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인천다큐멘터리포트 2016…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문제제기
2016-11-14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외국 게스트들이 많은데, 지금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한국은 다큐멘터리를 하기에 무척 적합한 나라다. 극영화를 하기엔 현실이 작가들의 상상력을 너무 앞서가고 있다. 지금의 샤머니즘적 정치 상황을 예견한 다큐멘터리도 이미 나와 있다. 박찬경의 <만신>이라고. 나 역시 우주의 기운을 받아서 사회를 잘 보도록 하겠다. ”(변영주)

인천다큐멘터리포트 피칭 사회를 4년째 맡고 있는, 계약서만 안 썼다뿐이지 앞으로도 종신 사회를 볼 것 같은 변영주 감독이 시의적절한 인사말로 인천다큐멘터리포트 2016의 K-피칭 시작을 알렸다. 50편이 넘는 한국 다큐멘터리가 K-피칭 부문에 출품됐고 최종 선정작 8편이 11월5일 오전 인천 파라다이스호텔에서 피칭을 가졌다. 각국의 방송 및 영화 관계자들로 구성된 패널(디시전 메이커)들은 ‘ㄷ’자로 둘러앉아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재를 유심히 살폈고, 신랄한 지적과 훈훈한 지지를 보냈다. 우선 여성의 생리를 다룬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에는 “40대 중반의 남자로서 이런 소재가 낯선 지점이 있다. 남성 관객이나 시청자들을 위해서 어떤 설득적 요소들을 추가할 생각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따랐고,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이길보라 감독의 <기억의 전쟁>에 대해선 “한국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는 해외 패널들의 공통된 의견이 있었다. “표를 던지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스탈린의 말을 인용하며 피칭을 시작한 최하동하 감독의 <기술자들>은 “이런 음모론을 다룰 때는 확실한 증거와 팩트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이 따랐다.

이어서 장애를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세편의 다큐멘터리가 소개됐다. 지적장애 기타리스트의 얘기를 담은 현진식 감독의 <리틀 걸 블루>는 “단순히 이 소녀가 예뻐서, 기타를 잘 쳐서가 아니라 정말로 이 소녀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이유가 담겨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각장애인 연극배우의 삶을 그린 태휘원·김재영 감독의 <초승달의 집>에는 “예술에 관한 영화인지, 연극배우의 삶에 대한 영화인지, 장애에 대한 얘기인지 애매한 것 같다”는 평이 있었다. 장애를 가진 감독의 딸이 등장하는 권우정 감독의 <까치발>에 이르자 “본인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지지와 함께 “장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많은데 비슷한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 것인지 궁금하다”는 의견이 더해졌다. 이원우 감독이 필름으로 써내려가는 외할아버지의 자서전 <옵티그래프>는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아직 정리가 덜 된 느낌”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마지막 피칭작 <얼굴, 그 맞은편>은 일본, 핀란드, 카타르 등 해외 패널들로부터 “강렬한 주제, 꼭 필요한 주제”라는 공감을 얻었다.

K-피칭 패널로 참석한 CGV아트하우스 이원재 과장은 “여성 이슈를 다룬 작품이 많은 게 눈에 띈다. 더불어 여성 신진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고 올해 K-피칭의 한 경향을 설명했다. 실제로 여성의 생리 인권을 다룬 <피의 연대기>가 피칭의 포문을 열었고, 여성 혐오 범죄의 일환인 ‘리벤지 포르노’ 문제를 다룬 <얼굴, 그 맞은편>이 피칭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김원중 인천다큐멘터리포트 프로듀서 역시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8편의 작품 중 5편이 여성 감독의 작품이다. 1인 미디어의 발달 등 여성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하기 수월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긍정적이다.” K-피칭에 이어서 열린 러프컷 세일 프레젠테이션에선 지혜원 감독의 <앵그리버드와 노래를>,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 김일란·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 정윤석 감독의 <밤섬해적단 습격의 시작>, 문창용·전진 감독의 <앙뚜> 이상 5편의 작품이 소개됐다. 후반작업 및 완성 단계에 있는 5편의 프로젝트들 중엔 과거 인천다큐멘터리포트 K-피칭에서 소개된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가 다큐멘터리 제작의 선순환을 이끄는 실질적인 마켓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 대한 아시아 영화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지훈 인천다큐멘터리포트 프로듀서는 “자비를 들여 행사에 참가하겠다는 외국 게스트들이 많았고, 실제로 50명가량의 해외 산업 관계자들이 자비로 인천을 찾았다”고 전했다.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인천다큐멘터리포트가 아시아의 중요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마켓으로 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아시아 다큐멘터리들을 소개하는 A-피칭에선 흥미로운 인물, 소재, 형식을 담은 작품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23개국에서 58편의 작품이 출품됐고 그중 최종 선정작 10편이 행사 마지막날인 11월6일 오전에 소개됐다. 베트남 도시인들의 모습을 새장 속에 갇힌 새에 비유한 다오 탄 흥 감독의 <새장 속의 노래>는 “아름다운 영화가 될 것 같다”, “재능 있는 감독같다”는 평을 들었고, 의사가 되어 사회에 헌신하고 싶어 하는 14살 여승을 통해 미얀마의 현대사회와 불교의 관계, 나아가 아이들의 교육권과 인권을 얘기하는 세인 리안 툰 감독의 <제자라에게 보내는 편지>는 “인물이 무척 흥미롭고 사랑스럽다”, “배급 및 지원과 관련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호평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 두편에 A-피칭 부문 본상인 ‘베스트 아시안 프로젝트’와 ‘다큐 스피릿 어워드’가 돌아갔다. <북경자전거> <상하이 드림> 등을 만들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왕샤오솨이 감독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마이 차이나>가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서 소개된 것 또한 흥미로웠다.

피칭 후 이어진 비즈니스 미팅은 239건이었다. 지난해에 비해 프로젝트별 미팅이 증가했다. 현물지원을 포함한 18개 부문의 시상에선 총 23개 프로젝트 중 14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피칭에 참여한 작품 과반 이상에 수혜가 고루 돌아간 셈이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최전선,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최전선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인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11월6일 수상작 발표를 끝으로 내년을 기약했다. 쉽지 않은 여건 속에 치러진 행사였지만 다큐멘터리의 기획부터 배급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국내 유일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마켓으로서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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