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돌연변이> 연출 2014 <소셜포비아> 각본지원 2013 단편 <세이프> 각본 2012 단편 <질식> 각본, 연출 2012 단편 <녹색물질> 각본, 연출 2009 단편 <고래를 본 날> 연출
상체는 물고기, 하체는 인간. <돌연변이>의 주인공 박구(이광수)는 ‘반인반어’ (半人半魚)다. 태어날때부터 그런 모습이었던 건 아니다. 평범하게 나고 자란 그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인 평범한 20대 청년이다. 제약회사의 아르바이트에 혹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적어도 남들과 비슷한 외모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약 먹고 잠을 자기만 하면 30만원을 준다는 한 제약회사의 아르바이트 모집을 보고 생체실험에 참여했다가 약의 부작용 때문에 상체가 생선으로 변한 것이다. ‘생선인간’ 박구라는 이 독특한 아이디어는 권오광 감독이 한국예술종합학교 도서관에서 어떤 그림을 보면서 탄생됐다.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생선인간’을 보고 르네 마그리트의 유명한 <집합적 발명> 속 인어를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다. “CJ E&M과 영상원이 함께 진행하는 산학협력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시 쓰고 있던 스릴러영화가 잘 풀리지 않던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그리트의 그 그림을 보게 됐다. 원래 잘 알고 있던 그림이었는데 가만히 보니 생선인간 모습이 측은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더라. 화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의도와 상관없이 생선인간이 나오는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싶어 급하게 시놉시스를 써내려갔다.”
그때 썼던 이야기는 지금과 여러모로 달랐다. 당시가 이명박 정권 말기라 새로운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던 까닭에 내용이 정치적으로 과감했다. 형식 또한 극영화가 아닌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산학협력 1기 프로젝트로 선정되면서 이야기는 “지도교수인 이창동 감독님과 함께 6개월 동안 코미디, 멜로 등 다양한 버전으로 바뀌었다”가 “생선인간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가진 장점을 잃지 않는 선에서 지금의 드라마로 발전”됐다. 제약회사의 음모 때문에 사람의 신체가 변형되는 설정이 이야기의 뼈대가 된 것도 그때쯤이다. “딱히 모티브가 있다기보다 대학 다닐 때 친구들이 제약회사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다. 시판되기 전의 약을 먹고 신체에 부작용이 있는지 체크하는 아르바이트였는데 그걸 보면서 너무 슬펐다. 언젠가 시나리오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생선인간을 이 설정으로 풀어내자 싶었다.” 20대 청년이 제약회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약의 부작용 때문에 생선인간이 된다는 설정이 꽤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는가.
서사가 영화의 뼈대를 구축하는 작업이었다면 생선인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건 영화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CG팀과 특수분장팀(메이지 신재호 대표)으로부터 기술적인 조언을 들었던 것”도 “주어진 예산 안에서 생선인간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 박구가 생선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있었는데, 박구가 생선인간인 채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설정으로 바뀐 것도 예산 때문이었다. 총 무게가 무려 8kg나 달하는 생선 머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배우 이광수의 몫이었다. 권오광 감독이 박구 역에 이광수를 떠올린 건 “영화 <좋은 친구들>(2014)에서 보여준 연기 덕분”이었다. 마침 마이클 파스빈더가 탈을 쓰고 열연한 <프랭크>도 개봉했다. “파스빈더의 얼굴이 영화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프랭크>를 레퍼런스 삼아 <돌연변이>에서도 얼굴이 거의 나오지 않는 대신 걸음걸이나 손짓으로 박구를 표현할 수 있도록 광수씨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현장에서 그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찍어야 하는 장면이나 현장 상황에 대해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돌연변이가 되면서 새로운 능력을 가지게 되는 <엑스맨> 시리즈 같은 할리우드영화와 달리 <돌연변이>는 박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무기력해지게 되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어간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그건 박구뿐만이 아니다. 기자인 것도, 그렇다고 기자가 아닌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인 인턴 기자 상원(이천희)도, 전 남자친구 박구를 팔아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어보려는 주진(박보영)도 주류 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돌연변이’라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20대 청년 세대뿐만 아니라 인권 변호사라는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변호사(김희원), 박구의 아버지(장광) 같은 세대까지도 이 사회의 돌연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장광 선생님으로부터 아버지 세대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가지고 있는 불안감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권오광 감독이 <돌연변이>보다 먼저 자신의 이름을 영화계에 알린 건 2년 전 칸국제영화제 단편부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세이프>였다. 문병곤 감독이 중앙대 연극영화과 동기였던 권오광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출한 작품이다. 박구 같은 20대 세대가 그렇듯이 권오광 감독 역시 대학 시절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데, <세이프>는 그가 ‘바다이야기’라는 성인오락실 환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은 일을 쓴 이야기다. “그걸 대학 졸업작품으로 찍으려다가 <고래를 본 날>이 상상마당 제작지원작에 선정되면서 인연이 아닌가보다 싶었다. (문)병곤이 형이 그 시나리오로 제작지원을 받으면서 내 손을 떠났다. (웃음)” 맞벌이로 바빴던 부모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비디오 가게에 있는 많은 영화를 섭렵한 그가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작품은 중학생 때 본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 연출, 배우 등 <초록물고기>의 여러 요소가 그의 창작 욕구에 불을 지핀 셈이다. “집이 부유하지 않아 제작지원을 받기 위해 시나리오를 많이 썼다. 그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영상원 전문사에 진학할 수 있었고, <돌연변이>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세이프> <돌연변이>가 그랬듯이 그가 또 어떤 사회문제에 파고들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요즘 꽂힌 것
《Wasting Light》
“고등학생 때 밴드부에서 기타와 베이스를 맡은 적 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면 기타를 치고. 요즘 푸 파이터스의 앨범 《Wasting Light》를 즐겨 듣고 있다. 푸 파이터스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그롤이 그룹 너바나의 멤버였지 않나. 그와 함께 너바나에서 호흡을 맞췄던 커트 코베인이 불꽃처럼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면 데이브 그롤은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서서히 넓혀가고 있어서 존경스럽다. 그처럼 영화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