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다문화 사회의 면면을 보여주겠다 ─ 수입·배급사 M&M 인터내셔널 대표 이마붑
2016-10-31
글 : 윤혜지
사진 : 백종헌

“귀화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다들 내가 외국인인 줄 안다. 여기서 17년째 살고 있는데 아직도 어디서 왔냐, 한국어 할 줄 아냐고 한다. 이젠 그만 좀 물어봤으면 좋겠다. (웃음)” 본명은 마붑 알엄, 몇년 전 한국인 아내의 성을 따라 이씨로 성을 바꾼 이마붑 대표는 지난해 11월에 유럽영화와 서남아시아영화를 수입·배급하는 회사 M&M 인터내셔널을 차렸다. <반두비>의 이주노동자 청년 카림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사실 특집 제목과 달리 엄연한 한국인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외국인 인부 역할로 출연한 인연으로 신동일 감독과 친구가 되었고 그때만 해도 이마붑 대표는 자신이 배우로 쭉 활동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신동일 감독이 <반두비>에 출연할 배우를 찾는 일을 돕고 시나리오도 함께 살피는 일을 하던 중 섭외가 쉽지 않아 힘겹게 12kg을 감량하고 직접 출연했다고 한다.

배우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전공은 경영이다. 방글라데시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문화예술사업 기획자가 되길 꿈꾸었던 이마붑 대표는 박사과정 학비를 단기간에 벌기 위해 22살에 이주노동자로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학생이던 1998년쯤엔 방글라데시에 한국 이주노동이 유행할 때였다. 막상 한국에 와보니 이주민들의 환경이 너무 열악하더라. 자연스레 이주민 인권운동에 관심이 생겼고, 어떻게 한국인들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현실을 어떻게 바꿔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마붑대표는 2004년, 이주민방송 MWTV를 만들어 프로그램 <이주노동자 세상> <다국어 이주노동자 뉴스> 등을 제작, 송출했다. MWTV 아카데미를 차려 이주노동자들에게 미디어 교육도 시키고 있으며 올해로 10년째 이주민영화제도 개최해오고 있다.“적응 초기엔 인종차별을 겪은 적도 있고, 협박 전화도 종종 받았다. 놀랍고 신기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편견을 겁내면 일이 더 힘들어진다. 하루하루가 그런 고민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그만큼 작업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꾸준히 이주노동자 인권 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는 미술기획자 이병한과 신동일, 이우열 감독 등이 오랜 시간 이마붑 대표를 도운 친구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내를 만났고 결혼해 자리잡은 지도 10년이 지났다. “초반에 적응이 워낙 힘들어서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갖고 있었기에 귀화하는 것이 좋은 방향일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런데 2012년에 제31회 세종문화상을 받게 됐다. 나의 정치적 주관과 무관하게 대통령상을 받았다는 기쁨이 컸다. 나도 이 나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안심이 됐다. 완전히 한국인으로서 자리잡고 싶어서 일부러 방글라데시 국적도 포기했다.”

방글라데시로 돌아가 사업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한국 문화에 길이 들 대로든 그는 어느샌가 방글라데시가 더 불편해졌다고 했다. “물이 안 맞는다고 하잖나. 한국에 오래 살아서인지 방글라데시에 가서 고향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날 때도 있었다. 한국의 소위 ‘빡센 문화’에도 완전히 적응해버렸다. 다른 한국인들처럼 나도 뭐든 빨리 일처리를 해야 하고 성질이 급해진 걸 알게 됐다. (웃음)” 이마붑 대표가 가장 사랑하는 한국 음식은 삼겹살과 소주다. “이주민방송을 하며 다국적의 사람들과 회식을 자주 했다. 내가 늘 최종 결정권자여서 돼지고기를 피하고, 소고기는 비싸서 못 먹게 되니 닭고기밖에 먹을 게 없더라. 다들 닭을 지겨워하고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싶어 했다. 그래서 삼겹살 회식을 하는 동안 나는 따로 음식을 시켜먹곤 했는데 다들 맛있게 먹는 걸 보니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싶어졌다. 교리도 중요하지만 삶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할 만큼 까다롭다면 종교가 차라리 없는게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처음 돼지고기를 먹었을 땐 찝찝하고 속이 좋지 않았는데 먹다보니 맛을 알게 됐다. 느끼하면 소주를 먹으면 된다는 것도 알았고. (웃음)”

수입·배급사를 차린 데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우연히 발견한 <반두비>의 해적판 영향이 컸다. “오스트리아 빈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어느 식당 TV에서 <반두비>를 보여주더라. 그런데 더빙이 아주 어색하고 화면 상태도 좋지 않았다. 정식 수입 절차를 거치지 않은 해적 방송이구나 싶더라. 네팔을 여행할 땐 길에 놓고 파는 DVD들에 <반두비>가 끼어 있는 걸 발견했다. 기본적으로 다들 한국의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인프라가 없었다. 해외영화가 한국에 소개되지 않는 것처럼 소규모의 한국영화도 해외에 소개될 길이 없는 걸 알고 플랫폼으로써 서로의 나라에 서로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어졌다.” 꾸준히 이주민들을 위한 방송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극영화를 제작해왔지만 “지원이 없인 제작이 힘들고, 제작 해봤자 플랫폼이 없인 관객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된 까닭이기도 하다. “콘텐츠 자체가 여전히 부족하다. 선량한 이주민을 다른 선량한 한국인이 도와줘서 친구가 된다는 식의 단순한 포맷의 영화들뿐이다. 더 다양한 다문화 사회의 면면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생겼고 이주민 콘텐츠 기획자도 더 늘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다문화 이슈를 낯설고 어렵게 생각하는 한국인 선주민들과 이주민들의 일상적인 만남의 장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이마붑 대표의 소망도 지금까지 그가 해온 일들처럼 꾸준히 확장되어 갈 것이다.

<반두비>

카림을 기억하세요?

<방문자>(2006),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이은 신동일 감독의 ‘관계 3부작’ 완결편인 <반두비>는 같은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두 낯선 인간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린다. <반두비>에서 이마붑 대표는 17살 고등학생 민서(백진희)와 친구가 되는 29살 이주노동자청년 카림을 연기했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와 일자리를 얻었지만 악덕 공장장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카림은 그럼에도 인간으로서의 맑은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 카림은 대상의 자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직접 말하고 목소리를 낸, 한국영화 최초의 주체적인 이주노동자 캐릭터였다.

배우 <아수라>(2016) <헤이는>(2015) <은밀한 유혹>(2015) <처용>(2014) <그댄 나의 뱀파이어>(2014) <러브 인 코리아>(2010) <시티 오브 크레인>(2010) <반두비>(2008) <나의 친구 그의 아내>(2008) <로니를 찾아서>(2008) <죽음을 슬퍼하며>(2008) 연출 뮤직비디오 <메로 가오, 내 고향>(2010) 다큐멘터리 <희망의 송아지>(2008) 다큐멘터리 <Together As One>(2007) 다큐멘터리 <쫓겨난 사람들>(2007) <소울 플레이스>(2012, 공저) <나는 지구인이다>(2010) 기획 지구인뮤직밴드 기획 및 운영(2013) 제1회 서울이주민예술제(2012) 이주민문화예술센터 프리포트 설립 및 운영(2012∼13)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 설립 및 운영(2011∼13) 방글라데시 연극단 ‘Bangladesh Migrant Theater’ 설립 및 운영(2007) 이주민영화제(2006∼16) 이주민방송 MWTV 설립 및 운영(2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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