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당신은 벌써 제 곁에 없습니다 - 정성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추모하다
2016-07-18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사랑을 카피하다>의 주연배우 줄리엣 비노쉬와 함께.

2016년 7월5일 새벽, 나는 그저 별 생각 없이 트위터의 타임 라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멘션이 하나 올라왔다. R.I.P.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순간 약간 멍해졌다. 이게 무슨 말일까. 내 첫 반응은 슬픔이 아니라 비명을 지르고 싶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때부터 10분 만에 100개에 가까운 180자가 뒤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찌해볼 수 없는 이 죽음 앞에서 거의 손쓸 수 없을 만큼 재빠르게 마치 확인이라고 해주듯이 새로운 추모의 문장들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문장들은 키아로스타미 영화들의 장면을 첨부하거나 혹은 그 어디에선가 찍은 사진을 올려놓았다. 자비에 돌란은 몇번이고 반복해서 추모의 문장을 올리고 또 올렸다. 그저 나는 지구상의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올리는 문장들과 영화 장면들과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게 마치 주마등처럼 내 앞에서 흘러갔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그와의 첫 만남에 대한 말들

나는 여기서 키아로스타미 영화를 순서대로 열거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어, 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글은 백과사전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 글은 비통한 마음을 안고 마음을 추슬러가며 쓰는 추모사이다. 두서없는 장면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까. 말 그대로 주마등. 내가 처음 본 키아로스타미 영화는 남들처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였다. 그런 다음 한편으로는 그 이전의 다큐멘터리에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영화를 기다렸다. 이듬해에 만든 다큐멘터리 <숙제>(1989)에 나는 완전히 감동했다. 그러고 나서, 그렇다. 거의 전적으로 우리 세대에게 행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클로즈업>(1990)을 보았다. 그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자유자재로 섞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서부터가 드라마인 것일까. 어디서부터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일까. 경험과 창조. 그 둘 사이의 새로운 몽타주. 종합과 분산. 그런데 그 둘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새로운 모델의 탄생. <클로즈업>은 마지막 순간 조화를 찾는 대신 일시에 균형을 무너트렸다. 그 순간 들이닥친 일찍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예측 불가능한 감흥. 내 앞에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1989)와 <클로즈업>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때 나는 막 영화평을 쓰기 시작했다.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가. 거의 참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매년 당신들의 영화를 보고 글을 쓸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겠습니다. 배움의 스승들. 이건 축복이었다. 당신들 덕분에 나는 쉬지 않고 전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나만 그랬을 리 없다. 아마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지닌 힘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 중 한명은 구로사와 아키라일 것이다. 정확한 순서는 그 반대이다. 키아로스타미는 1993년에 <마다다요>를 보고 그 영화의 첫 장면이 자신이 1987년에 찍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첫 장면과 완전하게 똑같다는 사실에 이상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구로사와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그를 찾아갔다. 그때 구로사와는 키아로스타미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둘은 그날 긴 대화를 나누었다. 구로사와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본 다음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사티야지트 레이가 세상을 떠나자 그 자리에 하늘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우리에게 데려다주셨습니다.” 장 뤽 고다르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가 1992년 칸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 대신 주목할 만한 시선에 선정되자 “그런 안목으로는 차라리 영화제를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라고 키아로스타미를 옹호하였다. 하스미 시게히코조차 ‘전승불가능의 영화평론가’라고 존경한 요도가와 나가하루는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를 본 다음 거의 감격한 말투로 “나는 이런 영화를 본 적이 없다”라고 단언했다. 이 사람은 1919년(大正 8年)에 열살이었으며 그해 도쿄에서 <인톨러런스>가 개봉했을때 할머니와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보러 간 사람이라는 사실을 계산에 포함시켜주기 바란다. 철학자 장 뤽 낭시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본 다음 명상하듯이 말했다. “영화 속의 모든 것이 영화를 만든다. (중략) 그때 삶은 영화 앞에서, 뒤에서, 하지만 가로질러 가면서, 그리고 동시에, 게다가 함께 계속된다. 모든 질문은 삶을 프레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된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역시 시네필답게 대답했다. “처음 키아로스타미 영화를 보았을 때 (긍정적인 의미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역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존 카사베츠를 넘어섰다고 할까요.” 좀더 시적인 표현도 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는 한 남자가 한쪽 눈에 빨간약을 바른 안대를 하고 왼손에 무거운 붉은색 항아리를 들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는 장면이 있다. 클레어 드니는 그 장면을 보면서 탄식하듯이 덧붙였다. “나는 지금 한 그루의 나무와 두개의 빨간 과일을 보고 있습니다. 참 이상한 과일입니다.”

그때 우리는 거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넘어갈 뻔했다. 단지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휘청거린 정도가 아니라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번개처럼 나타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우리 세대에게 한 줄기 섬광이었다. 이 영화를 본 다음에는 무조건 먼저 심호흡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나는 중얼거렸다. 키아로스타미는 우리 세대의 로셀리니다. 조너선 로젠봄은 고다르가 파리에서 한 것과 똑같은 것을 키아로스타미가 테헤란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키아로스타미는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서방세계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느냐는 끈질긴 질문에 약간 마지못해 비토리오 데시카의 후기 사회풍자 코미디라고 대답한 다음 (그러니까 <자전거 도둑>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재빨리 덧붙였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데시카의 영화여서가 아니라 소피아 로렌 주연이라서예요.” 그렇다면 키아로스카미가 좋아하는 데시카 영화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1963)이라는 뜻이다. 소피아 로렌을 주연으로 한 데시카의 다른 두편의 영화 <두 여인>(1960)과 <해바라기>(1970)는 코미디가 아니다. 아마도 많은 비평이 키아로스타미 영화에서 로베르 브레송이나 칼 드레이어의 흔적을 보았을 것이다. 실망스럽겠지만 키아로스타미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저는 브레송 영화보다는 브레송에 관해서 쓴 바바크 아흐마디의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를 읽으면서 브레송의 영향을 받았어요. 하지만 내게 영향을 준 건 대부분 이란영화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의 <단순한 사건>(1973)과 다리우스 메흐르지의 <우편배달부>(1972)입니다.” 가장 망연자실한 대답은 그다음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는 모두 합쳐서 50편이 되지 않아요. 게다가 같은 영화를 두번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내게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은 채 스무개도 되지 않아요.”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영화를 구하기 위해 영화 바깥에서 온 사람이다.

<클로즈업>

숏, 주어진 세계 안에서의 입방체

“하지만 모든 건 우연히 일어났어요. 열일곱살에 집을 나와서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무 준비가 안 된 나는 대학 시험에 떨어졌지요. 이듬해에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한 1960년부터 1967년까지 150편 정도의 광고를 즐겁게 찍었어요. 그런데 누가 내게 말했어요. 당신은 광고를 단편영화처럼 찍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영화로 고개를 돌렸지요. 나는 우연을 믿습니다.” 그런 다음 키아로스타미는 아무런 훈련 없이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가 찍은 첫 번째 영화는 이란 아동·청소년 지능개발연구소에서 1970년에 제작한 10분45초의 흑백필름으로 촬영한 단편영화 <빵과 골목>이다. 그는 처음부터 자기가 어떤 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지를 알고 시작한 사람이다. 단순한 이야기, 소년은 빵을 사들고 집에 가야 하는데 좁은 골목에 사나운 개가 지키고 있다. 개를 지나치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가 없다. 전설적인 시작. 아마 이보다 키아로스타미의 방법론을 설명하기에 좋은 예는 달리 없을 것이다. 키아로스타미는 소년과 개를 하나의 숏으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소년에 대한 개의 반응을 찍기 위하여 무작정 기다리기 시작했다. 촬영감독은 그걸 나눠 찍자고 요구했지만 키아로스타미는 거절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40일을 기다렸다. “물론 40일을 기다린다고 해서 그 장면을 찍는다는 보장은 없죠. 하지만 영화는 기다리면 기적이 찾아옵니다. 그걸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나는 그 후 이 원칙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새로운 영화의 예술가들은 언제나 숏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시작했다. 키아로스타미는 영화에서의 숏은 주어진 세계 안에서의 입방체라고 불렀다. 그래서 모든 숏은 6개의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와 비슷한 개념을 노엘 버치가 <영화의 실천>에서 제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키아로스타미의 숏은 그런 구조-형식 모델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는 몇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다. “영화가 시작한다는 것은 내가 그 장소에 가서 서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장소에 가서 서 있다는 말. 그 영화를 만드는 것은 키아로스타미에게 그 장소에 가는 일이었다. 그걸 ‘영화에 관한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1999)에서 마치 자신의 영화 작업에 관한 마스터클래스를 전개하듯이 보여준다. 장소의 방법론. 물론 영화는 프레임을 정하는 순간 그 장소에 관한 하나의 면만이 보일 뿐이다. “프레임의 한계라는 결정적인 약점이 영화를 예술로 만들어준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때 키아로스타미의 숏들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6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입방체이다. 그 사이로 화면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안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는 카메라가 방 안에 머물러 있어도 영화에서 하늘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키아로스타미는 자동차 안에서 내내 영화가 진행되어도 두려움이 없을 수 있었다. 자동차와 세계. 두편의 전혀 다른 영화, <체리 향기>(1997)와 <텐>(2002)은 영화의 (거의) 대부분을 자동차 안에서 진행한다.

나는 약간 우회할 필요를 느낀다. 키아로스타미는 숏을 나누는 것을 혐오하면서 처음부터 ‘슬로 시네마’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러면서 점점 더 완만해져갔다. “카메라 앞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믿는게 가장 중요해요. 그게 무슨 일이든 단 한번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만 해요.” 거의 끝까지 간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에게 바치는 ‘필로 숏’의 시네마라고 부를 <파이브>(2003)이다. 여기서 카메라는 거의 무한정이라고 부를 만한 시간으로 멈춰 서서 파도와 지나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오리들의 ‘감동적인’ 이동 장면을 기다린다. 누군가는 이 영화에 질겁할 것이고 누군가는 완전히 굴복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키아로스타미가 더 싫어한 것은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영화의 숏들은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클로즈업은 영화를 보는 쪽의 머릿속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키아로스타미는 롱테이크가 영화를 보는 사람이 주제 전체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기계적인 클로즈업은 현실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맞을 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키아로스타미는 그가 의식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앙드레 바쟁의 교훈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다. “우리는 영화 관객을 존중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놓은 다음 재빨리 물러나야만 해요. 그러면 그들은 거기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탐색을 시작할 것입니다.”

여기서 키아로스타미의 사운드에 관한 새로운 차원이 열렸다. 그렇다. 이건 열렸다, 고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다. “나에겐 이미지보다 사운드가 훨씬 중요해요. 내게 촬영을 한다는 말은 녹음을 한다는 말입니다. 영화에서 이미지는 2차원에 지나지 않지만 사운드는 언제나 3차원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장편영화 <리포트>(1977)는 이란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동시녹음 영화였다. 그런 다음 키아로스타미는 한번도 동시녹음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좀더 웅변적으로 말했다. “영화는 회화보다는 그런 점에서 건축에 더 가깝죠. 영화는 공간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으로 자기가 들어가는 예술이니까요. 그러므로 하나의 숏은 반드시 자기의 소리를 가져야만 합니다.” 마치 사운드 녹음이 사고라도 난 것만 같은 <클로즈업>의 한순간의 쇼크. 그건 하나의 세계가 갑자기 침묵을 맹세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다른 예가 있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서 그 유명한 장면. 촬영을 빌미로 테라스에서 사랑하는 테헤레에게 마음을 고백하려는 호세인은 심호흡을 하고 말을 꺼내려 하지만 화면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때문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다. 키아로스타미는 그 순간 그냥 멈춰 서서 호세인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듯이 기다린다. 그러나 그를 방해하고 있는 화면 바깥의 소리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세상에 하나의 소리라는 순간은 없습니다. 우리는 장소가 만들어주는 소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소리의 믹싱 상태만이 장소를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체리 향기>

키아로스타미와 어린이와 동물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는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걸 영화에서 실천한 사람은 로베르 브레송이다. 하지만 이미 말한 것처럼 키아로스타미는 브레송의 노선을 따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에는 브레송의 클로즈업이 없다. 테헤란 영화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마치 코란의 경구를 읊듯이 키아로스타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작은 이야기를 찍으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작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덧붙였다. “영화는 인생의 파노라마를 경험하는 예술이 아닙니다.” 아마 이 말은 키아로스타미 자신의 영화를 정의내리는 가장 좋은 표현일 것이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분석의 과정과 동일한 것이라고 믿었던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영화는 만드는 나(me)라는 개인의 경험을 분석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분석의 주관성 속에서 자신을 비판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영화를 만드는 나와 영화 속 등장인물이 어떻게 서로 동화되어갈 수 있는지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만들어나갔다. 단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는 장면 때문만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양탄자의 실타래처럼 연결되면서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3부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다시 그 아이를 찾아가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거쳐 갑자기 옆길로 새는 듯한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로 이어지면서 키아로스타미는 영화를 만드는 자신의 과정 그 자체를 영화로 만든다. 이건 그저 영화에서 하나의 발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영화학교에는 짓궂은 질문이 있다, 어린이와 동물은 어떻게 연기지도를 하나요? 이 난공불락의 대상. 그런데 키아로스타미는 둘 다 문제를 해결해버렸다. <파이브>에서는 오리 떼가 연기를 하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는다. 그래서 그를 만나면 영화감독들은 은밀하게 맨 먼저 질문하였다. “당신의 연기지도 비밀은 무엇인가요?” 키아로스타미는 두 종류의 배우들과 영화를 만들었다. 하나는 단 한번도 연기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훈련된 배우들이었다. 물론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중에는 줄리엣 비노쉬도 있다(<쉬린>과 <사랑을 카피하다>). “나에게 그 둘은 아무 차이가 없어요. 중요한 건 촬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어떻게 서로 친밀감을 느껴 나가냐는 것이죠.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그런 일은 불가능해지니까요. 무엇보다 연기를 지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둘 사이에서 그(녀)가 내가 되고 내가 그(녀)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그래서 나는 촬영감독과 사이가 항상 나빠요. 그들이 보기에는 내가 준비가 안 된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심지어 누군가는 나를 배우지상주의(Acteurocrate, 俳優至上主義)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만일 내 영화에서 무언가 특별한 연기를 해낸 순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 관계의 순간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유명한 일화가 있다. 키아로스타미는 <올리브 나무 사이로>를 찍을 때 주연인 호세인과 촬영 일년 전부터 매주 혹은 2주에 한번씩 만났다. 호세인에게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라는 대사를 주었는데 이상하게 이 대사를 외우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 대사를 호세인은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버렸다. 키아로스타미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바꾸었다. 같은 말의 반복. “배우가 대사를 한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사에 대한 믿음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배우는 대사와 자기 삶의 관계를 찾아나가는 거지요. 그때 영화는 그걸 찾아가는 과정을 찍는 예술입니다.”

지그재그로 여기에 이르렀다. 그 언덕길 맨 위에는 어떤 나무가 있었을까. (내 생각에)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결국 <텐>이다. 아마 누군가는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물론 그 견해를 존중하지만 내 결론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텐>은 두대의 디지털카메라와 세개의 렌즈, 동시녹음기, 그리고 자동차 한대로 영화를 찍었다. 감독, 각본, 촬영, 녹음, 편집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가 시작하면 ‘10’이라는 숫자가 떠오른 다음 한 아이가 이 차에 올라탄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고 자동차가 출발하면 옆에 앉은 (아직은 얼굴이 보이지 않은) 여자와 대화가 시작된다. 16분12초 동안 고정된 단 하나의 카메라로 진행될 때 우리는 영화의 존재론이라는 질문 앞에서 무언가 예상치 못했던 큰 사건과 만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미지가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든 키아로스타미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영화에서 우리가 덜 창조적이 될수록 더 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혁명적 사고. 더도 덜도 아닌 로셀리니의 태도. 에릭 로메르는 프랑수아 트뤼포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말했다. “로셀리니의 영화가 왜 위대한 줄 알아? 단 하나의 숏에서도 상상력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지.” <텐>은 1959년 <네 멋대로 해라>가 한 것을 2002년에 하는 중이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칼로 내려치는 것만 같은 어떤 절단. 오직 용기 있는 예술가들만이 할 수 있는 전진.

<텐>

미완의 영화들에 슬퍼하며

내가 가장 비통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키아로스타미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단지 그가 지금 찍을 예정이었다는 베이징의 큰 건물에서 일하는 이란 청소부의 이야기가 되었을 <바람 속의 걸음>을 미처 찍지도 못했다거나, 진행 중이었던 뤼미에르 프로젝트가 미완성으로 끝났다거나 이야기가 오가던 뉴욕 MoMA에서의 대규모 사진 인스톨레이션이 중단된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향해 마치 그런 길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마다 영화라는 입방체가 점점 넓어져갔다. 그리고 갑자기 여기서 지금 중단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길이 그만 여기서 닫힐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난다. 나는 의도적으로 여기서, 라는 말을 두번 썼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열어놓은 길. 나는 지구상에서 지금 영화를 만들면서 그 뒤를 이어갈 어떤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키아로스타미는 이미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의 영화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나요?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베토벤에게 누군가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의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야 하나요? 그러자 그는 대답을 하는 대신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피아노에 다가간 다음 자신이 작곡한 소나타를 연주했어요.” 결국 그 방법뿐이다. 우리가 그걸 배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키아로스타미가 남겨준 영화들을 보고 또 보는 것뿐이다. 천천히 다시 읽어주기 바란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나는 오늘밤 무언가 비밀이 담겨 있는 것만 같은 신비로운 영화, 너무 짧은 영화, 하지만 수백번을 반복해서 보고 싶은 영화 <하나의 문제를 위한 두 가지 해결방법>(1975)을 보고 또 볼 생각이다. 아니, 어쩌면 <여행자>(1974)를 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귀엽기 짝이 없는 <일학년>(1974)이 떠오른다. 서성거리는 선택. 그건 당신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제 마음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벌써 제 곁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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