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내 얼굴을 몰랐으면 좋겠다
2015-09-03
글 : 윤혜지
사진 : 백종헌
<뷰티 인사이드> 이동휘

영화 <도리화가>(2015) <뷰티 인사이드>(2015) <베테랑>(2015) <패션왕>(2014) <타짜-신의 손>(2014) <우는 남자>(2014) <청춘예찬>(2013) <집으로 가는 길>(2013) <밤의 여왕>(2013) <감시자들>(2013) <남쪽으로 튀어>(2012)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 <이혼변호사는 연애중>(2015) <조선총잡이>(2014)

이동휘는 영민하다. 질문을 던지자마자 바로 명료한 답을 돌려줄 줄 안다. 하나를 물으면 먼저 둘을 대답한다. 평소 많이 생각하고 곱씹어본 사람, 수집과 퇴적의 힘을 믿는 사람만이 가능한 거다.

-작품마다 안경으로 인물을 연출하길 즐기는 것 같다.

=시력이 좋지 않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데 내가 목석같이 대사만 읽을 때였다. 교수님께서 안경이라도 닦으라고 하셨는데 그게 크게 와닿았다. 내가 왜 이걸 활용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표현이 거창하지만 ‘안경메소드’랄까. <뷰티 인사이드>의 상백은 자기가 전문가적 자질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작은 열등감을 안경으로 상쇄시킨다. <베테랑>의 윤홍렬 실장은 자기 얼굴이 비즈니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얇은 테의 안경을 쓰는 인물이다. 헤어도 뒷머리를 길게 내리고 징그러워 보이는 펌을 연출해 양아치 근성을 버리지 못한 인물을 표현했다. 막 데뷔했을 땐 안경 쓰면 관객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겠냐고 조언해준 분도 계셨다. 그런데 관객은 앞으로도 이동휘의 얼굴을 몰랐으면 좋겠다. 광식이의 얼굴, 짜리의 표정, 상백이의 스타일로 기억에 남고 싶다.

-대사의 많은 부분이 애드리브다. <집으로 가는 길>의 광식이 “미국엔 핵폭탄이 있지만 대한민국엔 네티즌이 있어”라고 했던 것처럼.

=그 얘긴 평소 내가 생각하던 것이기도 했지만 PC방을 운영하는 광식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광식이를 통해 <베테랑>에도 캐스팅됐다. <뷰티 인사이드>에서 김희원 선배에게 “건달같이 생겼다”고 한 것도 애드리브였다. 김희원 선배가 <아저씨>(2010)로 인상 깊은 장면을 만드신 걸 관객이 기억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상백이 친구로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고. <타짜-신의 손>에서 장동식(곽도원)이 방귀를 뀌었을 때 짜리가 “똥 싸신 거 아니에요, 아저씨?”라고 묻잖나. 평소 도박을 하는 짜리의 입에서 튀어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자꾸 말하니까 애드리브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은데 절대 아니다. (웃음) 대본대로 하는 배우들이 가장 부럽다. 창작이란 게 갑자기 되는 게 아니잖나. 1부터 10까지 잘 짜인 대본에 내 사족을 더하려다 작품이 망가질까 무섭다. 다만 그런 건 있다. 이동휘를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는 캐릭터의 면면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다는 것.

-원래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더니, 칸 만화의 호흡법을 연기로 체화한 건가.

=좋은 만화들은 칸과 칸 사이에도 디테일이 있다. 말풍선 말고 배경에 깔리는 인물이 중얼거리는 그런 작은 글씨들 말이다. 사실 그런 것 중에 충격적으로 웃긴 게 많은데 그런 게 자양분이 된 것 같다. 가령 상백이 지나가면서 다른 테이블의 여자들한테 작업걸 때 막 던지잖나. “결혼하실래요? …애는 제가 키울게요. …돈은 당신이 벌고.”

-캐릭터 연구하면서 자료 수집도 꼼꼼히 할 것 같은데.

=영화도 영화지만 그림, 사진 등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짜리는 조용필 선생님의 <꿈>에서 도움을 받았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라는 가사에 많이 꽂혔다. 내 안에 있는 것만으로는 절대 못한다. 캐릭터를 만들 때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두 가지, 세 가지를 빼와 조립하는 재미가 굉장하다. 수많은 텍스트가 모여 완성되는 캐릭터의 힘을 믿는다.

-개봉예정인 <도리화가>에서는 명창 신재효(류승룡)의 제자로 출연해 판소리까지 배웠다고, 원래 노래도 잘하잖나.

=다행인 건 내 캐릭터의 앞에 ‘어설픈’이라는 수식이 붙는다는 거다. 무언가를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캐릭터라면 너무 두렵다. 하지만 ‘어설픈’이란 수식이 약간의 방패가 된다. 촬영 중인 <응답하라 1988>의 동룡이는 뭔가 하나 분명한 특기가 있는 아이라 애를 먹고 있다.

-<뷰티 인사이드>에 이어 <아가씨>와 <키 오브 라이프>에도 출연한다. 용필름과의 세 번째 작업이다.

=한 사람과 여러 번 작업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건 감격스러운 일이다. 같이 한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게 새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사 외유내강과도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려 한다. (웃음) 강동구에 있는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우리 집까지 십분 거리다. 류승완 감독님 말씀대로 같은 ‘강동 영화인’으로서 내가 잘해야지.

<남쪽으로 튀어>

내가 꼽은 나의 매직아워

처음 상업영화에서 단역으로 연기했던 <남쪽으로 튀어>의 현장이 기억난다. 당시 단역들 대사가 모두 삭제됐는데 감독님과 김윤석 선배님이 한줄씩 다시 읽어보라고 시키셨다. 연기를 막 잘하려고 했다기보다 치킨집 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하려고 했다. 감독님이 그걸 마음에 들어하셨다. 그때 느꼈다. 삶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 되자. 그게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모토가 된 것 같다. 의상도 내가 준비해간 거다. 아버지의 회색 파크랜드 남방. (웃음) 그렇게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인물의 외양을 만드는 작업에 애착이 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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