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황금연휴에 전주에서 봐야 할 영화 ②
2017-04-24
글 : 장영엽 (편집장)

<프리츠 랑> Fritz Lang

고르디안 마우크 / 독일 / 2016년 / 104분 / 시네마톨로지

독일 표현주의영화의 마스터, 프리츠 랑에 대한 흥미로운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는 랑의 첫 번째 유성영화이자 장르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M>(1931)의 제작 과정을 조명한다. SF영화 <달의 여인>(1929)을 만든 뒤 차기작을 구상하던 프리츠 랑은 뒤셀도르프의 연쇄살인범 페터 귀르텐의 사연에 매료된다. 그는 경찰의 도움으로 감옥에 수감된 귀르텐을 만나게 되고, 그가 죽인 마지막 희생자의 친구 안나의 도움을 받아 연쇄살인범의 초상을 완성해 간다. 그런데 귀르텐에 대해 알아갈수록, 프리츠 랑은 자신의 어두운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현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는 <프리츠 랑>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이 거장의 자전적인 일대기에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그가 첫 번째 부인 엘리자베스 로젠탈을 죽였을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다. 실제로 랑의 아내는 총상을 입고 숨을 거둔 채로 발견되었는데, 그녀의 죽음이 자살에 의한 것인지 타살에 의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불안정한 시대상을 담은 뉴스 클립, <M>의 명장면과 프리츠 랑의 가상의 일대기를 교차편집한 연출자의 감각이 인상적인 작품.

<허미아와 헬레나> Hermia & Helena

마티아스 피네이로 / 미국, 아르헨티나 / 2016년 / 87분 / 익스팬디드 시네마

아르헨티나 감독 마티아스 피네이로의 첫 번째 영어영화이자 <비올라> <프랑스의 공주> <로잘린>에 이은 그의 네 번째 셰익스피어 연작. 아티스트를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고국을 떠나 뉴욕에 머물렀던 피네이로의 경험이 주인공 카밀라의 여정과 겹친다. 아르헨티나에서 연극 연출가로 일하던 카밀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위해 뉴욕에 온다. 그녀는 곧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같은 아파트에 머무르게 된 친구 카르멘, 카밀라에 앞서 창작 지원 프로그램을 경험했던 다니엘, 카밀라에 관심을 보이는 미국 남자 루카스와 독립영화감독 그렉이 그들이다. 요정의 놀잇감이 된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 두 여인(<한여름 밤의 꿈>의 허미아와 헬레나)이 겪어야 했을 혼란까지는 아니더라도, 낯선 도시의 문화와 언어를 오가며 카밀라가 경험하는 미묘한 감정은 그녀가 준비하는 작품에도 스며든다. 도시의 공간과 문화, 고전 텍스트와 등장인물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는 건 마티아스 피네이로의 지속적인 관심사였다. 우디 앨런의 그림자가 슬쩍 엿보이는, 지적인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몸과 영혼> On Body and Soul

일디코 엔예디 / 헝가리 / 2017년 / 116분 / 개막작

“꿈에서 만나요.” 보통의 연인들이 굿나이트 인사로 건넬 법한 말이, 이 영화에서는 현실이 된다.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포문을 여는 개막작이자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몸과 영혼>은 헝가리 여성감독 일디코 엔예디의 화려한 재기를 알리는 작품이다. 그동안 헝가리에서 영화과 교수로, TV 연출자로 활동하던 엔예디는 18년 만의 복귀작인 이 영화로 헝가리 시네마의 감수성을 펼쳐낸다. 영화는 도축 공장에서 일하는 두 남녀를 조명한다. 관리자로 일하는 엔드레와 고기의 등급을 매기는 신입사원 마리아에게는 믿을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밤새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이다. 공장 직원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꿈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 하고, 육체의 교감을 원하게 된다. 눈뜨고 보기 힘든 잔혹한 도살 장면과 설원 위 수사슴과 암사슴의 평화로운 모습의 공존은 두 남녀의 현실과 꿈을 대변하는 장치다. 소통과 치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작품.

<매니페스토> Manifesto

율리안 로제펠트 / 호주, 독일 / 2016년 / 95분 / 시네마톨로지

케이트 블란쳇이 1인13역을 맡아 화제가 된 작품이다. 본래 전시를 위해 기획된 이 영상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다양한 미학적 선언을 블란쳇이 연기하는 13개의 캐릭터를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독특한 방법론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케이트 블란쳇의 모습을 본다면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이건 갤러리나 미술관에서만 공유되기엔 너무 아까운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버전은 멀티 스크린 설치 작품이었던 미술관의 전시물을 장편영화 형식으로 재편집한 것이다. 구상주의와 미래파, 팝아트와 플럭서스, 초현실주의와 미니멀리즘 등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20세기 미학적 선언문이 블란쳇의 대사를 통해 울려퍼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그녀가 이 선언문을 읽는 타이밍인데, “삶만큼이나 무겁고 거칠고 적나라하며 또 달콤하고 어리석은 예술을 위해 나는 존재한다”라는 팝아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의 선언문이 식사 전 기도문으로 등장하는 식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과 미학적 선언의 충돌과 결합이 야기하는 감각적인 즐거움이 이 영화엔 있다. 물론,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좋다.

<네루다> Neruda

파블로 라라인 / 칠레, 아르헨티나, 프랑스, 스페인 / 2016년 / 108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

칠레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 인상적인 영화다. 1948년, 칠레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시인이자 상원의원이었던 네루다는 가브리엘 곤살레스 비델라 대통령을 격렬하게 비판하는 의회 연설을 한다. 정권을 잡자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하고, 공산당과 체결한 협약을 파기한 대통령의 처사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네루다는 국가원수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도망자 신세가 되고, 전세계를 떠돌게 된다. 전기영화로서 <네루다>가 흥미로워지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인데, 영화는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도망자를 추적하는 비밀경찰 오스카(허구의 인물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한다)를 등장시켜 시인과 그의 추격전을 비중 있게 조명한다. 오스카가 네루다를 쫓을수록, 그는 경찰로서 자신이 지켜야 하는 신념과 네루다라는 예술가에 대한 매혹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이 두 인물을 통해 예술과 정치, 규율에 대한 다각도의 질문을 던지는 <네루다>는 평생 같은 곳에 머무르지 않았던 시인의 역동성을 닮은 전기영화다.

<이반 차레비치와 공주> Ivan Tsarevitch and the Changing Princess

미셸 오슬로 / 프랑스 / 2016년 / 53분 / 전주 돔 상영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변화 중 하나는 ‘전주 돔 상영’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전주 돔’은 야외상영의 단점을 보완한 공간으로, 보다 안정적인 관람 환경 속에서 야외상영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극장 밖에서 관람하기에 프랑스 애니메이션 감독 미셸 오슬로의 신작보다 더 어울리는 영화는 없을 것이다. 실루엣애니메이션 기법을 차용한 <이반 차레비치와 공주>는 환상적인 풍경과 드라마틱한 이야기, 동양적이고도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그림자 인물들의 조합만으로도 눈이 호사로운 작품이다. 매일 밤 소녀와 소년, 나이 든 영사기사가 영화관에 모인다. 그들은 서로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며, 때로는 직접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전설 속 괴물들과 싸우는 소녀, 시련을 극복하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공주(영화의 타이틀인 <이반 차레비치와 공주> 이야기다), 해적선에 사는 고양이와 연금술사가 되길 꿈꾸는 소년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와 시각적인 화려함이 일품인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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