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자화상 -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2016-11-14
글 : 윤혜지
사진 : 백종헌

청각장애인 가족의 일상을 담은 전작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는 친절하고 사랑스러웠다. 이길보라 감독이 새로 들고 온 프로젝트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 참전 군인이었던 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이혼하기 위해 위자료를 벌러 베트남전에 참전하셨다. 할아버지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난 여자라서 전쟁을 잘 모른다’고 말하셨다.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참전한 전쟁의 훈장을 자랑스레 여기셨을까. 할머니와 같은 다른 여자들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렇게 2014년 12월, 베트남을 방문한 이길보라 감독은 한국인을 반기는 베트남 도시, 한국인을 적대시하는 베트남 중부, 전쟁의 피해자이면서도 한국인인 자신을 진심으로 반기는 현지인들과 전쟁의 기억을 미화하려 애쓰는 현재 한국의 모습에서 기묘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았다고 했다.

-‘베트남전쟁의 기억’이란 키워드가 광범위한데 어디에 초점을 둘 생각인가.

=내가 3세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진상 규명을 하자는 것도, 팩트를 체크하자는 것도 아니다.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그 답을 찾는 과정이 될 거다. 내 할아버지가, 내 나라의 사람들이 전쟁에 참전했기에 나는 언제나 그곳에서 죄인의 포지션이었다. 그런데 학살의 피해자들이 나를 반겨주고, 맛있는 밥을 해주고, 따뜻한 데서 재워주는 걸 겪으면서 어떻게 저 사람이 나에게 친절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다큐멘터리의 형식은.

=이미지의 충돌과 병치로 결론을 유도하고 싶다. 베트남 도시에선 한국과의 외교적인 문제 때문에 학살에 관해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다.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잘 알지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미국이 시켜서 당시 가난했던 한국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기억한다. 구찌 터널 총쏘기 체험 같은 건 기이하다. 너무 급하게 전쟁을 박제하고, 왜곡하고, 엔터테인먼트화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도 여전히 전쟁을 기념한다. 참전을 자랑스레 여기는 집단은 늘 ‘우린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했으니 국가는 우리에게 뭐라도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당연하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누군가 민간인 학살 얘길 꺼내면 국가의 입장을 대신해 싸운다. 굉장한 자아분열이다.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증언자는 어떻게 섭외했나.

=탄 아주머니는 학살의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다. 여성으로서의 증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청각장애인이자 그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껌 아저씨는 한국군이 주둔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몸으로 설명해줬다. 2차 피해자인 럽 아저씨는 지뢰로 눈이 먼 시각장애인이다. 세 사람이 비남성적 시각의 증언을 해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비남성’이라 함은 주류에서 비껴난 시각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내가 마주한 것들은 언어로 잘 설명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머뭇거리는 순간들이 중요한 모멘트였다. 글도 쓸 줄 모르고 다른 기록 수단이 없는 이들의 기억을 무엇으로 남길 수 있을까 생각했다.

-기록에 있어 스스로 조심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지금 촬영이 80% 완료됐는데 촬영본을 점검하며 격앙된 감정을 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관객이 먼저 전쟁에 관해 질문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사죄보다 앞서는 건 제대로 아는 것이다. <기억의 전쟁>은 누군가에게 사죄하라고 말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우리가, 그들이,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자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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