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내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다
2015-12-22
글 : 정지혜 (객원기자)
호랑이가 100% CG로 구현되어야 했던 이유와 촬영과정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大虎)를 어떻게 만들어내서 관객에게 보여줄 것인가. 이 막막한 질문 앞에서 <대호>의 박민정 프로듀서는 확실한 비전을 제시했다. “호랑이는 <대호>의 주인공이지만 호랑이만이 이 영화의 전부는 절대 아니다.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천만덕과 대호가 살아가는 지리산이야말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천만덕, 호랑이 그리고 산을 통해 서사의 균형을 맞추는 게 호랑이 그 자체보다 더 중요했다.” 호랑이를 100% CG로 구현하기로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호랑이를 실사로 촬영할 때 호랑이를 조련하는 등의 한계도 있었지만 산을 CG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건 <대호>의 서사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었다. “무엇이 <대호>에 필요한가를 정확히 파악해 선택과 집중을 했다”는 게 박민정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호랑이 만들기는 방대한 자료 수집에서부터 시작됐다. 연출팀, 미술팀, VFX팀 각각이 호랑이의 종, 식습관, 행동, 버릇 등에 관한 문헌들을 긁어모았다. 야수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호랑이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클립 수천개를 찾는 건 예삿일이었다. 전국의 동물원을 찾아다니며 호랑이 관찰에도 나섰다. 어떤 각도일 때 호랑이가 좀더 위협적으로 보이는지, 뛰거나 걸을 때의 움직임은 어떻게 다른지 등 호랑이만의 표정, 자세 등을 데이터로 만들었다. 그 끝에 대호만의 모습과 분위기를 잡아갔다. 박민정 프로듀서는 “대호의 얼굴에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로서의 위용과 험한 산에서 살아남아 지리산의 산군(山君)이 된 사연이 함께 읽혀야 했다”고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왼쪽 시력을 잃었다는 시나리오의 설정을 살리되 한쪽 눈으로 험한 지리산의 맹주가 되기까지 갖은 수난을 겪었을 것이라 추측해 대호의 얼굴에 선 굵은 상처들을 여럿 만들었다. 여기에 조선의 호랑이 중의 호랑이라는 설정에 맞게 400kg 가까운 몸무게, 380cm가량의 몸 길이, 꼬리만 120cm가 되는 거대한 대호를 탄생시켰다.

호랑이가 출연하는 신을 촬영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배우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연기를 해야 했고, 카메라는 그에 맞춰 움직여 나가야 했다. 스탭들 모두 ‘이것이 호랑이’라고 생각하며 찍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일종의 모션 액터(motion actor)로서 활약한 서울액션스쿨 출신 배우 곽진석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크레딧에 ‘범’(虎)으로 이름을 올린 그는 CG 작업을 위해 착용하는 푸른색 옷을 입고 호랑이의 표정을 지어가며 호랑이다운 움직임을 세세히 연기했다. 앤디 서키스처럼 배우의 몸에 움직임을 포착하는 센서를 달아 CG 작업을 하는 모션 캡처와는 다르다. 곽진석은 센서 없이 오직 호랑이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동선을 잡아갔고 포효하거나 으르렁거리며 대호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의 이러한 움직임으로 감독과 촬영팀은 호랑이의 동선을 가늠했고 편집점을 생각했으며, 그의 표정과 동선으로 배우들은 연기의 액션과 리액션을 이어갔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신은 매번 4단계에 걸쳐 촬영됐다. 아무리 CG로 호랑이를 만든다고 해도 촬영 때마다 호랑이의 크기가 달라져 카메라 프레임이 변경된다면 후반 공정에 들여야 하는 수고는 몇배로 커진다. 실제 대호만 한 크기의 판을 놓고 카메라 프레임을 확인하는 것이 1단계 촬영이다. 이어서 호랑이의 움직임을 연기하는 배우 곽진석을 촬영한다. 3단계는 VFX를 담당한 4th Creative Party의 조용석 본부장이 제안한 4개의 공(인공 호랑이 털이 달린 공, 회색 빛깔의 공, 회색 빛깔에 호랑이 털이 달린 공, 반짝반짝 빛나는 물질이 입혀진 공)을 촬영한다. 각각의 공을 호랑이라고 생각하고 빛이 공에 닿았을 때 호랑이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가늠한다. 후반작업에서 빛에 따른 호랑이의 털 색깔 변화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인물이 없는 빈 공간을 찍어 CG 작업에 필요한 배경을 확보해둔다.

호랑이 촬영분에 생생한 움직임을 불어넣어 대호를 완성하는 건 VFX팀의 후반공정에 달렸다. 조용석 본부장은 “털은 없고 오직 호랑이의 형체만 만들어놓는 모델링, 그 위에 뼈와 근육을 입히는 리깅(rigging), 털의 무늬와 피부 등을 입히는 작업, 털 한 가닥 한 가닥을 심는 공정을 거쳤다. 마지막에는 털이 바람이나 눈에 어떻게 움직이는지까지 신경써서 반영했다”고 말한다. 후반작업에 석달을 꼬박 쏟았부었지만 프리 비주얼부터 대호의 완전한 실체가 드러나기까지는 무려 1년6개월이 걸렸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에 이른 대장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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