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전하는 기타리스트.’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검색하면 ‘그녀’의 기타 연주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기타를 퉁기는 표정이 무척 진지해 그저 취미 삼을 요량으로 연주하는 건 아닌 듯하다. 현진식 감독 또한 페이스북에 올라온 연주 영상을 보고 기자와 다른 의미에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곧잘 치는데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었다. 보통 기타 치는 사람들을 보면 곡을 자신의 개성에 맞게 연주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색깔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어떤 “촉”이 발동했고, 그녀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영상과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올해로 22살인 그녀는 2급 지적장애 기타리스트 김지희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록밴드 파울로시티의 기타리스트이면서 영화음악 제작그룹인 ‘보이그트-캄프’의 리더인 현진식 감독에게 그녀는 자연스러운 관심 대상이었다. “평소에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세 가지 소재를 가지고 차례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첫째가 커피, 둘째가 기타나 음악, 셋째가 사진.” 그의 첫 연출작 <바람커피로드>가 커피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였으니 두 번째 작품을 앞두고 그녀의 영상을 본 건 운명인가보다. “대학 시절 친했던 장애인 친구도 있어 장애인은 오래전부터 내 시야에 있었다.” 하지만 몇 차례 방영된, 그녀를 소재로 한 방송다큐멘터리는 ‘뮤지션 김지희’보다 ‘장애인 기타리스트’에 초점이 맞춰진 게 사실이다. 그는 “장애인의 범주 안에서 그려진 그녀가 뮤지션으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카메라를 들기로 결심”했다. “미디어 노출에 긍정적”이었던 지희씨의 가족 또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현진식 감독이 가까이서 지켜본 지희씨의 기타 연주 실력은 굉장히 좋았다. 명곡을 한치의 오차 없이 연주할 만큼 테크닉이 뛰어났고, 지독한 연습 벌레이기도 했다. 감독은 그게 그녀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뮤지션은 자신의 곡을 만들어 연주해 먹고살아야 한다. 하지만 지희씨는 지적장애 때문에 새로운 곡을 만들어내거나 기존의 곡을 자신의 개성에 맞게 연주하는 실력이 아직은 부족했다. 그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틀을 깨는 게 중요했다. 현진식 감독이 처음 만난 지희씨 앞에서 시끄러운 곡을 연주해 보였던 것도 그래서다. “기타 소리도 목소리도 무척 작은 지희씨에게 기타가 큰 소리를 낼 줄 아는 악기임을 알려주고, 조금 더 큰 소리에 익숙해지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현 감독의 연주를 들은 지희씨의 눈은 휘둥그레졌다고 한다. “예쁘고 깔끔한 음악만 연주해오고, 그런 곡만 있다고 생각한 그녀가 우당탕 하는 음악을 들었을 때 충격이 컸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가족의 테두리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볼륨이 작았다면 가족보다 더 큰 사회에서는 더 큰 볼륨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사회와 더 큰 음악 세계에 적응해나가려는 그녀의 성장담이라 할 만하다.
지희씨가 자신의 곡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리틀 걸 블루>의 또 다른 축이다. “지희씨가 자신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선생님과 함께 곡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판타지”라면 “그 곡을 다른 사람들에게 발표하고 평가를 받는 과정은 현실”이 될 것이다. “특히 지희씨가 즐겨 연주하는 음악 장르가 뉴에이지인데 한국에서 이 장르는 가뜩이나 안 팔리는 음악이 아닌가. 벽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고, 그 벽을 또 넘어가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게 현진식 감독의 계획이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희씨와 그녀의 가족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중에 이 작품이 어떤 성과를 거두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촬영이 지희씨에게 소중한 시간이 됐으면 좋겠고, 앞으로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데 토양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이런 진심을 쏟고 있는 작품이라면 지희씨와 관객에게도 그 마음이 잘 전달될 것 같다.
한줄 관전 포인트
유독 장애인에게 벽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야기인 만큼 김지희씨의 실력 있는 기타 연주가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