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과 <대호>, <동주>와 <해어화>, 그리고 <밀정>. 일본 출신 배우 다케다 히로미쓰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다. 최근 몇년 새 일제시대 혹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의 풍경 속에는 늘 그가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역할로 출연했는지 단번에 생각나지 않는다고? 그럴 수도 있다. 비중 있는 일본인 캐릭터는 한국 배우가 연기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다케다 히로미쓰가 맡은 배역에 약간의 첨언을 하자면 <명량>에서 그는 배우 조진웅이 연기한 일본 무장 와키자카의 수하로 출연했다. <대호>에서는 조선 호랑이를 사냥하려는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를 보필하는 부관 역할을 맡았고, <동주>에는 시인 윤동주(강하늘)가 수감된 후쿠오카 교도소의 간수장으로 등장한다. <해어화>에선 일본군을 죽인 서연희(천우희)의 거처를 수색하는 일본군 헌병 장교로, <밀정>에서는 일본인 형사로 출연했다. “아직까지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인 캐릭터라고 하면 악역이 많다. 하하. 아무래도 일제시대가 배경인 작품에 일본인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한국에서 ‘악역 전문 배우’가 된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한국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일본에서 온 사람이니까. 어떤 역할이라도 주어지면 맡을 생각이다.” 유창한 한국어로 그가 말했다.
오사카 출신의 다케다 히로미쓰가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건 지난 2006년이다. 일본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연기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영화에 매료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영화가 일본에서 ‘한류’로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시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만들어졌던 한국영화, 그중에서도 김기덕, 홍상수, 박찬욱, 봉준호감독님의 작품은 영화팬들에게 간간이 소개가 되고 있었다. 이 감독님들의 영화를 보는데 당시 일본영화에서 느낄 수 없던 에너지가 한국영화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어를 알지 못했고, 지인도 없었지만 일단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는 무작정 서울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소속사 매니저가 “몇박 며칠 있다 올 거냐”고 물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여정이었다. 처음에는 석달만 지내보자는 생각이었지만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 낯선 신세계의 매력을 알게 된 다케다 히로미쓰는 결국 이듬해 서울행 편도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의 소극장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갑작스럽게 한국행을 선택한 일본인 배우를 찾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다케다 히로미쓰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언어 장벽부터 돌파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어 어학당에 다녔고 한국어 능력시험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기회는 불현듯 찾아왔다. ‘이아이도’라는 일본 검술을 구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에 캐스팅된 것이다. 그렇게 다케다 히로미쓰는 충무로에서의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에게 일본영화 현장과 충무로의 가장 큰 차이를 물으니 재미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 한국영화 현장에 가서 가장 놀란 게 ‘밥차’다. 일본에서는 도시락 먹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그러다보니 주연배우, 조연배우, 단역배우, 연출부, 촬영부, 미술부가 다 따로따로 밥을 먹는다. 영화 한편의 촬영을 마칠 때까지 조명부 같은 기술 파트의 스탭들과 한번도 얘기를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다 같이 밥을 먹으니 팀의 구분 없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인사 나누는 게 가능하더라. 차갑게 식은 도시락이 아니라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을 먹는 기분도 좋았고. (웃음) 그런 현장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한국에서 계속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케다 히로미쓰는 최근 김형주 감독의 <보안관>의 촬영을 마쳤다.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야쿠자 역할이라고 한다. 오는 11월 초 촬영을 시작할 <대장 김창수>에서는 주인공 김창수를 이용하려는 일본 영사 와타나베로 출연한다고. 어떤 역할이든 즐겁게 연기하려 한다는 그지만 일본인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폭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은 아쉬울 법도 하다. “원래 일본에서는 코믹 연기를 많이 했었다. 한국에 오니 그런 역할을 맡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더라. 미국영화, 유럽영화를 보면 아시아 배우가 출연한다 해도 그 사람의 국적보다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특성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나. 한국영화계에서도 진짜 현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혹은 관습적이지 않은 외국인 캐릭터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상반기 개봉한 <곡성>의 외지인(구니무라 준)이라는 인물은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일본인 캐릭터라 희망을 느꼈다.” 언젠가 일본인 캐릭터에서 나아가 한국인 역할을 맡아보고 싶다는 다케다 히로미쓰의 충무로 공략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꿈이 이뤄졌다”
일본에서 한국영화를 즐겨보던 시절부터 다케다 히로미쓰에게 김기덕 감독은 동경하는 연출자였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를 조명하는 김기덕 감독의 <스톱>(2015)에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을 두고 그는 “꿈이 이뤄졌다”고 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후쿠시마 출신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고기를 도쿄에 파는 남자를 연기한다. 김기덕 감독과의 작업은 그에게 여러모로 새로운 자극을 줬다. 거장 감독이 영화를 찍기 위해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과 오로지 ‘본능’에 의지해 영화를 만든다는 점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영화 <보안관>(2016) <아웃레이지3>(2016) <아이 엠 어 히어로>(2016) <밀정>(2016) <해어화>(2016) <동주>(2015) <대호>(2015) <스톱>(2014) <명량>(2014) <도쿄택시>(2010)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 방송 <심야식당4>(2016) <임진왜란1592>(2016) <비정상회담>(2014) <끝없는 사랑>(2014)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