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시네필이 만들어지는 곳 -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
2017-04-03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새롭게 단장한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의 로비. 관객이 많이 오도록 앉을 수 있는 좌석을 최대한 많이 뒀다.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

강원도 강릉시 경강로 2100 theque.tistory.com

03.03 강릉행

3월 24일 강릉 독립예술극장이 정식 재개관을 했다. 지난해 2월 29일 잠정 폐관한 이후 1년을 조금 넘긴 뒤였다. “다들 강릉 신영 재개관식에 가서 서울이 다 조용하다”라는 어느 독립영화인의 말이 농담이 아닌 것이 독립영화인들 상당수가 이날 강릉으로 달려가 재개관을 축하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강릉 신영의 시작부터 함께해온 박광수 프로그래머의 말대로 “강릉시네마떼끄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비영리 민간 극장”이 다시 돌아왔는데 말이다. <씨네21>은 재개관 준비가 한창이던 3월 3일 강릉 신영을 찾아갔다. 극장에 들어섰지만 한창 상영관 내 바닥 공사가 진행 중이라 모든 게 어수선했다. 기존의 200석 규모를 111석으로 줄이면서 좀더 너른 좌석을 갖추고 계단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3월이 되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면서 분주한 마음을 전했다. “휴관할 때 관객에게 ‘임시 휴관이며 그해 안에 꼭 재개관하겠다’고 말했는데 약속을 어겼으니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휴관한 뒤에 길에서 한 관객이 큰소리로 ‘언제 개관해요?’라고 물어오시기도 했는데 이제야….”

한동안 극장을 떠나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극장이 떠난 적은 없다. “2012년 개관하고 4년 만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거잖나. 극장을 처음 시작할 땐 ‘일단 5년만 해보자, 그러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지 알 수 있을 거다’라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다. 근데 결국 1년을 못 채우고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았으니. 억울해서 못 그만두겠더라. ‘했는데도 안 되더라’라는 판단을 내리기에는 해봐야 할 게 많다.” 그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의 강릉 신영의 활동을 1기로 본다며 그때의 운영상의 아쉬움을 반면교사 삼아 2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페데리코 펠리니 특별전을 한 적이 있다. 그때 60대 중반은 돼 보이는 어르신 여섯분이 단체로 오셔서 영화를 보시고는 한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더라. 이어서 다음 상영작까지 보고, 그다음날도 오셨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내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신영을 찾는 분들이 30, 40대 관객일 거라고만 규정해두고 있었다는 것을. 내 상상력의 한계를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너무 안정적인 길만을 가려고 했던 건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됐다.”

재기를 도모하던 박광수 프로그래머와 신영의 복귀에 기폭제가 돼준 중대한 사건이 있었으니, 이른바 “정동진독립영화제 화장실 대란”이다.

“지난해 영화제에 실외 화장실 수가 터무니없이 적었다. 예년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모든 관객의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면서 기다리는 줄이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를 정도로 엄청나게 된 거다. 난리였다. 마침 그 긴 줄에 강릉시 공무원이 있었던 거다. 영화제 이후 시와 만난 자리에서 화장실 문제가 대화의 물꼬를 터줬다.” 바로 그 자리에서 강릉시가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대한 지원을 더 하겠다고 결정했고, 곧이어 강릉 신영에 대한 지원책도 나오게 됐다. 강릉시는 “시민들의 독립영화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며 5천만원 지원을 결정했다. 이번 지원은 그 의미가 크다.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전국 최초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 직접 지원한 사례”라는 게 박 프로그래머의 설명이다. 지역 극장을 돌며 만났던 극장 운영자들 모두 강릉시의 강릉 신영 지원을 눈여겨보고 있다. 자신들이 있는 지역의 관에도 하나의 선례로 제시할 게 생겼기 때문이다.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그동안 나도 지원의 당위성만을 주장했을 뿐 필요한 지원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진 못했던 것 같다”면서 시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구상 중인 듯했다. 현재 정동진독립영화제 지원에 대해서는 강원도와 강릉시 모두 2017년 추경 예산안에 반드시 반영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강릉 신영은 영진위의 유통배급지원사업으로부터는 그 어떤 지원금도 받지 않고 있다. “369일 중 219일 이상을 (영진위의) 예술영화 인정을 받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들에게 좌석 수에 따른 퍼센테이지로 단가 보전을 해주겠다는 거다. 이 과정에서 영진위는 지역 독립·예술영화관의 재정 자립도, 극장 시설 노후화, 예술영화 전용관의 퐁당퐁당 상영을 문제 삼았다. 앞의 두 경우를 두고 영진위는 극장이 나태해서 개선의 여지가 안 보인다고 하던데 독립, 해외 예술영화만 상영하는 극장이 현재 산업 안에서 재정 자립이 가능한가. 재정 자립을 위해 노력하는 건 극장이 해야 할 몫이지만 그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건 영진위가 할 일 아닌가. CJ와 같은 독점에 대해서는 개선책을 내놓은 적 있던가. 멀티플렉스가 저지르는 퐁당퐁당을 문제 삼은 것도 납득할 수 없다.”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재개관을 맞아 거창한 계획을 난발하고 싶지 않다. 대신 이렇게는 말해본다. “잘되고 성공해본 경험이 있어야 더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안정된 길을 모색할 수 있지 않겠느냐.” 작은 성취의 경험이 안정화에 앞서야 한다는 의미다. 이어서 그는 강릉 신영의 관객들이 보내온 응원의 말에 기대를 걸어본다. “많은 분들이 ‘극장이 없어지고야 알았어요. 정말 갈 데가 없더라고요. 극장이 다시 열리면 열심히 영화보러 갈게요’라는 말을 해주셨다. 힘내라는 좋은 뜻임을 잘 안다. 그래서 그분들의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 (웃음) 더 자주 강릉 신영으로 오시라!”

재개관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감독 홍상수)

“극중 영희(김민희)가 영화를 보는 극장이 강릉 신영극장이다. 좌석 교체 공사에 들어가기 직전에 촬영한 것이라 이제는 영화 속 그 좌석들은 더이상 볼 수 없다. 그간 강릉 신영의 관객은 신영에서 홍상수 감독 영화를 많이 봐왔기에 재개관 바로 전날 개봉하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게 의미 있겠다 싶었다. 아 참, 영화에 나도 잠깐 등장한다. 영희 뒤쪽에서 영화를 같이 보는 관객으로, 옷을 부스럭거리며 극장을 나가는 역이다. (웃음)” - 박광수 프로그래머

사진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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