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발견한 로마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지만 내가 남기는 로마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을 것이오.” 제정 로마의 근간을 마련하고 200년에 달하는 팍스 로마나를 이끈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소설 <아우구스투스>는 여리고 명민한 열아홉 청년 옥타비우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뒤를 이어 로마의 1인자 아우구스투스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는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미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안토니우스에게 군사력과 재력 면에서 열세였지만 노회한 정치적 감각과 선왕의 명예 회복에 대한 의지로 내전에서 차근차근 승리를 쟁취해나가며 초대 황제 자리에 오른다. 1부가 공적 영역에서 주인공의 입신을 다룬다면 2부는 그와 달리 철저히 불운했던 사적 생활을 그린다. 황제는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파벌과 암투에 얽혀 애지중지하던 무남독녀 딸을 유배하기에 이른다. 1, 2부는 황제 주변 인물들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아우구스투스의 친구, 신하, 정치적 라이벌, 딸, 아내, 유모 등 다양한 관계에 놓여 있는 이들이 기록한 서신, 회고록, 연설문, 일기 등을 통해 정치적 암투와 전투 상황이 그려진다. 아우구스투스는 3부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전기를 쓴 니콜라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직접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고 소회를 밝힌다. 그제야 성공한 공적 인생과 실패한 사적 인생으로 요약되던 전형적인 세계사 속 위인은 소문의 세계를 뚜벅뚜벅 걸어나온다. 물론 저자 존 윌리엄스의 시선을 통해서 말이다. 존 윌리엄스는 1972년에 쓰여진 이 작품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대니얼 맨델슨은 “고전 세계를 다룬 최고의 역사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투스> 역시 과거를 제안하되 재현하려들지는 않는다”고 평했다. 존 윌리엄스는 1960년에 쓴 전작 <스토너>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간 한 남자의 일생을 그렸다. <아우구스투스>는 역사 속 영웅에 대한 이야기지만 세월의 굴레를 벗어난 영웅의 모습은 <스토너> 속 평범한 남자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청년과 황제의 간극 사이에서
종조부 유언이 너를 어떤 세계로 불러들일지 잘 따져봐야 해. 네가 어렸을 때 뛰어놀던 벨레트리처럼 소박한 전원 세계와는 거리가 멀단다. 소년 시절, 가정교사와 유모가 돌봐주던 가족 세계도 아니고 청년 시절 유유자적하던 책과 철학의 세계도 아니구나. 아니, 심지어 (내 의사에 반해) 카이사르가 너를 끌어들인 단순무지한 전쟁 세상과도 다르단다. 그곳은 바로 로마 세계야. 피아의 구분이 불가능한 곳. 가치보다 특권을 존중하고 원칙이 이기심에 굴복하는 곳.(39쪽)
폐하께서 다음에 서한을 보내실 때 염원을 보다 강하게 밝히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보다 약하고 위대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소인은 심각하고 진중하나 폐하께옵서는 경쾌하고 밝아야 하옵니다.(1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