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프랑스영화에 찬사를
2015-06-09
글 : 장영엽 (편집장)
취재지원 : 최현정 (파리 통신원)
글 : 김성훈
제68회 칸국제영화제 결산… <디판> 자크 오디아르 황금종려상 수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뱅상 랭동.

제68회 칸국제영화제가 지난 5월24일 막을 내렸다. 이번 영화제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시상식이 열리는 폐막 당일에 마련되어 있었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디판>의 자크 오디아르가 모두를 놀라게 했고,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어왔던 <캐롤>의 토드 헤인즈는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으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올해 칸을 찾은 수많은 영화인들의 희비가 엇갈렸던, 그 드라마틱했던 순간을 전한다. 시상식에 대한 단상과 더불어 올해 영화제에 대한 전반적인 면모를 살펴보았고, 후반부에 상영된 한국영화 <마돈나>에 대한 현지 반응도 함께 실었다. 영화제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던 다양한 영화인들의 코멘트는 올해 영화제의 흐름을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씨네21>이 직접 만난 경쟁부문 감독 네명과의 만남에도 주목해주시라. 이번 지면에서는 유럽•영미권의 거장과 중견감독들과의 인터뷰를 엄선해서 실었다. 미리 예고하자면, 올해의 칸에 대한 리포트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다음주에는 칸영화제 후반부 화제작 리뷰와 아시아 거장 3인방(허우샤오시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지아장커), 주목할 만한 신예(저스틴 커젤과 요아킴 트리에) 감독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축제는 끝났지만, 12일 낮과 밤 동안 칸에서 목격한 영화에 대해서는 더 오랫동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라즐로 네메즈.

“오늘 저녁, 프랑스영화는 칸과 전세계에서 빛났다.” 프랑스 총리 마뉘엘 발스는 칸국제영화제 주요 부문 수상결과가 발표된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디판>의 자크 오디아르부터 여우•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에마뉘엘 베르코(<나의 왕>)와 뱅상 랭동(<시장의 규칙>), 그리고 공로상을 수상한 아녜스 바르다까지, 올해의 칸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얻은 프랑스 영화인들을 기념하기 위한 한마디였다. 다른 해였다면 마뉘엘 발스의 이 말은 자국 문화축제에 대한 관심을 피력하는 정치인의 의례적인 수사로 들렸을 수 있다. 하지만 칸영화제 시상식이 열린 지난 5월24일만큼은 달랐다. 그 자리는 프랑스 총리의 말마따나 자국영화를 위한 축배의 자리나 다름없었다. 종려나무 무늬가 새겨진 시상식 무대에서, 프랑스 영화인들은 종종 호명되었고 자주 웃었다. 문제는 이 결과를 석연찮게 여기는 수많은 시선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시상이란 없다. 하지만 보다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시상도 있다. 올해의 칸이 내린 선택은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는 얼마간 실패한 것 같다. 제68회 칸영화제 시상식을 지켜본 전반적인 소감이다.

수상자들이 함께 무대에 섰다. 가운데 상패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자크 오디아르.

“자크 오디아르, 마스터이자 완벽한 감독”

시상식 당일 전세계에서 모여든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가장 놀라움을 줬던 ‘사건’은 <디판>을 들고 영화제를 찾은 프랑스 감독 자크 오디아르의 황금종려상 수상이었다. 지난 5월21일 기자시사에서 첫 공개된 이래, <디판>은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지는 않았다. 자크 오디아르의 이 신작은 난니 모레티의 <내 어머니>나 토드 헤인즈의 <캐롤>처럼 영화제의 큰 흐름을 주도한 작품도 아니었고 라즐로 네메즈의 <사울의 아들>처럼 뜨거운 논쟁 거리를 내포하고 있지 않았으며 허우샤오시엔의 <섭은낭>처럼 미학적 성취를 거둔 작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황금종려상 예측의 중요한 기준이 되곤 하는, 경쟁부문의 다른 영화와 차별화되는 특별한 매혹의 요소가 <디판>에는 부족했다. 외신들이 <디판>의 황금종려상 수상에 놀라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표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가디언>은 “자크 오디아르는 마스터이자 완벽한 감독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의 가장 훌륭한 영화라고는 볼 수 없다. 그 점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전했고, <버라이어티>의 저스틴 창 평론가는 이 영화의 능숙한 장르 운용과 뛰어난 연기를 장점으로 꼽으면서도 “우리가 칸에서 목도하길 원하는 뛰어난 예술성은 부족한 작품”이라는 평을 남겼다. 프랑스 주간지 <레 인로큡티브르> 또한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이야기가 너무 설명적이고 단순한 논리를 따르고 있다”면서 <디판>이 “절반의 설득력을 지닌 영화”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독일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캐롤>이 아닌 <디판>에 황금종려상을 안긴 코언 형제의 선택을 보면서 우리는 심사위원들이 같은 나라에서 온 감독들에게 상을 주는 걸 피하려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는 말로 심사위원단의 선택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루니 마라의 여우주연상을 대리 수상한 토드 헤인즈.

올해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코언 형제는 “<디판>에 황금종려상을 주겠다는 결정은 매우 빨리 내렸다”면서 “우리는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황금종려상 선정 이유에 대한 코언 형제의 이 답변은 자크 오디아르의 범작 <디판>이 왜 올해의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상을 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힌트가 되어준다. <디판>은 스리랑카에서 정부군에 맞서 전쟁을 치르다 프랑스로 망명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디판’이라는 이름을 지닌, 수년 전 죽은 외국인의 여권을 통해 프랑스에 왔고 안면도 없는 사람들과 ‘가짜 가족’이 되어 그곳에서의 위태로운 삶을 이어나간다. 21세기 프랑스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이민과 망명의 이슈를 조명하는 자크 오디아르의 영화는 이 문제를 등장인물 간의 러브 스토리와 후반부에 장전된 강렬한 액션 시퀀스에 접목해 보다 보편적인 단계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영화적 선택은 올해의 칸이 가장 주목하는 테마 중 하나였던 ‘동시대 유럽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영화의 역할’과도 맞닿아 있다. 프랑스 잡지 <슬레이트>는 “코언 형제를 앞세운 칸의 심사위원단이 프랑스 대도시 근교의 폭력을 다룬 영화(<디판>)와 끔찍한 경제 상황을 다룬 영화(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시장의 규칙>), 사회가 버린 미성년자들이 겪어야 하는 사법제도에 대한 작품(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에마뉘엘 베르코가 연출한 개막작 <라 테트 오트>)에 손을 들어주었다”면서 “우리는 <디판>이 숀 펜이 뽑은 로랑 캉테의 <클래스>, 스티븐 스필버그가 손을 들어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더불어 할리우드 출신 심사위원장이 세 번째로 뽑은, 프랑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작품임을 환기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금종려상과 더불어 여우주연상의 향방 또한 논쟁의 중심에 놓였다. 올해의 여우주연상은 <캐롤>의 루니 마라와 <나의 왕>의 에마뉘엘 베르코가 공동으로 가져갔다. 2년 전 압델라티프 케시시와 더불어 황금종려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던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두 여배우, 레아 세이두와 아델 엑사르코풀로스와 달리 <캐롤>에서 레즈비언 커플을 연기해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는 반쪽짜리 상을 받게 되었고 이는 그녀들을 지지한 많은 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올해의 여우주연상 결과는, 그야말로 케이트 블란쳇에게 대놓고 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토드 헤인즈의 <캐롤>에서 열연을 펼친 두 배우 중 루니 마라는 상을 받고, 케이트 블란쳇은 받지 못했다. 이건 용서를 구하지도 못할 모욕을 이 여배우에게 준 것이다. 루니 마라와 함께 에마뉘엘 베르코에게 상을 준 것은 정말 황당한 실수다. 베르코는 훌륭한 감독이지만 배우로서는 영향력이 없다. 마이웬의 <나의 왕>에서 그녀는 최선을 다해 연기하지만 매우 서툴다.”(<텔레라마>) “<캐롤>에서 두 여배우의 연기는 마치 카드 놀이를 하듯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으며 이들이 공동 수상자가 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을 거다.”(<플레이스트>) 케이트 블란쳇의 수상 불발에 대한 아쉬움은 이처럼 영미권 매체와 프랑스 매체가 한목소리로 전하고 있는 부분이며 <씨네21> 또한 그 견해에 동감한다. 올해의 심사위원단은 시상식 무대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났을 영화 속 레즈비언 커플들을 갈라놓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게이 감독으로 유명한 자비에 돌란이 에마뉘엘 베르코를 밀었다는 소문이 영화제 후반부 크루아제 거리를 떠돌았다는 점이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시장의 규칙>의 뱅상 랭동과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사울의 아들>의 라즐로 네메즈, 감독상을 받은 <섭은낭>의 허우샤오시엔과 심사위원상의 요르고스 란티모스(<랍스터>), 각본상의 미셸 프랑코(<크로닉>)에 대해서라면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사울의 아들> 또는 <섭은낭>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면, 올해의 영화제가 훨씬 흥미로운 결말을 맞이했을 거라는 지적이 많은 매체에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큰 이슈나 논쟁 없이 흘러간 이번 영화제 최대의 화젯거리가 시상식의 몇몇 이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2015년 칸에 대한 씁쓸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감독상을 수상한 허우샤오시엔.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

“<샤를리 에브도>의 비극이 올해의 칸영화제에 기나긴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버라이어티>의 평론가 저스틴 창은 말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풍자 칼럼으로 유명한 프랑스 신문사에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숨진 이 비극적인 사건이, 칸영화제 조직위원회를 비롯한 프랑스 영화인들에게 자국의 현재- 사회적, 제도적, 윤리적인 부분에서- 에 대한 성찰의 순간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전 리포트에서 전했던 대로 풍성한 합작영화 제작과 여성 영화인에 대한 조명, 상영부문간의 경쟁적 분위기 조성 등 수많은 이슈로 무장했던 올해의 영화제는 다소 지엽적인 끝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매년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세계에서 가장 성대한 영화축제의 풍경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위안 삼아 이 글을 닫으려 한다. 이어지는 다음호의 결산 기사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오감을 자극하는, 올해의 칸에 당도한 매혹의 영화들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허우샤오시엔의 <섭은낭>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광의 무덤>, 지아장커의 <산허구런> 등 영화제 후반부 상영작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돈나>

<마돈나> 현지 반응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신수원 감독의 신작 <마돈나>는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된 한국영화 4편 가운데 가장 늦게 공개됐다. 프랑스와 북미 매체 모두 언급한 <마돈나>의 장점과 단점은 공통적이었다. 프랑스의 <아르테TV>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사건, 진짜라고는 믿기 어려운 장소와 강한 인물들, 흥미진진한 줄거리, 그리고 거의 판타지나 저승에 가깝다고 봐야 할 어두운 분위기를 통해 19세기 프랑스의 광기 어린 소설의 위엄 있는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고 인상적으로 보았다. 칸 공식 데일리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플롯을 완벽하게 컨트롤했다. 연출이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과 맞물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태연자약함을 실감나게 표현했다”고 전했다.

반면, <리베라시옹>은 “영화는 타락이 보여주는 마력 속으로 들어가지만, 영화의 이미지들은 설득력이 없고, 너무 텔레비전의 이미지 같아서 마돈나나 혜림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도록 한다”고 비판했다. <버라이어티>는 “끊임없이 고통을 쌓아가는 방식이 관객을 너무 지치게 한다”고 했으며 <할리우드 리포터>는 “캐릭터가 플롯의 척추이지만, 긴 플래시백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들었던 흥분을 점점 약화시킨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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