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DP(director of Photography) 시스템과 한국의 촬영 시스템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혹은 DP와 시네마토그래퍼의 용어는 어떻게 구분지어 사용되는가? 왜 일부 감독들은 DP라고 부르기를 꺼려하는 걸까. 이러한 해석과 입장 차이에 따라 현장에서 촬영감독의 역할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일까. 수많은 의문점을 해소하고자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며 완성도 높은 작업을 보여주고 있는 홍경표, 김우형 촬영감독을 한자리에 불러냈다. 이들은 각각 <하우등>(1998)과 <나쁜 영화>(1997)로 영화계에 본격 데뷔해 200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를 관통하며, 필름에서 디지털로의 전환 과정에 이르기까지 최근 한국영화 제작 전반의 시스템 변화를 현장에서 몸소 겪어온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은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고유의 촬영 시스템을 구축했고 실정에 맞는 생산적인 현장 시스템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연일 바쁜 촬영 스케줄로 전화 통화조차 쉽지 않은 두 사람을 어렵사리 한자리에 모았다. DP 시스템이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한국영화 촬영현장은 어떤 변화를 모색하게 될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씨네21>_현재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촬영감독 두 분을 한자리에 모시고 한국의 촬영 시스템과 할리우드의 DP 시스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이니만큼 두분의 근황에 대해 물어보면서 시작하겠다.
=홍경표_6개월 동안 이어졌던 나홍진 감독의 <곡성> 촬영을 올해 2월 말에 끝냈다. 영화는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다소 어두운 영화다 보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몸에서 기가 다 빨려나간 기분이다. 10월부터는 여자 아이스하키팀 이야기를 다루는 김종현 감독의 <국가대표2>를 촬영한다. <곡성>을 끝내니 착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 (웃음)
김우형_올해 1월 말쯤 최동훈 감독의 <암살>을 끝냈고 현재 아피찻퐁 위라세라쿤, 왕샤오솨이, 가와세 나오미 등이 참여하는 부산국제영화제 20주년 기념 단편영화 프로젝트에서 임상수 감독의 단편영화를 촬영 중이다. 하루만 찍으면 된다고 해서 나갔는데(웃음) 지금 2회차를 찍었다.
-<씨네21>_두분은 현장에서 서로 다른 촬영 시스템을 운용한다고 알고 있다.
=홍경표_<지구를 지켜라!>(2003) 이후 조명팀과 그립팀을 함께 꾸리고 있다. 장준환 감독과 당시 우노필름의 차승재 대표한테 처음으로 그립팀을 새로 만들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는 카메라 파트가 장비를 옮기는 등 업무가 혼재되어 있어서 편하게 일을 하려니 그립팀이 필요했다. 또 연출감독이 직접 촬영, 조명, 그립 파트별로 따로 이야기를 하고 다니니까 현장이 정리가 안 되는 고충이 있었다. 심지어 카메라가 설치되기도 전에 조명부터 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으니까. 조명팀은 장비를 직접 소유하고 있다 보니 더 많은 마찰이 있었다.
김우형_나는 주로 조명감독을 소개받아서 일하곤 한다. 예전에는 같이 일했던 조명감독협회원이 있었는데 내가 비협회원이라는 이유로 징계를 받기도 했다. 웬만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해보려다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경험이 있다. (웃음) 그 뒤로 계속 조명감독을 소개받아 일하고 있다. 촬영감독이 된 고낙선 조명감독과도 일을 했고 현재는 김승규 조명감독과 일하고 있다.
홍경표_내가 팀을 꾸리게 된 이유 중에는 당시 같이 일하고 싶은 조명감독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명을 빌릴 수가 없으니 조그마한 조명기를 구매하기 시작했던 것이고. <하우등>(1998) 때부터 같이 작업했던 세컨드, 그립팀과 함께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자며 시작했다. 시스템이라는 건 결국 정해진 촬영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업무를 세분화하는 것이다.
-<씨네21>_두분 모두 해외에서 한국과는 다른 촬영 시스템을 경험했다.
=김우형_<만추>(2011), <워리어스 웨이>(2010) 촬영할 때는 나 혼자 건너가 현지에서 팀을 꾸렸다. 여기서 조명감독을 소개받듯이, 그곳에서도 다른 스탭들을 소개받아서 일을 한 것이다. 내가 누구에게 뭘 주문하든지 촬영 업무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미국은 조명 장비 중에서도 전기 장비만을 다루는 일렉트릭 스탭이 따로 있을 정도로 우리보다 훨씬 더 세분화되어 있다.
홍경표_할리우드영화는 예산이 많다 보니 인원수를 늘리면 가능한데 한국처럼 한정된 예산에서 지금과 같은 스케줄로는 절대 찍을 수가 없다. 그립팀과 조명팀이 서로 도와주는, 해외현장과 우리 현장의 장점을 섞어야 한다.
김우형_업무 구분은 조합의 힘이 강해서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카메라 오퍼레이터를 고용하지 않으면 노조 조항에 위배된다. 영화 촬영은 조합원의 생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촬영팀 구성은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잡는 오퍼레이터가 있고 개퍼, 즉 조명 헤드가 있다. 그리고 촬영조수와 조명조수가 필요하다. 이 모두를 총괄하는 감독을 DP라고 한다. DP시스템 내에서 촬영감독은 카메라를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미국 촬영감독들이 현장에서 노출계를 들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계약 시에 카메라를 잡을 건지 안 잡을 건지가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다만, 카메라 대수가 늘어나면 적정 인원을 고용했을 경우, 노조 룰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카메라를 잡을 수는 있다. <워리어스 웨이>를 작업하려다 당시 <아바타>(2009)로 옮겨갔던 뉴질랜드 출신 오퍼레이터의 경우, 엄청난 주급을 받으면서도 현장만 가면 멀뚱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하더라.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카메라를 잡고 찍는 걸 촬영 내내 구경만 했던 것이다.
홍경표_어차피 오퍼레이터가 있더라도 옆에서 감독이 일일이 설명을 해준다. 리허설하면서 모니터를 보고 배우 무빙 속도 등을 고민한다. 또 감독은 여러 대의 모니터를 동시에 봐야 하기에 화면을 보면서 여러 지시 사항을 한꺼번에 주문한다.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일일이 볼 수 없으니까.
김우형_한국의 경우, 우리는 촬영감독이 일단 모든 지시를 내린다. 늘 카메라 앞에 앉아 있다 보니까 시키는 일이 많고. 그러다 보니 조명 파트가 상대적으로 일을 많이 떠안게 됐을 것이다.
홍경표_내가 조명을 산 이유는 그립팀을 활성화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조명팀에서 그립팀에일을 넘겨줘야 할 때가 있는데 조명팀이 장비를 가지고 있으면 마치 자기 일을 뺏긴다고 생각해서인지 일의 분배가 잘 안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적 구성도 평균 조명팀 인원 9명을 6명으로 줄이고 통상 2명의 그립팀을 5명으로 늘려서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립팀을 2명 이상 계약하길 꺼려한다.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역시 제작비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운영을 못한다.
김우형_현재 국내 시스템은 일본의 촬영 시스템이 그대로 이어져온 것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도 조명과 촬영감독이 나뉘어져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연출감독과 이야기하는 통로는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풍경 사진을 찍을 때 조명을 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해가 어디 있는지 날씨가 어떤지는 확인하면서 찍지 않나. 그래서 조명이 없이도 근사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고, 영화는 한컷만 찍어야 하는 게 아니라 화면이 넓어야 하고 때로는 타이트해야 하고 뒤집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컷에서 날씨가 유지되어야 한다. 즉 우리가 원하는 좋은 순간을 연장시키기 위해 조명을 쓰는 건데 조명을 설계하지 않고 사진 찍듯이 영화를 찍는 것은 문제다. 좋은 앵글만 가지고는 영화가 될 수 없다.
홍경표_화면을 전체적으로 책임지는 게 촬영감독의 일이다.
-<씨네21>_<워리어스 웨이>나 <설국열차> 등 해외에서 작업할 때 기존 작업 시스템과 다른 점이 있었나.
=김우형_일단 할리우드는 배우조합의 영향력이 상당해서 모든 현장이 배우 중심으로 돌아간다. 예를 들어 오늘 촬영이 몇시에 끝나면 몇 시간은 휴식해야 한다, 촬영장소에서 몇분 거리 내에 5성급 호텔이 있어야 한다, 배우가 대기하는 트레일러에서 스튜디오까지 몇 걸음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식의 내용이 배우 계약서 조항에 다 적혀 있다.
홍경표_합리적인 할리우드 시스템이 되어야 그 스케줄을 맞출 수 있는 거다.
-<씨네21>_그런 현실적 제약이 촬영과 어떤 관계가 있나.
=김우형_현장은 시간 싸움이니까. 한국에선 세팅할 때 조감독이 내 옆에서 언제 끝나나 안절부절못하는데 미국에서는 조감독이 오히려 시계를 보면서 1분 단위로 재촉한다. 배우가 세트장에 걸어오면 도착 직전에 세트장 전체에 알림이 울리고 온 스튜디오에 적막이 흐른다. 배우가 도착했는데도 우리가 일을 하고 있다? 그럼 난리 나는 거다. 진짜 살 떨리는 경험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에 12시간, 오전에만 5시간 정도에 20컷을 찍을 수가 없다. 사실 우리 현장은 시간 개념이 제일 문제다. 아무리 빨리 찍는다 해도 물리적인 기본 시간이 있기 때문에 무작정 많이 찍을 수는 없다. 그런데 감독들은 대부분 더 찍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감독이 뭘 찍을지 말지 제대로 선택을 해야 한다. 요새는 사이즈별로 전부 ‘돌려찍기’를 한다고 하더라.
홍경표_10컷을 찍고 싶은데 5컷으로 줄여야 한다면? 그걸 우리가 이야기하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어쨌든 감독들은 밤을 새서라도 더 찍자는 건데 기본적으로 생각 자체가 다른 거다.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이런 입장 차이가 생긴다.
-<씨네21>_두분 모두 디지털로 시작한 최근의 젊은 감독들과 달리 필름으로 상업영화를 시작해서 변화하는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겪었다. 그렇다면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면서 촬영 시스템에 영향받은 게 있나.
=홍경표_데이터 매니저가 생긴 것 외엔 없다. 데이터 매니저는 내거티브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걸어다니는 현상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 말고는 찍는다는 본질은 똑같다.
김우형_감도가 아무리 좋은 필름이라도 조명이 있어야 하듯, 카메라가 좋아진다고 해서 우리가 찍을 숏을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무엇으로 찍건 변하는 건 없다. 우리나라 영화계가 룩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게 얼마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특정한 룩이랄 게 없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굉장히 화려해지고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불과 <유령>(1999) 전후로 이런 변화가 굉장해졌다.
홍경표_왜 우리나라 영화만 룩으로 따지면 컬러와 콘트라스트가 다 똑같을까? 그런 반항심에 초창기에는 일부러 색을 과하게 집어넣기도 했다. 당시엔 유치할 정도로 컬러를 집어넣었다.
김우형_그때가 재미있었다. 매일 밤 현상소에 모여 밤새 작업하고 그랬다. 새로운 룩을 만들어보겠다는 욕구가 있었다.
-<씨네21>_촬영팀 구성에서 특별히 고려하는 부분이 있다면.
=홍경표_포커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포커스는 잘 훈련된 친구들이 아니면 안 시킨다. 배우 김윤석이 <곡성> 찍을 때 나를 강력하게 추천한 이유는 포커스 때문이었다. 그가 보기에도 <해무> 때 스탭들이 칭찬받을 만했다. 그 바다를 왔다갔다하는데도 포커스가 다 맞았으니까. 또 나는 이번 영화에서 세컨드를 맡긴 팀원에게 다음 영화에서 퍼스트를 시키지는 않는다. 메인 포커스는 경력과 상관없이 뽑을 만큼 중요시 여긴다. 해외에서는 포커스 풀러를 전문으로 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힘들다.
김우형_미국에서 만났던 포커스 풀러는 모두 나보다 경력도 많고 나이도 많았다. 그들은 가정과 육아를 책임지는데도 먹고살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입봉을 꿈꾸지 않는다. 국가 복지정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감독이 되면 돈은 더 벌겠지만 내 시간을 더 뺏기기 때문에 안 하겠다는 반응이 많다.
-<씨네21>_대개 촬영에 앞서, 촬영감독은 무엇을 가장 우선시하게 되나.
=홍경표_시나리오를 보면 습관처럼 먼저 공간의 조명을 계산하게 된다. 그다음 여기에 어떤 카메라와 렌즈를 쓸 것인지를 계산한다.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보면서 빛에 대한 설계를 1차적으로 한 다음, 개퍼와 회의를 한다. 그립팀도 시나리오를 읽고 피드백을 준다. 그들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반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술적으로 새로 나온 전구가 있다면 그걸 개퍼들이 알고 추천을 하기도 한다. 어떤 라이트 소스를 쓸 건지 개퍼와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그립팀에는 카메라 무브먼트에 대해서 연구해오라고 숙제를 줄 때도 있다.
-<씨네21>_지난 작업 중에 다양한 시스템 변화로 인해 영향을 받았다거나 혹은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었나.
=김우형_시스템보다는 포맷의 변화에 더 민감했던 것 같다. <파주>(2009) 찍을 때가 레드 카메라가 막 등장하던 시기였다. 당시 슈퍼 16mm와 함께 비교 테스트를 했는데 블라인드 시사 때 모두가 레드를 선호하더라. 그런데 유일하게 박찬욱 감독만 16mm를 추천했다. 그래서 <파주>를 16mm로 촬영했고 결국 그 영화가 나의 마지막 필름영화가 됐다.
홍경표_나는 <설국열차>까지 필름으로 찍었고 장준환 감독의 단편영화 <러브 포 세일>도 필름으로 찍었다. <해무> 때가 필름이 아쉽더라. IMF 시절 선원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필름으로 찍고 싶어서 후지필름에 전화했더니 딱 한캔 남아 있다는 거다. 그걸 받아서 마산에 내려가 테스트 촬영까지 했다. 필름으로도 찍고 알렉사로도 찍어서 일본에 넘겨 현상본을 받아 룩을 봤더니 생각보다 엄청 거칠었다. 이미 디지털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다. 생각보다 샤프니스(선명도)가 안 좋고 그레인(잡티)이 많다. 그레인에 대한 정보를 눈으로 익혀서 데이터에 넣어보려고 노력했다. 디지털 시대에 <해무>는 어떻게든 필름룩을 내려고 고민했던 작품이다.
-<씨네21>_다른 듯하면서도 결국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촬영 시스템 운용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각자 서로의 작품 중에서 주목해서 봤던 작품을 꼽아준다면.
=김우형_홍 감독님의 거의 모든 작품이 충격을 줬다. <유령>을 보는데 잠수함 장면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외국의 경우라면 특수효과팀에서 찍었겠지만 당시 우리나라 영화에서 정말 심해를 촬영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 건 놀라운 경험이었다. 요새야 그런 장면은 CG겠거니 넘어가지만 그때의 중량감은 어마어마했다.
홍경표_당시 반사노출계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레이 농도를 미친 듯이 써놨던 자료가 아직도 집에 있다. (웃음) 나는 <나쁜 영화>를 보고 김 감독의 존재감에 반했다. 카메라에서 자신감이 느껴지더라. 그리고 디지털로 찍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에 봉준호 감독과 함께 <만추>(2010)를 보고는 처음으로 디지털에 호감이 생겼다.
김우형_우리가 촬영기사 대신 DP란 이름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할 때 실제로 할리우드에서도 비토리오 스토라로 촬영감독처럼 “나는 절대 DP가 아니다. 시네마토그래퍼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래도 DP란 용어는 우리가 하는 일을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단지 용어의 차이일 뿐 화면을 책임지는 우리의 일은 변함없다는 거다. 다른 누구를 만나서 협업을 하더라도 용어보다 자신이 뭘 하고자 하는지를 더 주목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