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장비를 몸처럼 다루며 산을 오르다
2015-12-22
글 : 윤혜지
<히말라야> 속 산 / 액션 / 촬영

히말라야 눈밭에서 대체 얼마나 구르다 온 걸까. 예상과 달리 휴먼 원정대는 강원도 영월의 한 채석장에서 두달 반을 보냈다. 에베레스트와 칸첸중가 근접 촬영의 대부분이 영월 채석장에서 촬영됐기 때문이다. 비전문가 눈엔 눈 덮인 산이 거기가 거기 같지만 에베레스트와 칸첸중가는 산을 구성하는 돌의 색이 크게 다르다. 주승환 프로듀서는 근 2년간 경남을 제외한 전국의 채석장을 죄다 돌아보았다고 한다. 주승환 프로듀서는 강원도 군청을 통해 영월군수와 만났고 영월군에서 60년 넘게 성업 중인 채석장 쌍용양회를 소개해줬다. 워낙 넓은 곳이라 회색빛의 에베레스트와 갈색빛을 띠는 칸첸중가의 표현이 모두 가능한 곳이었다. 베이스캠프 장면도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폐채석장에서 찍었다. 폐채석장은 손질이 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했기 때문에 산 초입의 베이스캠프 장면을 촬영하기에 적절했다. 뜻밖에도 다른 영화 제작진이었다면 쌍수들고 환영했을 ‘따뜻한 겨울’은 <히말라야>팀엔 이도저도 못할 계륵이었다. 지난해 겨울이 유난히 따스했던 탓에 도무지 눈이 오지 않아 영월에 설산을 만들기가 난감했던 것이다. 주승환 프로듀서는 대안카드로 스키장 제설기와 프랑스 몽블랑 로케이션을 꺼내들었다. 크랭크인한 뒤 얼마 안 돼 이석훈 감독, 주승환 프로듀서, 김태성 촬영감독, 박의동 CG감독, 김우영 제작부장은 몽블랑에 헌팅을 다녀왔고 몽블랑 추가 촬영을 결정하고는 예산이 워낙 빠듯해 극악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등반 장면을 안전히 촬영하기 위해 영월에서 대형 크레인을 최소 7~8대씩 사용하느라 비용이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대신 몽블랑에선 채석장에서는 건질 수 없는 설산 와이드 숏과 스릴 넘치는 크레바스 액션 장면을 얻었다. 해외 촬영엔 당연히 현지 프로덕션이 붙어야 하는데 “예산도 예산이고 영어 구사가 능숙한 스탭이 많아” 현지 프로덕션을 쓰지 않았기에 비용도 예상보다 절반이나 절감할 수 있었다. 촬영장소로 가려면 3500m 산장까지 이어진 케이블카를 타야 하는데 케이블카가 이탈리아 영역에 속해 있어 제작진은 이탈리아 코우르마에우르에 머물며 이탈리아영상위원회(AOSTA Film Commision)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만 매 촬영 산악협회가이드(Societa Guide Alpine)가 엄격한 주의를 요하는 통에 진행에 애를 먹기도 했다. 에베레스트 배경과 등정 시작 장면을 찍기 위한 14박15일의 네팔 로케이션은 원래 예정돼 있었다. 네팔은 행정 절차가 원활하지 않아 제작진은 현지 여행사 가이드를 통해 촬영 허가를 받았고 드론을 띄워도 된다는 허가와 무전기 사용 허가를 받는 데엔 시간이 오래 걸려 난감했다고 한다.

액션

당연한 소리지만, 박무택(정우)과 박정복(김인권)이 생필품을 잔뜩 얹은 지게를 진 채 잠수 마스크를 쓰고 산을 오르는 훈련 장면은 허구다. <히말라야>의 등반 자문을 맡은 한국도로공사 김미곤 산악대장은 “입에 재갈을 물리고 산을 오르게 하거나 산행 중 노래를 시키는 일은 있어도 지게를 지게 하지는 않는다”며 웃었다. 김미곤 대장은 “23km의 선달산 백두대간 코스를 2박3일간 종주하는 동안 배우들이 고소 상태의 피로감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새벽 3시까지 술을 먹여놓고 두 시간 뒤에 깨우기도 했고 잠을 안 재우고 자꾸 말을 붙여 배우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마지막 날엔 다들 네발로 산을 기어내려왔을 정도로 무척 고되었는데 다들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훈련을 따라줘 감탄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쩌면 무택과 정복의 힘겨운 훈련은 김미곤 대장에게서 비롯됐는지도 모르겠다. 배우들은 경희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원에 찾아가 고소적응체험을 했고, 한국등산학교에서 로프 매듭법과 “장비를 내 몸처럼 쓰는 기술들”도 익혔다. 암벽 등반을 연습할 땐 등반 초심자인 배우들이 장비를 사용하는 걸 자주 잊는 바람에 지척에서 훈련을 봐주던 산악전문가들을 식겁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하지만 촬영에 돌입해 영월 채석장에서 빙벽 등반 장면들을 찍을 땐 실제 산악인들이 그러하듯 와이어 없이 로프만 매달고 찍는 준전문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서울시 산악구조대 구은수 산악대장을 포함한 국내 산악인 6명, 이탈리아 산악협회가이드 전문가들과 함께 진행했다. 프랑스 몽블랑에서 찍은 무택의 크레바스 추락 장면은 놀랍게도 실사로 촬영된 장면이다. 정우의 스턴트를 맡은 김태강 무술감독이 직접 사다리 아래 크레바스로 뛰어내리는 모험을 시도한 뒤 크로마키로 정우의 액션을 합성해 긴장 가득한 추락 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촬영

핵심은 ‘생동감’과 ‘기동성’이었다. 두 가지를 모두 잡자니 핸드헬드 숏이 필수였고, 등반 중 핸드헬드가 가능하기 위해선 렌즈를 자주 갈아끼울 수가 없었다. 김태성 촬영감독은 “같은 렌즈라도 3K에서 6K까지 사이즈 조정폭이 넓은” 레드 에픽 드래곤 6K 카메라를 선택했고 자연스러운 화면을 선호해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는 울트라 프라임 렌즈를 끼웠다. 다큐멘터리처럼 현장감 있는 앵글을 “적당한 때 잡아채기 위해” 스테디캠, 지미집 등의 장비는 일절 쓰지 않았고 김태성 촬영감독이 항상 카메라를 직접 들고 산을 올랐다. 엄홍길 대장(황정민)이 눈사태를 맞아 굴러떨어지는 장면에선 배우가 누운 앞에 김태성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안고 먼저 굴렀다. “와이어캠을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래서야 생동감이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팔 로케이션지엔 황정민과 선발대로 열흘쯤 먼저 도착해 틈틈이 인서트 숏을 촬영했다. 그땐 날씨가 맑아 멀리 에베레스트까지 잘 보였지만 후발대가 왔을 땐 기상악화로 에베레스트가 드러나지 않았기에 행운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프랑스 몽블랑은 체류 일정 9일 중 촬영 가능한 날이 5일밖에 되지 않는 데다 추가 촬영을 온 탓에 체류비를 아낄 수밖에 없어 초조한 마음으로 촬영을 이어나갔다. 살벌하게도 “여기서 죽거나 다치는 건 본인 책임이라 쓰여 있던 경고문” 아래서 크레바스 장면을 찍을 땐 위험하다고 만류하는 현지 관계자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셰르파와 야크를 데려갈 수 없었던 상황에 모든 짐을 소수의 스탭이 나눠지고 올라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그나마 운이 좋게도 먼저 네팔에서 4500m 고도를 올라본 덕에 몸이 적응돼 고산병만큼은 여유롭게 피해갈 수 있었다. 설산 촬영도 주로 몽블랑에서 진행했다.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게 되면서 노출값만 잘 조정해도 눈 반사는 피할 수 있었”다. 다만 조명과 발전기를 바리바리 싸들고 다닐 수 있는 현장이 아니었기에 김경석 조명감독과 상의해 배터리 충전이 가능한 LED 조명판을 따로 제작해갔다. “이걸 준비해달라 하면 꼭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을 준비해두는” 김경석 조명감독은 김태성 촬영감독과 <최종병기 활>(2011) 때부터 종종 호흡을 맞춰온 손발 잘 맞는 파트너다. LED 조명판도 기존에 있는 휴대용 조명기 선건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오히려 까다로웠던 건 고글에 배우들의 모습만이 비치도록 촬영하는 것이었다고. 놀랍게도 고글에 비친 모습은 후반작업 때 CG로 입힌 것이 아닌 대부분이 실제로 촬영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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