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이들의 감정을 따라 입시 제도를 돌아보다
2015-10-27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공부의 나라> 최우영 감독
최우영 감독

2015 <공부의 나라> 2013 <내일도 꼭, 엉클 조> 2012 <미스터 선거왕> 2009 <다큐프라임-삼동초등학교 180일간의 기록> 2008 <전설의 대물 돗돔을 찾아서> 2007 <영혼의 퍼포먼스 굿> 외

“<공부의 나라>로 국내 매체와 갖는 첫 번째 인터뷰다. 관심 가져줘서 정말 고맙다.” 최우영 감독이 웃으면서 꺼낸 첫마디가 꽤 아프게 들린다. 극영화에 비해 다큐멘터리가 관심을 덜 받아온 게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한편을 제작하기 위해 만든 이가 들인 시간과 애정의 크기를 짐작해본다면 쉽게 넘기기 어려운 말이다. <공부의 나라>는 최우영 감독이 햇수로 5년을 쏟아부어 완성한 프로젝트다. 영화는 고3 수험생들이 수능 준비로 정신없는 전 과정을 2년에 걸쳐 따라가 수능 당일과 그 이후 아이들의 모습까지도 담았다. ‘Reach for the SKY’라는 영화의 영문 제목이 말해주듯 영화는 학벌 사회인 한국의 현실을 곱씹어보게끔 한다. 교실의 아이들, 기숙학원, 재수학원의 학생들에 이어 부모, 교사, 사교육 현장까지 놓치지 않고 찍었지만 영화의 서사와 시선은 시종일관 아이들에게 향해 있다. 2011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전쟁에라도 나가는 듯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수험생들의 뒷모습을 찍는 것으로 <공부의 나라>의 첫 촬영이 시작됐다. “2002년부터 다큐멘터리 프로덕션에서 일하며 <인간극장> 등 방송용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그러다 EBS <다큐프라임- 삼동초등학교 180일간의 기록>을 찍으며 한국의 교육 문제를 좀더 다뤄보고 싶어졌다. 사는 지역에 따라 현격한 학력차가 발생하는 이 사회에서 과연 상위 1%만이 간다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엄청난 인력과 사회적 비용을 투입하는 게 옳은 일일까. 수능일 단 하루에 마치 인생의 모든 게 결정되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는 게 바람직할까. 여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했다.”

시동을 건 이 프로젝트에 흥미를 보인 사람이 있었다. <공부의 나라>의 공동 연출자인 벨기에 출신 다큐멘터리스트 스티븐 두트다. 그는 학교에 다니는 게 싫어 프로게이머가 된 한국인들을 추적하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2013)를 찍으며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11년 아시안 사이드 오브 닥(Asian Side of the Doc) 마켓에서 처음 만난 최우영, 두트 두 사람은 그 후로 의기투합해 벨기에의 다큐멘터리 개발 지원 프로젝트에 응모해 <공부의 나라>의 최초 펀드를 마련했고 이후 한국쪽 제작 지원까지 받으면서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벨기에 태생인 두트의 시선이 반영되면서 애초의 기획 방향과 달라진 게 있지는 않았을까. 최우영 감독은 “스티븐이 고교 시절 홍콩에서 공부를 했다. 아시아 교육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영화 중간중간 공부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넣자고 한 것도 스티븐의 아이디어다”라며 찰떡 호흡을 자랑한다. 오히려 자신들이 간과한 것을 짚어준 건 벨기에쪽 스탭인 편집기사 게르트 반 버클레어였다. “그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전혀 모르는 상태라 처음 편집할 땐 애를 먹었다. 그에게 한국의 입시 상황을 설명하다보니 좀더 쉽게 내용을 풀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수시, 정시, 추가합격 등의 개념을 잘 몰랐던 그가 편집을 하니 오히려 영화가 입시 제도를 설명하는 쪽이 아닌 아이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방향으로 정리된 것 같다. 그게 훨씬 좋더라.”

<공부의 나라>

물론 한국의 교육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공부의 나라> 이전에도 무수히 많았다. <공부의 나라>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절감하고 있는 익숙한 이야기의 단순 반복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만이 갖는 힘이 있다. 그건 2년에 걸친 섭외 과정 속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면서 영화가 최종적으로 4명의 학생들과 끝까지 수능의 전 과정을 함께 겪어냈다는 데 있다. “‘1년 동안 고3 학생들을 찍고 싶다’는 공문을 전국사립학교교장협의회를 통해 전국의 고등학교에 보냈고 40군데가 넘는 학교를 돌아다녔다. 학생, 학부모, 담임교사, 학년 주임교사, 학교장 등에게 일일이 촬영 허락을 받고서야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도중에 ‘못하겠다’는 학생들도 무수히 많았고. 결국 마지막까지 촬영을 하게 해준 학생들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 지금까지도 학생들과 연락을 한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때도 와서 같이 영화를 봤다. (웃음)” 더 많이 보여주고 더 많이 말하는 쪽보다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편을 택한 게 주효했다. 그것이 이 영화를 믿음직하게 보이게 한다. 한편 <대한뉴스>부터 최근의 뉴스 화면까지를 간간이 넣거나 방충망에 붙어 있는 무수히 많은 모기떼나 빔 프로젝트 같은 교실 안 사물들을 무심히 비추는 이미지 컷들을 활용한 것도 특이하다. 영화의 내용과 맞물려 차갑고 서늘한 분위기를 돋우는 요소들이다. 취재와 촬영을 해오면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최우영 감독의 생각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안타깝지만 영화를 준비하면서 교육 현장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노원구 전체에서 상위 1%의 대학에 들어간 학생 수가 강남의 한 학교에서 그곳에 입학한 학생 수보다 적었다. 그만큼 쉽사리 아이들에게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럼에도 교육다큐멘터리를 찍어오면서 나 나름의 교육 철학이 생겼다. 아이들은 관심과 애정으로 자라난다는 데 대한 확신이다. 옆에서 자신을 지켜봐주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라면 분명 그 관심을 자신의 에너지로 삼는다. 그 에너지에 기대 희망을 말할 수 있길 바라본다.” 이것은 수능, 입시라는 거대하고 견고한 문턱 앞에 선 아이들과 긴 시간을 함께해오면서 감독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뼈아픈 현실이었다. 그리고 감독이 품고 싶은 작은 희망의 말이기도 했다.

요즘 꽂힌 것

<공부의 나라> 다음 이야기

최우영 감독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으로 꽉 차 있다. “탈북자들이 전국 성적 상위 1%만이 간다는 대학에 들어가 한국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는 메커니즘을 파헤쳐보고 싶다. 또 다른 우리의 현실과 마주하는 작업이 될 거다. 이미 사전 조사까지 끝낸 상태로, <공부의 나라2>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시작하면 5년은 넘기지 말아야지. 일단 집에 가서 <공부의 나라>의 프로듀서인 아내의 의사부터 물어봐야 한다. 혼자는 절대 못할 일이다. 서로 의지하는 부부의 힘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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