 해리가 잘 살고 있을 거라 상상하곤 한다. 언젠가 우리가 만나서 영화도 보고 안부도 주고받겠거니 하고.” 그래서 언제라도 속편에 출연하고 싶었지만 물어볼 때마다 패럴리 형제는 대답했다. “짐 캐리가 시간이 나야지.”

<덤 앤 더머 투>

여전히 바보라서 행복해요

이기적인 로이드와 당한 만큼 갚아주는 해리, 그들과 얽히면 남는 것이라곤 만신창이 몸뚱이와 너덜너덜해진 영혼뿐.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걸까.

패럴리 형제는 해리와 로이드가 마음 깊은 밑바닥에선 착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그렇다면 마음 깊은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파봐야겠지.) “이 영화 제목을 봐요. 멍청하다는 거지 비열하다는 게 아니라니까.”

그 말대로 해리와 로이드는 착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비열하지는 않다. 마음을 숨기고 숨기고 그래도 불안해 다시 한번 숨기는 세상에서 해리와 로이드는 어찌나 투명한지. 그들은 체격은 우람해지고 목소리는 걸걸해진 프리다를 못 알아보고 아저씨라고 부르는데, 그건 뚱뚱한 여자를 놀리는 게 아니다. 진짜 아저씨로 보여서 그러는 거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동창의 부모 앞에서 그가 탔던 오토바이 얘기나 하고 앉아 있는데, 그것도 그냥 생각이 나서 그런 거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떠오르는 대로 행동한다. 한 꺼풀을 벗기고 두 꺼풀을 벗겨도 해리와 로이드는 첫눈에 보았던 그대로일 뿐이다.

변하지도 않는다. 패럴리 형제가 그리듯이 “직업도 없고 결혼도 못했고 20년 전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사이 우리는 변했다. 누군가가 거대한 응가를 낳는 바람에 꽉막힌 학교 화장실 변기를 구경하며 낄낄거리던 10대 소년은 옆칸 사람이 나갈 때까지 소리를 죽이며 분출을 자제하는 점잖은 30대 샐러리맨이 되었다. 맨손으로 땅을 파며 놀다가 그 손을 씻지도 않고 만두를 집어먹던 꼬마는 세균의 존재를 알아버린 20대로 자랐다. 우리는 모두 아는 것이 많아졌다. 그래서 조심할 것도, 보여 주지 못할 것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똑똑해진 건 아니다. 땅을 파서 묻어버리고 싶은 어린 시절 실수를 20년 동안 단 한번도 되풀이한 적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짐승은 한번 걸린 덫에 다시 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러면 그게 짐승인가 도사지. 정신을 차리면 세상 모든 것이 변했는데 나만 그대로인 것 같아 부끄럽다. 넥타이 매고 만난 친구가 어색하지만 나라고 다를 것이 없다. 슬리퍼 끌고 다니던 동네 백수가 하이힐 신고 화장한 직장인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서로 어른인 척하고 있다.

그래서 해리와 로이드가 왔다. 그들에게만 얼어붙었던 시간을 단박에 녹이면서 나랑 놀자고 천연덕스럽게 부르고 있다. <덤 앤 더머 투>의 첫 부분에서 코마 환자인 척하며 오줌 주머니를 차고 있는 로이드를 보면 기억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덤 앤 더머>에서 맥주병 댓개를 채우고도 남았던 그의 엄청난 방광의 용량이. 패럴리 형제는 <덤 앤 더머>의 팬들은 그처럼 작은 것들을 기억한다고 했다. “화장실 장면 같은 건 정말 웃겼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은 그거 말고, 수만 가지 다른 사소한 농담들을 이야기하더라고요. 목이 떨어진 잉꼬 같은.”

그러므로 <덤 앤 더머 투>는 추억이고 향수이다. 짐 캐리는 “제프 대니얼스와 패럴리 형제와 한번 더 패거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함께 놀고 싶었고요. 나이를 먹으면 그런 것들이 중요해지는 법이거든요”라고 말했다. 뭔가 재미있고 바보 같은 짓들을 하고 싶었다고. 이건 또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패럴리 형제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해리와 로이드가 가진 것이라곤 서로뿐”이다. 저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물고 뜯고 때리고 싸워도 결국엔 “네가 맞아”, “아니야, 괜찮아” 하는 해리와 로이드는 언제나 해피엔드. 워낙 멍청해서 불행의 씨앗이 와도 몰라보고 그냥 보내니, 머쓱해진 불행이 울고 간다.

욕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덤 앤 더머>는 새로운 코미디의 스타일을 창조했다. 하지만 그 스타일을 되풀이하는 <덤 앤 더머 투>는 빈말로라도 좋은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20년 만에 만난 동창이 그 시절 유행하던 패딩 조끼나 입고 나왔다며 나무랄 수 있을까. 아무 때나 놀아주는 친구를 만나 한데 모은 100원짜리 동전으로 소주와 새우깡을 사 먹던 시절, 우리에겐 좋은 것들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놀리곤 했다. “너네 지금 뭐 하냐, 덤 앤 더머냐?

<덤 앤 더머 투>

※<덤 앤 더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더 웃긴

20년 동안 <덤 앤 더머>를 한번도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한 가이드

프리다 펠처

<덤 앤 더머>에서 해리는 10대 시절 좋은 시간을 보냈던 여자친구 프리다 펠처가 누군가와 바람을 피웠다고 회상한다. 그 자식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고. <덤 앤 더머 투>의 프리다가 그 프리다이고, 바람을 피웠던 상대도 부분적으로 밝혀진다. 뒷모습만 등장하는 젊은 시절 끝내주는 프리다는 <덤 앤 더머>의 팬이었던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했다.

빌리

해리와 로이드의 이웃인 눈먼 소년 빌리는 20년 전에 로이드에게 속아 죽은 새를 25달러 주고 샀다. 그것도 떨어진 머리와 몸통을 테이프로 이어 붙인 채로. 패럴리 형제는 페이스북을 뒤져서 연락이 끊긴 빌리 역의 아역배우 브래디 블룸을 찾아냈고 <덤 앤 더머 투>에 데려왔다. 아주 미남이 되었다.

메리 샘소나이트

해리는 이제 그만 메리 샘소나이트를 잊으라고 로이드를 설득한다. 그 옛날 <덤 앤 더머>에서 로이드의 마음을 사로잡아 로드아일랜드에서 아스펜까지 대륙을 횡단하게 만들었던 그녀의 이름은 메리 스완슨. 하지만 메리만 남기고 성을 까먹은 로이드는 이름표라도 없나 하고 그녀가 두고 간 가방을 살피다가 뜻한 바대로 뭔가를 찾아냈다. 그게 바로 샘소나이트, 메리 이름이 아니라 가방 이름.

강아지 밴

20년 전에 로이드는 해리가 모은 돈을 몽땅 털어 강아지 모양으로 장식한 밴을 고물 오토바이와 바꿔 먹었다(그러고도 잘했다고 해리한테 칭찬받았다). 페니를 찾으러 가다가 어디서 많이 본 동네 같다면서 로이드가 달려간 곳이 그때 밴을 바꿨던 꼬마가 살던 동네. 그렇게 해리는 강아지 밴을 다시 만난다. 그런데 자동차 열쇠는 어디서 났을까.

트럭 운전사

해리와 로이드는 <덤 앤 더머 투>가 끝날 무렵 길에서 만난 광포한 트럭 운전사에게 쫓긴다. 그 남자 ‘씨배스’, 다시 말해 농어씨는 이 바보 커플과 구원(舊怨)으로 얽힌 사이. <덤 앤 더머>에서 해리한테 소금통으로 맞고 로이드한테 속아 밥값을 뜯긴 적이 있다. 천하에 다시 없는 바보들에게 속은 원한이 얼마나 깊었던지 그는 20년 만에 스쳐 지나가는 얼굴만 보고도 단번에 그들을 알아보고 추격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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