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피해자들의 슬픔을 전시하지 않겠다 - <얼굴, 그 맞은편> 이선희 감독
2016-11-14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리벤지 포르노는 당사자의 허락이나 인지 없이 촬영하거나 배포되는 성관계 동영상이나 성적 사진을 뜻한다. 그렇게 유포된 동영상은 로그인 절차 없이 한두번의 클릭만으로 감상할 수 있다. 당장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도 없다.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본인이 자신의 민감한 신체부위나 사생활을 촬영하더라도 제3자가 이를 동의 없이 유포하면 성범죄로 처벌하도록 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을 뿐이다. 피해자는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유린되고 있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다. 여성운동을 하고 있는 이선희 감독의 <얼굴, 그 맞은편>은 “피해자를 범법자처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하는 다큐멘터리다.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 A씨는 어떻게 알게 됐나.

=몇년 전, 여성운동을 하고 있는 까닭에 피해자 몇분의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을지 상담도 해왔다. 남자친구와 사귀는 동안 성관계를 했는데 자신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이별하자마자 동영상을 온라인에 올리겠다고 협박당한 사례였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자신의 얼굴이 찍힌 동영상을 온라인에서 완전히 삭제하지 못했고, 얼굴이 알려지면서 학교도, 직장도 나가지 못하는 거다. 그야말로 난센스였다.

-피해 사례를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하고 동영상 삭제를 시도했지만 서버가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아 영원히 삭제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관련 법도 없어 무척 답답했다.

-카메라를 든 것도 그 때문인가.

=경찰이 가해자를 체포한다고 해도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평생 간다. 피해자의 트라우마가 무엇인가. 타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네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뜻이 담긴 시선이다. 이 작품을 통해 피해자를 찍은 사람, 그 동영상을 보는 사람, 동영상을 올려 돈을 버는 사람 모두에게 잘못됐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은 A씨인가.

=아니다. ‘리벤지포르노아웃팀’(Revenge Porn Out. 최근 팀 이름을 디지털성범죄아웃팀으로 바꿨다)에서 소라넷 폐지 운동을 벌인 친구들이 있다. 소라넷은 리벤지 포르노의 온상이었다. 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 한명인 팀장이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얼굴을 공개하면 신상이 털릴 텐데 괜찮겠냐고 물어보니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피해자들을 위해서는 얼굴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총대를 포함해 리벤지 포르노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되나.

=‘르포’(리벤지포르노아웃의 약자)를 포함한 리벤지 포르노 반대 운동들을 카메라에 담을 계획이다. 내년에는 해외 사례들을 취재할 거고, 문화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한 생각들을 모을 예정이다. 분명한 것은 피해자들의 슬픔을 전시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진 않을 거라는 거다.

-다큐멘터리 작업이 여성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맞다. 다큐멘터리는 내게 (여성운동의) 수단이다. 첫 번째 작품 <서른넷, 길 위에서>도 장애여성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온라인상에서 좀비처럼 파편화된 피해 여성들의 존재를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름답게 그려내고 싶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미와 다르지만 말이다.

한줄 관전 포인트

어떻게 구성될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르포’가 매일 리벤지 포르노물을 모니터링하고, 경찰과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서사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