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그래프>는 이원우 감독의 외할아버지가 백수 생신 잔칫날 자신의 자서전을 손녀에게 부탁하면서 태동한 작품이다. 이듬해 유럽 배낭여행 도중 외할아버지의 부음을 들은 이원우 감독은 귀국해 할아버지의 이름을 검색하는데, 검색 엔진을 통해 드러난 할아버지의 과거는 충격적이었다. 한때 내무부 장관이었고 2선 국회의원이었던 할아버지의 사회적 지위는 알고 있었지만 이원우 감독에게는 그저 “남자도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그것을 몸소 보여주었던 할아버지, 끝까지 소박한 삶을 살다 가신 늙은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원우 감독의 외할아버지인 장석윤. 그는 일제강점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CIA의 전신인 O.S.S 요원으로 활동했다. 이승만과 김구의 연락책이기도 했고, 한국전쟁 발발 초기엔 치안국장을 역임했다. 할아버지가 치안국장으로 있던 시기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이 벌어졌다. 학살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할아버지가 있었다.
<옵티그래프>는 한때 스파이였고, 한때 독립운동가였고, 한때 제1 공화국의 정치인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삶을 좇는 인물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옵티그래프>는 대상-외할아버지만큼 화자-이원우 감독이 중요한 작품이다. “모든 영화는 결국 나를 담아낸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도 소재는 할아버지지만 중요한 건 할아버지를 보는 나의 시선, 나의 목소리, 나의 시간들이다.” 이원우 감독은 2002년 서울독립영화제 자원활동가로 일하면서 독립영화들을 접했고 그때부터 “진짜 세상”에 눈뜨기 시작했다. 이라크 반전 집회, 두리반 철거 농성장,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현장 등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목소리가 필요한 자리에 참가하는 일이 잦았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쪽수가 필요하고 카메라가 필요한 자리”였다. 집회의 현장에서 이원우 감독은 무수한 경찰들을 보았다. “나를 가로막는” 경찰들, “내 몸을 번쩍 들어올린” 경찰들을.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나가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지켜줘야 할 국가가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괴롭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면 강신명, 어청수, 김석기 전 경찰청장의 자리에 우리 할아버지의 이름이 놓일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그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했다.”
이원우 감독은 스스로를 ‘감독’이라 칭하지 않고 ‘필름메이커’라 칭한다. 그것은 그의 언어가 ‘필름’이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꾸준히 필름 작업을 해온 그는 <난시청>(2008), <살 중의 살>(2010), <두리반 발전기>(2012) 등 사적 실험 단편들을 만들어왔다. <옵티그래프>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문정현 감독과는 다큐멘터리 <붕괴>(2014)를 공동연출했다. 그러는 사이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이원우 감독의 첫 장편 작업이 되었고, 현재는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오래된 “숙제”를 하나씩 풀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원우 감독이 카메라를 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아스팔트에서 잡초가 자라고 버섯이 자라는 것처럼 내 영화가 균열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 여기는 차만 다니는 길이고, 여기선 풀이 자랄 수 없다고 말하지만 결국엔 풀이 자라고 버섯이 자라지 않나. 그래서 나는 버섯이 되고 싶고 잡초가 되고 싶다. (웃음)” <옵티그래프>의 작업은 필름과 디지털 촬영을 섞어서 진행하고 있으며, 2017년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줄 관전 포인트
문정현 프로듀서의 얘기를 참고하면 <옵티그래프>는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거대 역사와 그 역사를 바라보는 이원우 감독의 인상과 심상이 퍼즐처럼 엮여 있는 도전적인 영화가 될 것”이다.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이원우 감독의 심상을 잘 따라가면 비내러티브 구조의 영화가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