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황금연휴에 전주에서 봐야 할 영화 ①
2017-04-24
글 : 김성훈

<펠리시테> Fe´licite´

알랭 고미 / 프랑스, 벨기에, 세네갈, 독일, 레바논 / 2017년 / 123분 / 프론트라인

펠리시테(베로 찬다 베야 음푸투)는 킨샤사 거리에 있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이다. 그녀의 노래는 울림이 크고, 아름다우며, 힘이 있다. 클럽을 찾은 손님들은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잠시나마 지친 영혼을 달랜다. 얼마 되지 않는 클럽 공연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그녀에게 청천벽력의 소식이 전해진다. 그녀의 아들이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그녀는 아들의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망연자실한다. 클럽의 멤버 중 한명인 타부(파피 음파카)는 펠리시테를 돕겠다고 나선다. 매사에 흥분을 잘하는 남자다. 펠리시테는 마지못해 그의 손길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들의 수술비를 모으는 건 쉽지 않다. 부잣집을 찾아가 수술비에 보탤 돈을 요청해보지만 그녀는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펠리시테>는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희망 설파’ 영화가 아니다. 온전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버티는 것도 힘겨운데, 아들의 수술비까지 구해야 하는 펠리시테에게 세상은 냉정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돈을 구할 도리가 없는 까닭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노래밖에 없다. 더이상 나아질 게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그녀의 심정은 절망 그 자체다. 카메라는 펠리시테를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의 힘겨운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포장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삶에 대한 끈질긴 투쟁을 역설하려는 듯 그녀를 정면으로 담아낸다. 절망 속에서 부르는 그녀의 노래가 보는 이를 울컥하게 하는 것도 그래서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다.

<재패니스 걸스 네버 다이> Japanese Girls Never Die

마쓰이 다이고 / 일본 / 2016년 / 100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스펙트럼

정체가 불분명한 한 여고생 그룹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남성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남성들은 이유도 모른 채 봉변을 당한다. 어느 날 갑자기 독신녀 아즈미 하루코(아오이 유우)가 실종된다. 젊은 그래피티 작가 두명이 그녀의 실종 포스터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온 동네 벽에 그 포스터를 그래피티로 뒤덮는다. 아즈미 하루코는 납치된 것일까, 아니면 가출한 것일까. 야마우치 마리코의 소설 <아즈미 하루코는 행방불명>을 원작으로 하고, 마쓰이 다이고 감독이 연출한 <재패니스 걸스 네버 다이>(원제는 <아즈미 하루코는 행방불명>)는 현대 일본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분노를 다룬 이야기다. 그녀의 사연과 상처를 따라가다보면 남녀차별 문제가 일본 사회에 얼마나 깊게 뿌리박혀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이슈가 계속 촉발되고 있는 최근의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메시지다. 지난해 도쿄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됐다.

<김미 데인저> Gimme Danger

짐 자무시 / 미국 / 2016년 / 108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

로큰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을 꼽으라면 단연 스투지스일 것이다. 스투지스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이기 팝이 도어스의 공연을 보고 자극을 받아 1967년 결성한 그룹이다. <No Fun> <I Wanna Be Your Dog>같은 곡을 발표한 뒤, 헤로인 중독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데이비드 보위의 도움을 받아 기타리스트 제임스 윌리엄스, 베이스 스콧 서스턴, 기타와 드럼을 각각 맡은 애시튼 형제와 함께 ‘이기와 스투지스’라는 이름으로 명반 《로 파워》(Raw Power)를 냈다. 다큐멘터리 <김미 데인저>는 여러 차례 스투지스에 애정을 표시해왔던 짐 자무시가 이기 팝과 스투지스에 보내는 헌사다.

<김미 데인저>는 이기 팝과 그의 가족이 출연해 이기 팝의 어린 시절부터 들려준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이동주택촌 주차장의 작은 트레일러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부모님이 이기 팝의 드럼 세트를 놓기 위해 자신의 침실을 기꺼이 내주었다고 한다. 제임스 윌리엄스, 색소폰을 맡은 스티브 매키, 애시튼 형제 등 스투지스 멤버들이 직접 말하는 앨범 제작 뒷얘기, 스투지스의 음악을 좋아했던 데이비드 보위가 약물에 중독된 이기 팝을 끄집어내 명반 <로 파워>를 만들었던 일화, 그럼에도 이기 팝의 헤로인 중독 때문에 암울했던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1973년 등 다양한 일화들이 무척 흥미롭다. 출연자들의 말들을 쭉 따라가다보면 스투지스가 펑크록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된 이유, 그들의 무대와 앨범이 당시 대중에게 얼마나 신선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됐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Bamseom Pirates Seoul Inferno

정윤석 / 한국 / 2017년 / 119분 / 경쟁부문: 국제경쟁

밤섬해적단은 장성건(보컬·베이스)과 권용만(드럼·작사) 두명으로 구성된 펑크 자립음악가다. 사회 투쟁의 현장에서 데뷔 앨범 《서울불바다》에 수록된 곡들을 불렀다. ‘청소년들에게 무해한’ <공산당은 죽지 않아>, 친구 김정일의 이력을 북한의 김정일과 엮은 <김정일 만세> 등 ‘괴곡’들이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에 ‘뻑큐’를 시원하게 날렸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의 전반부가 밤섬해적단을 다룬 인물다큐멘터리에 가깝다면, 후반부는 박정근의 트위터 국가보안법 사건(북한을 농담 소재로 삼기 위해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멘션을 풍자하는 글을 올렸다가 북한을 찬양, 고무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 대법원은 사진사 박정근에 대해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편집자)을 다루며 우리 사회의 북한과 그것을 이용하는 레드 콤플렉스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인류의 상승> The Human Surge

에두아르도 윌리엄스 /아르헨티나, 브라질, 포르투갈 / 2016년 / 97분 / 경쟁부문: 국제경쟁

일자리를 잃은 엑스는 당장 일을 구할 생각이 없다. 혼자서 컴퓨터를 하다가, 사내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포르노를 보며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고, 그마저도 지겨우면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 다시 잡담을 나누는게 그의 일과다. 어느 날, 그는 모잠비크 출신의 알프를 만난다. 알프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아키라는 소년을 만나 정글에 들어간다. 알프와 아키가 다다른 곳은 거대한 물웅덩이. 그곳에는 알프와 아키뿐만 아니라 그들 또래의 소년, 소녀 무리가 모여 있다. <인류의 상승>은 연결점이 전혀 없는 엑스, 알프, 아키의 사연이 묘하게 연결된 영화다. 서사의 인과관계나 논리를 따지는 건 무의미해 보인다. 일자리를 잃었지만 구직 의사가 없거나,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세 청년들은 특정 지역만의 풍경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라이플> Rifle

다비 프레투 / 브라질 / 2016년 / 90분 / 경쟁부문: 국제경쟁

낯선 존재를 수없이 접촉하며 살아가는 도시와 달리 시골에서 외부인의 존재는 때때로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디오네(디오네 아빌라 드 올리베이라)는 외딴 시골에 위치한 목장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평화스러운 그곳에서 양을 돌보는 게 그의 주된 일과다. 어느 날, 한 부자가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해 목장을 찾는다. 디오네는 그가 자신과 가족의 삶을 침해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느끼면서 방구석에 숨겨둔 장총(라이플)을 꺼내든다. 도시와 시골, 문명과 비문명의 경계를 통해 내부인(디오네)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외부인(부자)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라이플>은 서부극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목장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외부인과 대화를 나누고,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면서 시골 마을을 지나가는 낯선 차량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디오네의 행동은 서부극 속 보안관의 그것을 변형한 상징들이다. 도시와 시골의 격차가 크고 문화가 전혀 다른 까닭에 외부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이 디오네에게는 작지 않은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디오네의 마지막 결정을 블랙코미디라고만 받아들이기엔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다.

반역의 작가, 알렉세이 게르만의 세계

혁명 속의 혁명영화. 알렉세이 게르만 감독과 그의 영화들은 오랫동안 소비에트의 금지된 이름이었다. 그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키라 무라토바와 함께 1960년대 시작된 소비에트 뉴웨이브의 주축 감독 중 한명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 6편 대부분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중앙정부로부터 상영 금지를 당하거나 상영이 보류돼 오랫동안 지하에 묻혀 있어야 했다. 철권통치 시대인 스탈린 체제를 배경으로 하고, 소련 역사의 전환기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가 연출한 장편 6편과 각본과 제작을 맡았던 <오트라르의 몰락>, 총 7편을 상영하는 스페셜 포커스 ‘알렉세이 게르만 전작 회고전: 유폐당한 반역의 작가’가 열린다. 데뷔작인 <일곱 번째 동지>(1968)는 혁명 이후 달라진 세상에서 다시 전쟁터로 복귀하려는 아다모프를 그린 영화다. <길 위에서의 심판>(1971)은 러시아의 전쟁포로가 소련 빨치산에 가담해 나치 독일군에 맞서며 충성을 증명하는 이야기다. <전쟁 없는 20일>(1977)은 휴가를 맞아 타슈켄트로 간 종군기자(유리 니쿨린)를 통해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인식에도 전쟁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친구 이반 라프신>(1984)은 1930년대 스탈린 대숙청 기간에 숙청 임무에 충실했던 지방도시의 경찰청장을 풍자한다. <크루스탈리오프, 나의 차!>(1998)는 반유대주의 운동이 한창이던 스탈린 정권에서 ‘의사들의 음모’ 사건 가담 혐의로 체포된 군의관 클렌스키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로, 암흑기 러시아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냈다. 제작하는 데 무려 7년이나 걸린 작품이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2013)는 알카나라는 행성에 보내진 과학자들을 소재로 한 영화. 게르만의 유작으로,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이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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