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판부터 남다르다. 손으로 직접 그린 영화 포스터 간판이 입구 상단에 떡 하니 자리잡았다. 광주극장 간판을 일일이 그려온 박태규 선생의 작품이다. 지난해 개관 81주년을 맞아 광주극장에서 진행된 기념영화제의 개막작 <광인>의 포스터다.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윤수안 감독의 <떠도는 땅>과 조재형 감독의 <맛의 기억> 두편의 단편을 엮은 것으로 5·18에 대한 기억의 영화다. 다른 한쪽에는 ‘관객 가족도’가 걸렸다. 실제 광주극장의 오랜 관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은 걸 바탕으로 그린 작품이라 더 뜻있다.
2. 광주극장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면 빛이 잘 드는 긴 복도가 이어진다. 마치 오래된 목조 가옥을 개조한 사진 전시관으로 들어선 듯하다. 광주극장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흑백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3.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는 극장 경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일본어로 ‘기도’(木戶)라 불렀다. 극장에 출몰한 소매치기, 주정꾼, 싸움패들을 제압하겠다는 명목으로 ‘어깨들’이 등장했던 것. 김두한의 오른팔로 알려진 김무옥도 상경 전 광주극장에서 기도로 매표소를 지켰다고 한다. 지금은 극장 사용 알림을 손글씨로 적어둔 게 아기자기해 그때 그 시절을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다.
4. 광주극장 뒤쪽에 위치한 별채와도 같은 ‘영화의 집’ 주변을 두른 벽면의 메모. 맨 왼쪽의 차이밍량 감독의 사인과 장률 감독의 필체, 극장을 찾은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의 인사까지. 다음에 광주극장을 찾았을 땐 또 누구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5. 거대한 공간이 주는 이상한 기운이 있다. 공기는 차고 공간은 넓어 공명이 이는 영화관. 마음에 드는 좌석 어디든 가서 앉아 볼 수 있으니 올 때마다 다른 위치에 앉아 보기를 권한다.
광주극장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46번길 10 cafe.naver.com/cinemagwangju
03.01 광주행
“왜 우리 고등학교 때, 여기 자주 왔었잖아. 기억나지, 언니야?” 공휴일 오전, 광주극장 앞에 막 도착했을 때다. 중년 여성들이 서로를 알아보고는 반색을 하며 나누는 짧은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됐다. 아마도 그녀들은 막역했던 고교 선후배 사이인 것 같은데 지금은 둘 다 광주를 떠나 사는 듯했다. 고향인 광주의 이곳 광주극장 앞을 재회의 장소로 택한 모양이다. 한때는 만남의 장소로 극장 앞만 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극장이 다른 누군가와의 시간의 공통분모가 돼주곤 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극장은 그 자체로 거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시간의 저장고다. 올해 82주년을 맞은 광주극장이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광주극장은 1933년에 주식회사 광주극장으로 사업자 등록을 한 이후 지금까지 한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68년에 큰 화제가 나 건물이 소실된 것을 재건한 적이 있지만 단 한번도 이 터를 버린 적이 없다. 광주극장의 김형수 이사는 이곳에서 1997년부터 일해왔다. 극장 프로그램 기획부터 온갖 업무를 다 맡아온 광주극장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만약 극장을 떠도는 유령이 살아 있다면 아마도 그가 아닐까 싶다. 김형수 이사의 안내로 단관 상영관 입구의 검은 가림막을 들춰 올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무엇보다 그 공간의 너른 크기에 놀랐다. 1층 540석, 2층 발코니형 객석이 316석. 총 856석이다. 규격화된 현대식 극장 개념을 부수고 거대한 공연장 한가운데로 스크린을 옮겨놓은 듯했다. 좌석 양 끝쪽으로는 대문짝만한 크기의 알파벳 A, B, C, D…가 벽면을 따라 붙어 있다. 좌석의 열을 구분하는 광주극장만의 방식이다. “표준전산망 가입이 필수가 되면서 지정 좌석제가 의무화돼 발권 시 좌석 번호는 다 있다. 하지만 광주극장의 관객은 원하는 좌석에 선착순으로 앉는다. 각자 자신이 선호하는 좌석이 있지 않나. 그 자리에 앉아야만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웃음)” 공간에 맞게 스크린 역시도 큼지막하다. 가로 17m, 세로 8m의 대형 스크린이 높다란 단 위에 걸려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이 있었다. 창극, 판소리, 악극이 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시국 집회, 부흥회, 명사들의 각종 연설과 강의, 환영식 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그러다보니 스크린 옆쪽으로는 출연진이 대기하던 분장실로 통하는 비밀의 문이 있기도 하다. “시네마스코프영화는 2층에 올라가서 보라. 그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놀라지 마시라. 1천명 가까운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영화관인 만큼 출입구만 17개다. 앞뒤 타임의 공연이 연달아 있으며 무려 2천여명 가까운 인파가 들락날락거려야 했으니 안전을 위해서도 당연한 숫자다. 되레 지금의 현대식 극장들이 비상 탈출구가 적은 게 아닌가 싶어진다.
그 많은 인원을 수용하던 시절을 지난 지금, 광주극장의 열기는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3월 초, 극장 안은 실외보다도 훨씬 싸늘했다. “여건상 난방을 충분히 할 수 없어서 웬만하면 2층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담요도 하나씩 챙겨드리고.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1층 좌석이 있는 분은 물론 1층으로 안내한다.” 지역 극장들의 열악한 운영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현재 광주극장은 광주시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지원 하나 없이 자체 입장료와 대관료, 임대 수입으로만 운영된다. “사전 심사를 통해 선정된 영화들을 의무적으로 상영하는 극장에만 보조금을 지원하는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의 지원금을 거부한다. 상영관과 관객의 다양한 영화 선택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고 상영되는 영화를 선별하는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아닌가.” 김형수 이사의 고민은 계속된다. “현재는 아카데미 수상작들을 상영해 관객을 확보하고 있지만 이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멀티플렉스에서 이미 하고 있는 영화를 굳이 광주극장이 상영해야 할까. ‘광주극장에 가면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영화가 있다’라고 인식돼 관객이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영화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대기업 자본과 싸워야지, 공공기관의 잘못된 정책과도 싸워야지. 사실 버틴다고 버텨지는 건 아니잖나. 속으로 많이 삭이고 또 삭이고 있다.” 그때였다. 웅장한 타종 소리가 너른 상영관에 울려 퍼진다. “징~~~ 징~~~!” “영화 시작 5분 전을 알리는 예비종”이라고 김형수 이사가 알려준다. “이런 소리가 왠지 극장과 잘 맞는 것 같고 오랜 전통이기도 하고. 이 소리를 들으면 분주하던 마음도 차분해진다. 아, 간혹 극장 바로 앞 관음사에서 울리는 타종 소리와 겹칠 때가 있으니 헷갈리지 마시라. (웃음)” 극장 안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라니. 여기가 도심 속인지 깊은 숲속 동굴 안인지 헷갈린다. 도심의 멀티플렉스에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이것은 전혀 다른 극장의 체험이다. 아, 이제 곧 제프 니콜스의 <러빙>이 시작된다. 관객의 고요한 관람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으니 서둘러 로비로 나가자.
“낯선 도시를 여행하다 우연히 오래된 극장을 발견하는 일, 그리고 그곳에 들어가 영화 한편을 보는 일. 그런 재미가 있길.” 광주극장에 발을 들인 이라면 김형수 이사의 작은 바람이 그만의 공상이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1층에서 뒤로 돌아나가면 입간판을 직접 그리는 화실이 나온다.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면 본채와는 분리된 별채와 같은 공간이 있는데 일명 ‘영화의 집’이다. 소모임과 강연을 하는 공간인데 꽤 소담하고 정갈하다. 지하실에는 화로와 한때 식수로 사용한 우물도 있단다. “한번은 지하실에서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더라. 영화를 보는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이게 영화 속 사운드인지 뭔지…. (웃음) 비오는 날이면 배관을 타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건물도 기상에 따라 상태가 달라지다보니 똑같은 영화도 어떤 날씨에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거대한 건물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온 로비 한편엔 커피 포트에 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차가운 공기를 녹일 차 한 모금이 달다. 봄이 오면, 광주극장의 온기가 좀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관객의 발걸음과 영화, 그리고 극장의 이상한 기운들이 만나면 말이다.
광주극장을 후원하는 세 가지 방법
하나, 정기후원회원에 가입한다. (약정 금액을 매월 CMS로 후원.) 둘, 상영 영화를 꾸준히 관람한다. 셋, 단체 관람을 신청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cafe.naver.com/cinemagwangju/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