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5 <양치기들> 2015 <퇴마: 무녀굴>
남자친구로 고용한 연극배우 완주(박종환)가 자신의 친구들 앞에서 남자친구 행세를 할 때 미진(김예은)은 마냥 편하게 보이지 않았다. 무슨 사연 때문에 가짜 남자친구를 고용했는지 몰라도 완주의 능수능란한 거짓말 덕분에 상황을 간신히 모면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그의 거짓말 때문에 생긴 불편함이 한데 뒤섞인 얼굴이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초청작이었고, 올해 개봉하는 <양치기들>(감독 김진황)에서 김예은이 잠깐 보여준 ‘그 얼굴’은 감정을 드러내는 기교가 서툰 대신 정직했다.
장편영화 출연은 <양치기들>이 데뷔작 <퇴마: 무녀굴>(이주실이 연기한 돌순 어멍의 젊은 시절을 맡았다.-편집자)에 이어 겨우 두편째지만, 독립영화를 좀 챙겨본 관객이라면 김예은의 얼굴이 아주 낯설진 않을 것이다. 그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단편 <겨울꿈>(2015)과 단편 <은하비디오>(2015)에서 여대생과 비디오 가게 주인을 각각 연기했고, 미쟝센단편영화제 상영작 <출사>(2015)를 포함한 여러 단편영화에서 얼굴을 내비친 바 있다. 이같은 이력 때문에 연기 전공자일 거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김예은은 연기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미술을 한 어머니의 영향 때문에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연기를 할 수 있는가였다. 단편 <바람만 안 불면 괜찮은 공기>를 포함한 여러 단편영화와 광고에 연출부로 참여한 것도 “배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일을 하면 (연기를)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연출부 일을 하면서도 배우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감독이 되고 싶진 않았냐고? 아무도 나를 배우로 써줄 것 같지 않아 직접 연출을 해 나를 주인공으로 쓸까 생각도 해봤다. (웃음) 1년 반 정도 영화책을 읽으며 독학을 했다. 영화도 보고, 시나리오도 썼는데 감독은 정말 머리가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더라.” 대학에 다시 진학해 연기를 제대로 배울 생각도 했었다. “3년 전 연극원 입시 시험을 치렀는데 떨어졌다. (웃음)” 그러다가 현장에서 만난 감독이나 촬영감독이 그가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면서 배우로서 경력을 쌓아갈 수 있었다. 완성되지 않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필름 작업을 경험했던 영상원 작품 <한 여름의 유자>도 그때 찍었다. 이후, 그는 극단 유시어터에 잠깐 있다가 극단 풍경에 들어가 <햄릿 업데이트> <철로> <마음의 범죄> <러브 앤 머니> 등 네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기와 많이 달랐지만 배우로서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무대에 올라 관객과 호흡하며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게 김예은의 얘기다.
그의 다음 영화는 단편 <배팅 케이지>다. 1월22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에서 공개된다고 한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제니퍼 로렌스처럼 건강하고, 씩씩하며, 솔직한 배우가 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아주 불가능한 목표는 아닌 듯하다. 배우가 되고 싶어 혼자서 현장 스탭으로 일하고, 극단에 들어가 무대에 오른 용기가 그에게 있지 않은가.
<철권> 하는 여자
김예은은 오락실에서 <철권>을 하는 여자다. 스트레스 푸는 데 <철권>만 한 게임이 없다고 한다. “원래 좋아했던 게임은 <땅따먹기>였다. 지난해 친구 덕분에 <철권>을 알게 됐다.” 건대입구역 근처 오락실에서 하루에 2만원은 쓴다고. 온라인 대전에 접속해 “연속 다섯번까지 이긴 적”도 있다니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다.
드로잉하는 여자
오락실 게임 <철권>과 함께 그의 또 다른 취미는 드로잉이다.
미대 출신답게 고민이나 생각이 많을 때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몰라 연기하는 게 마냥 재미있었다.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 할수록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최근 연기를 잘하려고 하다보니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사람들을 만날 때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도 하고. 그걸 깨려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그린 그림이 꽤 많이 쌓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