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외국영화 베스트5
올해의 해외영화 1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미친 영화가 나왔다. 조지 밀러 감독이 <매드맥스> 시리즈를 부활시킨다고 했을 때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들조차 이 정도의 결과까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영화 역사상 가장 박진감 넘치는 로드무비이자, 독특한 세계관과 비주얼이 돋보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무비이자, 해방을 향한 몸부림을 그린 저항과 혁명의 영화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황홀경에 빠져든다”(황진미).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키며 질주하는 이 영화는 “올해 최고의 스펙터클”(듀나)과 속도감을 보여준다.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액션 신과 질주본능을 자극하는 스피드” (김지미)는 “액션영화가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장르적 쾌감” (김수)을 선사하는 것이다. “한 우물만 파는 충실함에서 나오는 장르적 쾌감”(김태훈)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단지 액션과 속도만으로 채워진 영화는 아니다. 전미비평가위원회가 2015년 최고의 작품으로 꼽은 건 이 영화가 오락과 쾌감 이상의 무언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밀러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움직임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작가적 열망까지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조율”(윤혜지)하여 “익숙한 듯하지만 전혀 다른 새로움에 대한 정석”(이지현)을 선보였다. 그것은 장대한 자동차 액션의 마스터피스이자 카메라로 대표되는 영화적 무브먼트의 증명이다. 요컨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움직임’이라는 영화의 순수한 요소를 극한으로 고양시켰을 때 다다를 수 있는 어떤 황홀경이다. 특히 그 앞에 조지 밀러라는 오래된 거장의 이름이 붙었을 때의 감흥은 남다르다. “대개 나이는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나이를 먹고도 이렇게 만들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재능과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가를 조사하게 만드는 영화”(허지웅)를 두고 그 누가 경배를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올해의 해외영화 2
<스파이 브릿지>
더하거나 뺄 것이 하나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완벽이라 부른다. 이 영화가 그렇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공력이야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할리우드 클래식영화의 정점을 해마다 경신하고 있는 거장의 행보는 놀랍기 그지없다. <스파이 브릿지>는 스필버그의 연출, 카민스키의 촬영, 코언 형제의 각본이 빚어낸 조화의 극치다. “균형 잡힌 촬영, 각본, 연기 모두가 보는 이를 안심시키는”(윤혜지)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 인물을 대하는 태도, 시대를 대하는 태도를 유려하게 드러내며,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것을 증명했다”(이주현). “경계선의 작가 스필버그는 <링컨>(2012>에 이어 다시 한번, 절멸과 폭력의 세계 위에서 프랭크 카프라의 정신을 되살리려 하는”(조재휘) 것이다. 물론 스필버그는 여전히 듣는 이를 편하게 만드는 완숙한 이야기꾼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때때로 완고해 보이기까지 하는 영화적 태도 혹은 결기가 묻어난다. 게다가 <스파이 브릿지>에는 안정감 있는 톰 행크스 외에도 올해의 발견이라 해도 좋은 명배우가 등장한다. 앞서 열거한 장점을 빼더라도 이 영화는 “아벨 역의 마크 라일런스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다. 그는 가장 소박한 제스처로 가장 기품있는 스파이를 구현해낸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박소미).
올해의 해외영화 3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우아하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향한 헌사는 이 단어로 압축된다. 연극과 영화, 허구와 사실, 이야기와 현실이 교차하는 찰나에 머무는 이 영화는 “배우라는 존재에 바치는 지적인 헌사”(김수)다. 이야기가 가리고 있는 사실의 맨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거리낌이 없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이번에도 세 여인의 긴장관계 속에 관객을 던져두고 낯설고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진짜 정체성을 마주하게 되는 이 불편한 과정은 사실주의적 드라마라기보다는 어떤 무드의 목격에 가깝다. 덕분에 “연극과 현실의 경계라는 고전적인 테마를 다루었음에도 새로운 방식으로 아름답고 우아하다”(박소미). 서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풍경들, 서사에 무심히 침투하는 풍광들이 관객을 압도하고 “자연의 웅장함이 우리를 정신적 고양으로까지 이끄는”(한창호) 것이다. “기품으로 예술과 삶을 에워싸는데 경이롭기까지 하다”(정지혜), “이유를 넘어선 감동에 가닿는다. 영화가 좀더 천천히 지나가주기를 바랐다”(김소희)처럼 평자들의 찬사도 한결같이 설명 불가능, 아니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은 그 순간을 향하고 있다. 넘실대는 흰 구름이 실스마리아 계곡을 채우는 순간 그 누구라도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올해의 해외영화 4
<내일을 위한 시간>
자본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다르덴 형제는 시대와 교감하고 필요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드문 재능의 소유자들이다. 게다가 강변하지 않고 가만히 시스템의 단면을 들여다볼 뿐인데도 그 어떤 설교보다 강렬한 설득력이 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강제하는 윤리적 선택 앞에 놓인 노동자들의 고민을 정면으로 다뤘다” (황진미). 경영자는 인력감축을 시행하고자 노동자에게 보너스냐 동료냐 하는 양자택일을 강조한다. 이에 다르덴 특유의 미니멀한 형식을 활용해 강요된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한 개인의 실존적 행위, 그러니까 투쟁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내러티브와 밀도, 미장센의 균형감”(이지현)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선택 바깥에서 우리가 아직 취할 수 있는 존엄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훨씬 직접적이고 투명한 까닭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쩌면 지금 시대에 필요한 목소리인지도 모르겠다. “화자와 청자 사이,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도치, 나와 너 사이의 이격,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조화를 담으며 냉정한 질문에 온기 있는 답을 제시한 걸작”(송형국)이라 칭하기 손색이 없다.
올해의 해외영화 5
<폭스캐처>
<폭스캐처>를 향한 상찬은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배우들의 탁월한 ‘몸연기’에 대한 경탄이고, 다른 하나는 베넷 밀러 감독의 집요한 미국 까발리기를 지켜보는 흥미로움이다. “베넷 밀러, 스티븐 카렐, 채닝 테이텀”으로 정리 가능한 이 영화는 “연출, 연기, 어느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단단한 결정체”(이화정) 같다.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 존 듀폰(스티브 카렐),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 이 3명의 캐릭터를 한데 모으면 이것이 미국 사회 전체라고 해도 될 만큼 인물 구성이 치밀하다”(송형국). 무엇보다 음향을 소거하고 들어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하등 문제가 없을 정도로 이들이 펼치는 육체적 연기는 그 자체로 관객과 소통하는 힘이 있다. “말과 말, 생각과 생각이 아니라 몸과 몸의 부딪힘으로 그 탐구에 무게감을 실었다”(이주현)는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스티브 카렐은 종전엔 보여주지 않았던 연기 근육을 사용하며 ‘인생 연기’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캐릭터를 우리에게 선보인다. 감히 “스티브 카렐이라는 서스펜스”(정지혜)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요컨대 “미국의 내밀한 역사를 계속 집필 중인 베넷 밀러 감독”(김혜리)이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집요하게 파고든 “미국 사회 탐구의 결정판”(우혜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