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지면에서는 <씨네21>이 직접 만난 네 감독들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이들과의 만남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다. 자크 오디아르의 <디판>은 올해 칸 경쟁부문에 초청된 다섯편의 프랑스영화 중 가장 선두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준다. 토드 헤인즈의 <캐롤>은 오랜만에 극영화로 돌아온 이 미국 거장의 화려한 귀환을 알리는 작품이다. 칸이 사랑하는 이탈리아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의 <유스>는 프랑스영화 다음으로 올해의 경쟁부문에서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탈리아영화의 기수이자, 소렌티노의 두 번째 영어영화다. 캐나다 감독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블레이드 러너>의 시퀄 연출을 앞둔 그의 확장된 시선을 감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올해의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중요한 위치를 선점했던 이들과의 만남을 전한다(아시아의 거장들과 신예의 인터뷰는 다음호에 게재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주자는 <디판>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크 오디아르다. 스리랑카 반군 출신 망명자의 프랑스 사회 적응기를 다룬 이 작품은 그의 전작 <예언자> <러스트 앤 본>과 마찬가지로 사회 속 소수자(이 영화에서는 특히 소수 인종을 뜻한다)가 처하게 되는 극적이고 어두운 상황, 그 진창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인 감정을 다룬 영화다. 물론 진지한 드라마를 별안간 장르적으로 전환시킬 줄 아는 자크 오디아르의 장기는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인터뷰 장소에 멋진 중절모를 쓰고 나타난 자크 오디아르는 <디판>의 제작과정과 배우들간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모든 이야기는, 파리의 한 카페로부터 출발한다.
-<디판>의 출발 지점이 궁금하다.
=(공동 시나리오작가 노에 데브레) 복합적인 계기가 있었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시작’을 말하자면…. 파리의 어느 카페에 앉아 있었는데, 한 남자가 그곳에서 장미를 팔다가 쫓겨났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고, 모든 이야기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이하의 답변은 모두 자크 오디아르) 장미를 파는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그로부터 가짜 가족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그런 식으로 조금씩 영화의 서사를 만들어나갔다.
-당신은 이민자가 영웅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가.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말이다.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민자는 완전한 이방인이다. 프랑스에 살지만 프랑스어를 구사하지도 못하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굉장히 멀고도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 말이다. 몽테스키외가 집필한 <페르시아인의 편지>(페르시아에서 온 이방인의 시선을 통해 프랑스 사회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서간체 작품)의 한 구절을 빌려 말하자면, <디판>은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이민자, 망명자들에 관한 수많은 영화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바라보는 당신만의 관점에 대해 알고 싶다. 당신은 스리랑카 출신의 불법 이민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며 어떤 것은 피하고, 어떤 것을 추구하려 했나.
=우선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타밀어(스리랑카의 언어)를 쓰는 배우를 캐스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그 캐릭터를 어떻게 포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지도에서 스리랑카를 찾지도 못했다. 스리랑카는 내게 세상의 끝과 같은 곳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므로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고, 잘 표현해낼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는 디테일들에 굳이 주목하려고 하지 않았다.
-타밀어를 쓰는 배우들과는 어떻게 소통했나.
=나는 늘 감독과 배우는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디판>의 경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전작들보다 소통에 더 많은 어려움을 겪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문화로부터 비롯된 그들의 표현 방식을 존중한다. 일례로 현장에서 <디판>의 주연배우인 안소니(제수타산 안소니타산)에게 내가 무언가를 주문한 적이 있다. 그는 “네, 네”라고 했지만 내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연기를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가 내 의도와는 다른 표현을 했다고 해서, 이 영화에 큰 문제가 될까? 나는 연출자로서 주연배우들이 보여준 놀라운 아름다움을 얽매지 않으려 했다.
-안소니도 그가 연기한 디판처럼 실제로 스리랑카에서 타밀 독립 호랑이부대 출신(타밀족의 독립을 위해 스리랑카 정부군과 맞서는 반군 집단)이었다고 들었다.
=디판을 연기할 배우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안소니도 그중 한명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소설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디판>의 아이디어를 들려줬더니 “그건 완전히 내가 살아온 인생과 같다”고 하더라. 나는 스리랑카 반군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안소니의 인생은 내가 읽은 그 책에서 툭 튀어나온 것과 다름없었다. 그를 만난 건 내겐 놀라운 일이었다.
-‘디판’은 가짜 디판(제수타산 안소니타산)이 프랑스에서의 새 출발을 위해 사용한,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이름이다. 이 이름을 영화의 제목으로 선택….
=(말을 끊으며) <디판>이라는 제목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까지 이 영화에 걸맞은 제목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우리는 칸에 영화를 출품하기 위해 제목이 필요했고, 워낙 시간이 촉박해 부랴부랴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온갖 어리석은 제목을 애써 생각해내야 했고 <디판>은 그중에서 그나마 덜 멍청한 제목이었다. (웃음)
-영화의 후반부에 매우 강렬한 액션 신이 장전되어 있다. 폭력은 여전히 당신이 주요하게 다루는 소재인 듯하다.
=나는 폭력을 감정을 고양시키는 극적인 갈등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원래 디판은 스리랑카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싸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 온 그는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싸운다. <디판>의 폭력은 주인공이 이겨내야 하는 무언가에 대한 것이다.
-<랍스터>나 <라우더 댄 밤즈>처럼, 올해의 경쟁부문에는 유럽 출신의 감독들이 할리우드 스타를 캐스팅해 영어영화를 연출한 사례가 꽤 있다. 미국의 시스템을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없다. 미국의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유지하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은 많지 않다. 폴 토머스 앤더슨 정도랄까. 나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 독일이나 영국에서 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은 있다. 하지만 미국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