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리화가>(2015) <뷰티 인사이드>(2015) <베테랑>(2015) <패션왕>(2014) <타짜-신의 손>(2014) <우는 남자>(2014) <청춘예찬>(2013) <집으로 가는 길>(2013) <밤의 여왕>(2013) <감시자들>(2013) <남쪽으로 튀어>(2012)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 <이혼변호사는 연애중>(2015) <조선총잡이>(2014)
이동휘는 영민하다. 질문을 던지자마자 바로 명료한 답을 돌려줄 줄 안다. 하나를 물으면 먼저 둘을 대답한다. 평소 많이 생각하고 곱씹어본 사람, 수집과 퇴적의 힘을 믿는 사람만이 가능한 거다.
-작품마다 안경으로 인물을 연출하길 즐기는 것 같다.
=시력이 좋지 않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데 내가 목석같이 대사만 읽을 때였다. 교수님께서 안경이라도 닦으라고 하셨는데 그게 크게 와닿았다. 내가 왜 이걸 활용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표현이 거창하지만 ‘안경메소드’랄까. <뷰티 인사이드>의 상백은 자기가 전문가적 자질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작은 열등감을 안경으로 상쇄시킨다. <베테랑>의 윤홍렬 실장은 자기 얼굴이 비즈니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얇은 테의 안경을 쓰는 인물이다. 헤어도 뒷머리를 길게 내리고 징그러워 보이는 펌을 연출해 양아치 근성을 버리지 못한 인물을 표현했다. 막 데뷔했을 땐 안경 쓰면 관객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겠냐고 조언해준 분도 계셨다. 그런데 관객은 앞으로도 이동휘의 얼굴을 몰랐으면 좋겠다. 광식이의 얼굴, 짜리의 표정, 상백이의 스타일로 기억에 남고 싶다.
-대사의 많은 부분이 애드리브다. <집으로 가는 길>의 광식이 “미국엔 핵폭탄이 있지만 대한민국엔 네티즌이 있어”라고 했던 것처럼.
=그 얘긴 평소 내가 생각하던 것이기도 했지만 PC방을 운영하는 광식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광식이를 통해 <베테랑>에도 캐스팅됐다. <뷰티 인사이드>에서 김희원 선배에게 “건달같이 생겼다”고 한 것도 애드리브였다. 김희원 선배가 <아저씨>(2010)로 인상 깊은 장면을 만드신 걸 관객이 기억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상백이 친구로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고. <타짜-신의 손>에서 장동식(곽도원)이 방귀를 뀌었을 때 짜리가 “똥 싸신 거 아니에요, 아저씨?”라고 묻잖나. 평소 도박을 하는 짜리의 입에서 튀어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자꾸 말하니까 애드리브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은데 절대 아니다. (웃음) 대본대로 하는 배우들이 가장 부럽다. 창작이란 게 갑자기 되는 게 아니잖나. 1부터 10까지 잘 짜인 대본에 내 사족을 더하려다 작품이 망가질까 무섭다. 다만 그런 건 있다. 이동휘를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는 캐릭터의 면면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다는 것.
-원래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더니, 칸 만화의 호흡법을 연기로 체화한 건가.
=좋은 만화들은 칸과 칸 사이에도 디테일이 있다. 말풍선 말고 배경에 깔리는 인물이 중얼거리는 그런 작은 글씨들 말이다. 사실 그런 것 중에 충격적으로 웃긴 게 많은데 그런 게 자양분이 된 것 같다. 가령 상백이 지나가면서 다른 테이블의 여자들한테 작업걸 때 막 던지잖나. “결혼하실래요? …애는 제가 키울게요. …돈은 당신이 벌고.”
-캐릭터 연구하면서 자료 수집도 꼼꼼히 할 것 같은데.
=영화도 영화지만 그림, 사진 등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짜리는 조용필 선생님의 <꿈>에서 도움을 받았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라는 가사에 많이 꽂혔다. 내 안에 있는 것만으로는 절대 못한다. 캐릭터를 만들 때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두 가지, 세 가지를 빼와 조립하는 재미가 굉장하다. 수많은 텍스트가 모여 완성되는 캐릭터의 힘을 믿는다.
-개봉예정인 <도리화가>에서는 명창 신재효(류승룡)의 제자로 출연해 판소리까지 배웠다고, 원래 노래도 잘하잖나.
=다행인 건 내 캐릭터의 앞에 ‘어설픈’이라는 수식이 붙는다는 거다. 무언가를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캐릭터라면 너무 두렵다. 하지만 ‘어설픈’이란 수식이 약간의 방패가 된다. 촬영 중인 <응답하라 1988>의 동룡이는 뭔가 하나 분명한 특기가 있는 아이라 애를 먹고 있다.
-<뷰티 인사이드>에 이어 <아가씨>와 <키 오브 라이프>에도 출연한다. 용필름과의 세 번째 작업이다.
=한 사람과 여러 번 작업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건 감격스러운 일이다. 같이 한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게 새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사 외유내강과도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려 한다. (웃음) 강동구에 있는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우리 집까지 십분 거리다. 류승완 감독님 말씀대로 같은 ‘강동 영화인’으로서 내가 잘해야지.
내가 꼽은 나의 매직아워
처음 상업영화에서 단역으로 연기했던 <남쪽으로 튀어>의 현장이 기억난다. 당시 단역들 대사가 모두 삭제됐는데 감독님과 김윤석 선배님이 한줄씩 다시 읽어보라고 시키셨다. 연기를 막 잘하려고 했다기보다 치킨집 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하려고 했다. 감독님이 그걸 마음에 들어하셨다. 그때 느꼈다. 삶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 되자. 그게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모토가 된 것 같다. 의상도 내가 준비해간 거다. 아버지의 회색 파크랜드 남방. (웃음) 그렇게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인물의 외양을 만드는 작업에 애착이 강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