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적인 하룻밤>(2015) <남과 여>(2015) <암살>(2015) <악인은 살아 있다>(2014) <붉은 가족>(2013) <분노의 윤리학>(2012) <연애의 온도>(2012) <아이들…>(2011) <인플루언스>(2010) <평행이론>(2009) <약탈자들>(2008) <지구에서 사는 법>(2008) <뷰티풀 선데이>(2007)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오로라 공주>(2005) <색즉시공>(2002)
드라마 <골든 크로스>(2014) <드라마 스페셜- 괴물>(2014) <특수사건전담반 TEN2>(2013) <TV문학관-사랑방 손님과 어머니>(2011) <로드 넘버원>(2010)
핸드크림을 애용하는 소시오패스라. <암살>의 일본군 장교 가와구치 슌스케는 눈에 걸리는 나뭇가지를 치워내듯, 일말의 동요도 없이 소녀를 절명시키는 잔혹한 사람이다. 반면 마음에 든 사람에게는 한껏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일차원적일 수 있었을 냉혈한을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낸 건 박병은의 디테일한 캐릭터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디션 때 제출하려고 “일본군 의상까지 대여해 입고 이자카야(선술집)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가와구치의 인생에 대한 글도 써갔다”. 배역을 맡은 뒤의 준비는 더 철저했다. “총독 아버지를 둔 가와구치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을 테니 약간 포동포동해도 될 것 같아 촬영 전날 일부러 더 먹고 잤다.” 옆으로 넘긴 헤어스타일도 당대의 일본군 장교들 사진을 관찰한 결과였고, 창백해 보이기까지 하는 피부톤도 연출한 거였다. 원래 하얀 피부를 더 하얗게 보이게 해달라고 분장팀에 요청했다고. 기차 안에서 핸드크림을 바르는 장면도 박병은의 아이디어다. “한 가지 소품으로 가와구치의 강박적인 모습을 나타낼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뜨개질을 할까, 그림을 그릴까 생각하다가 핸드크림을 골랐다. 무척 안 어울리고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고증도 거쳤다. 실제로 일본에선 시세이도 핸드크림이 1890년대부터 있었더라.”
이 꼼꼼한 배우, 겉보기엔 젠틀맨이지만 실상은 낚시광 자연인이다. 야구, 등산, 골프, 보드 등 스포츠에도 조예가 깊다. 초등학생 땐 4년간 야구선수였다. 지금도 여전히 사회인 야구팀에서 활동 중이다. 이번 주말 경기엔 선발투수로 등판한단다. 가장 깊게 꽂힌 취미는 단연 낚시다. “아직도 낚시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는 그는 여전히 홀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낚시를 하러 다닌다.
안양예고에 입학해 연기를 시작한 건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는데 “일년에 두번씩 공연을 올리다보니 무대 위의 쾌감, 연기할 때의 즐거움, 관객의 반응을 스스로 더 원하게 됐다.” 평생 연기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데뷔 후 작품을 만나지 못해 허송세월할 때도 있었지만 그만둔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단다. “매혹? 연기는 매혹적이지 않다. 항상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할 때는 악몽을 너무 많이 꿨다. 사람으로서 이렇게 치욕적이고 더러운 꿈을 꿀 수 있는 건가 싶어 너무 싫었다. 감독님께 고충을 털어놓으니 ‘좋아. 계속 그렇게 집중해줘’라고 하시더라. (웃음)”
아직 촬영 전인 <사냥>(감독 이우철)이 크랭크인하면 “두달 반쯤 산속에 박혀 있을 예정”이다. 사냥을 핑계로 사리사욕을 채우러 금맥을 찾은 사람 중 하나를 연기하는 덕에 총 쏘는 법도 재밌게 배우고 있다. 그런데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쉬는 날엔 인근 저수지로 낚시 다니면 참 좋겠다. 라면에 소주도 필수고. (웃음)” 박병은에겐 연기도 낚시와 비슷하다. 영화는 물속과 같은 미지의 세계다. 어떤 물고기가 잡힐지 알 수 없듯 앞으로 만나게 될 캐릭터도 예상할 수 없다. “배역도 운명처럼 오는 모양이다. 때론 아예 고기를 못 잡는 날도 있을 거다. 그럴 때 억지로 뭐라도 낚으려 하면 피곤해지기만 한다. 안 잡히는 날엔 일찌감치 들어가 소주 한잔하고 자면 된다. 낚시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떠나고, 자리잡고, 기다리는 그 모든 과정이 그냥 좋은 거니까.”
내가 꼽은 나의 매직아워
<몬스터>의 사채업자 광수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뱃속에 손을 이렇게 찔러넣으면 손이 이만큼 들어가고, 내장이 다 뽑혀나온다더라, 하며 뒤에 있는 킬러 성문(배성우)의 무서움을 익상(김뢰하)에게 설명하는 장면이다. 뒤에선 성문이 우산을 쓰고 트램펄린에서 콩콩 뛰고 있다. 임팩트가 센 상황, 센 역할, 센 대사가 주어졌다. 대사가 너무 재미있었고 “아으, 상스러워” 하는 건 애드리브였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역할 중 가장 장르적인 캐릭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