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시원(始原)적 정신의 숲속으로 가는 인간과 CG의 여정
2015-12-22
글 : 정지혜 (객원기자)
<대호> 속 산 / 액션 / 촬영

도시락 하나 달랑 싸들고 산으로 산으로. 호시절의 등산객 얘기가 아니다. 지난여름 매일같이 산을 타야 했던 <대호> 연출부의 사연이다. 2인1조로 팀을 이뤄 하루에 산 하나를 오르고 또 올랐다. <대호>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하지만 지리산은 험준하기로 유명한 데다 촬영 허가가 쉽게 나지 않아 대체할 수 있는 산을 찾아야 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길 6개월여 끝에 제천, 포천, 곡성, 합천, 남해, 전주, 대관령 등 10여 군데가 넘는 전국의 산들을 로케이션 장소로 확정했다.

최종 헌팅까지 다녀온 뒤 이모개 촬영감독은 <대호>의 산에 대한 생각이 확실해졌다.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대호>는 천만덕과 대호 그리고 산이 주인공이구나 생각했다. 산은 이야기의 무대만이 아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곧은 정신과 같은 것을 영화 속 산이 품고 있어야 했다. 산이 주는 경외감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호랑이 등 CG 작업을 하기에 용이한 지형의 산을 찾아서 촬영하는 게 아니다. <대호>가 말하고자 하는 시원(始原)적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원시림에서 촬영하고 그곳으로 (만들어진) 호랑이를 데리고 오는 게 맞다.”

지난해 12월부터 촬영이 시작됐다. 여름날 헌팅을 다녀온 산이 맞나 싶게 겨울산으로 변해 있었고 낯설었다. 차량 진입이 어려운 깊은 산속으로 무거운 장비를 손수 날라야 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영하 2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고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촬영은 계속됐다. 영화에 나오는 눈의 90% 이상이 실제 눈이다. 추위로 장비가 꽝꽝 얼어붙거나 준비해온 식재료가 완전히 얼어 식사를 제때 못하기도 했다. 현장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민정 프로듀서는 말한다. “비싼 장비? 겨울 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더라. (웃음)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수밖에. 연출부는 매번 꽝꽝 언 땅을 파고 촬영 시 필요한 나무를 심거나 뽑아야 해서 삽이 필수품이었다.”

스탭들도 산사람이 다 됐다. 박민정 프로듀서는 “영화의 90%가 산 촬영이었다. 간혹 세트 촬영하려고 지상에 오면 스탭들이 되레 어색해하며 ‘빨리 공기 좋은 산으로 가자’고 하더라”고 말한다. 덧붙여 박 프로듀서는 “100여명의 스탭들이 추위 때문에 얼굴이 시뻘겋게 된 채 한자리에 빙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란. 보고 있으면 뭉클해진다”며 추위 속 스탭들의 노고가 <대호>의 산을 만들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이모개 촬영감독도 “자연의 경이로움을 목격할 때가 있다. 갑작스레 운무가 껴 놀라운 그림을 보여주는 데 찍지 않을 수 없다. 공기 좋은 깊은 산에서 생활하다보니 건강해진 것 같다. (웃음)”고 전한다.

액션

사람 대 사람의 액션이 아니다. 사람 대 호랑이의 액션이다. <대호>의 허명행, 최봉록 무술감독 앞에 놓인 미션이다. 흔히들 ‘액션의 합을 짠다’고 하면 등장인물들간에 치고 겨누는 동작을 짠 뒤에 서로간의 타이밍을 맞추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싸움의 대상이 호랑이, 그것도 눈앞에 보이지 않는 실체와의 싸움이다. 두 무술감독은 호랑이의 공격을 받은 포수대와 일본군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리액션을 준비하는 일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촬영 두달여 전부터 두 사람은 맹렬하게 움직이는 호랑이뿐만 아니라 호랑이 공격을 받아 인명 사고가 벌어지는 상황을 취재한 각종 영상들을 찾아보고 리액션을 준비했다. 특히 극중에서 ‘대호’가 사람을 물고 흔들어 멀리 날려보내는 장면의 생생함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최봉록 무술감독은 “사람 자체가 날아간다고 될 일이 아니어서 와이어를 차고 날아갔다. 호랑이의 동선만 정해두고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동작을 최대한 다양하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호랑이와의 액션 장면에 투여된 인원만 해도 족히 300여명은 넘을 거라고 전한다.

촬영

촬영장에 없는 호랑이를 찍기 위해 이모개 촬영감독은 호랑이의 시점숏 구현에 집중했다. “천만덕의 아들 석(성유빈)이 호랑이 사냥에 나서기 전까지 영화에서 호랑이의 실체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호랑이가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 기운을 통해 스릴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나무 뒤, 어둠 속에서 호랑이가 포수대와 일본군을 지켜보는 시점숏이 많은 건 그래서다. 달리는 호랑이를 촬영하는 것도 숙제였다. 깊은 산속이라 트랙조차 제대로 깔 수 없었고 카메라의 자유로운 이동이나 크레인 설치는 꿈도 못 꿨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급기야 직접 장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일직선으로 길게 줄을 이어 일종의 와이어를 만들었다. 그 위에 좌우 진동을 막아 수평을 유지하는 스테빌라이저에 모비 카메라를 올려서 탈부착 가능하게 했다. 호랑이가 빠르게 직진하다 좌우로 확 트는 것 같은 시점숏 구현이 가능했다.” 또한 이모개 촬영감독은 일본군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지리산을 폭파시키는 장면을 반드시 실사 촬영으로 진행해야 했다고 말한다. “쓰러뜨릴 나무들을 죄다 직접 심고 넘어뜨려가며 찍었다. 지리산과 그 정기가 파괴되는 순간만큼은 관객이 함께 분노의 감정을 느끼길 바랐다. 더없이 사실적으로 찍어서 지리산의 장엄함을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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