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감독상 받은 <매혹당한 사람들> 소피아 코폴라 감독 - "남녀간의 파워에 온전히 집중하고자 했다"
2017-06-05
글 : 이화정

“아버지(프랜시드 포드 코폴라)와 여성 영화인의 롤모델이 되어준 제인 캠피온 감독에게 감사한다”는 소감이 전달됐다. 감독상을 받은 소피아 코폴라는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가와세 나오미, 린 램지와 함께 세명의 여성감독의 작품 중 수상작이 나올 거라는 예측이 팽배해 있었다. 토머스 컬리넌의 소설과 돈 시겔의 <매혹당한 사람들>(1971)을 리메이크한 소피아 코폴라 버전은 여성감독이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여성의 성적 욕망을 그린다. 남북전쟁 시대에 부상당한 북군 병사 존(콜린 파렐)이 여자 기숙학교에 오게 된다. 고딕 양식의 건물, 다수의 여성 사이에 한 남자가 들어오면서 성적 긴장감이 공기를 감싼다. 원장 마샤(니콜 키드먼)부터, 조신한 선생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 외설적인 소녀 알리시아(엘르 패닝) 등 각 연령대 여성들이 한 남자를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라이벌 의식, 그리고 파국의 결말까지를 짜임새 있는 스릴러로 연출해 호평받았다. 5월 23일 리츠칼튼 호텔에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을 만났다. “지난 몇달간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그녀는 “최근 온전히 이 작업에만 몰두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영화는 토머스 컬리넌의 소설과 돈 시겔의 <매혹당한 사람들>을 리메이크했다. 언제 원작을 접하고 영화화를 결심했나.

=친구이자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앤 로스가 돈 시겔의 영화들을 보라고 하더라. 명성은 들었지만 이전에 보지 못한 작품이었다. 보고 나니 이야기가 뇌리에 맴돌더라. 소설까지 읽고 나자, 같은 이야기를 여성의 관점에서 전달하면 어떨까 싶더라. 먼저 봤던 영화를 머릿속에서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랬더니 똑같은 이야기의 다른 면을 여성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 너무 재밌더라. 남성과 여성간의 알력싸움이 워낙 쟁점화되는 주제여서, 양쪽 입장을 들여다보고 그들에게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남북전쟁 당시를 그린 원작의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새롭게 바꿔볼 생각은 없었나.

=“다른 장소, 다른 시기로 바꿔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남북전쟁 당시의 남부 풍경이 매우 이국적이라고 느꼈고 그 매력에 사로잡혔다. 당시 여성들은 남성을 섬기기 위해 양육되고, 자라서는 그들의 사랑스런 부인 역할을 해야 했다. 우리 문화의 정말 극단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남성 앞에 나설 수 없었던 여성의 삶이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이어지더라.

-이전 작품인 <처녀 자살 소동>(1999)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다.

=맞다. 억눌린 여성의 세계라는 부분이 내 이전 작품인 <처녀 자살 소동>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또 하나 재밌는 점은 최근에 <처녀 자살 소동>을 쓴 제프리 유제니디스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는 거다. 그는 ‘당신 버전의 영화를 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원작도 정말 좋아했다’고 하더라. 마침 지금 이메일을 받은 게 무슨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지점에 중점을 두고 리메이크했나.

=이 영화는 어떤 여성집단이 있고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그 가운데에 남자가 혼자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런 상황에서 존을 연기한 콜린 파렐이 철저히 관찰 대상이 된다는게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관찰 대상은 여자가 되지 않나. 우리 영화에서는 정확히 반대였던 거다. 예를 들어 여자들이 정원을 관리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이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청일점인 콜린을 대상으로 캘린더를 만들면 어떻겠냐. (웃음) 콜린은 유머러스하면서 로맨틱한 사람이다.

-돈 시겔의 원작에 등장한 흑인 노예 할리나 마샤와 성관계를 갖는 친오빠 역할을 아예 배제함으로써 원작의 무게감을 덜어낸 것 같다.

=노예 역할을 뺀 건 그 자체가 워낙 중요한 소재라 이 영화에서 가볍게 다뤄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남녀간의 파워에 온전히 집중하고자 했다. 몇년 전에도 근친상간 이야기를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나는 기숙학교의 여성들이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남부의 고딕적인 분위기는 어떻게 연출했나? 어둡지만 동화같이 아름답기도 하다.

=초반에는 시대극의 세팅이, 후반에는 촬영의 역할이 중요했다. 일단 배경을 통해 관객을 무장해제시키고 싶었다. 그다음에 여성 배역들을 통해 우아하고 페미닌한 세상에 대한 판타지를 보여주는 듯하다가 관객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했다. 그리고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카메라 앵글을 활용해 고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다. 당시 시대상에 대한 다양한 그림, 사진 등을 봤고 색감에 대한 연구도 했다.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배역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하려고 했다. 그래서 관객이 마치 이 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캐스팅에 대해서 말해달라.

=어둡고 추악하고 털이 많은 남성상에 레이스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는 창백한 여성상의 대비를 이루고 싶었다. 커스틴 던스트와는 세 번째 작업인데, 나는 그녀가 그렇게 억압되고 조용한 배역을 한 적이 없어서 그걸 상상만 해도 재미있더라. 엘르 패닝과 <섬웨어>(2010)를 작업할 때 그가 11살이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이번의 외설적인 소녀 역할이 성격에 딱 맞진 않았을 것도 같다. (웃음) 니콜 키드먼은 내가 항상 동경했던 배우다. 이야기에 진정성을 더하고, 고품격 멜로드라마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배역과 감정적으로 진실되게 연결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녀가 그걸 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12살 소녀부터 중년의 여성까지를 다 다룰 수 있는 매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남자 역할도 필요했다. 굉장히 섹시하고 복합적인 역이어서 콜린 파렐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의상 디자인도 중요해 보인다. 드레스가 엄청나게 등장한다. 농사일을 하는데도 흰색 드레스가 하루 종일 흰 상태로 유지된다. (웃음)

=페티코트는 착용하지 말자고 했다. 드레스가 여기저기 나뒹굴거나 손상되기도 하게 했다. 남자가 왔을 때만 후프 드레스를 다시 착용하게 했다.

-내전이라는 주제 자체가 현재의 미국 입장을 고려할 때 뭔가 정치적 색깔을 띤 것은 아닌가.

=전시의 여성들, 세상에 나서지 못하는 여성들… 그런 주제들이기도 하지만 사실 남녀간의 파워 게임을 가장 주안점으로 뒀고 그 부분은 관객이 공감 가능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여성간의 알력다툼이랄까,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이나 표정 등으로 그들 안에서 위계질서가 생기는 것들이 보편적으로 공감 가능하지 않을까.

-아버지에게도 작품을 보여드렸나.

=다 만든 뒤 보여드렸다. 의견이 궁금했는데, 다행히 좋아하셨고 서포트도 많이 해주셨다.

-남성감독이 연출한 남성 중심적인 70년대 원작과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당신의 영화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마침 LA에서 6월에 두 작품을 같이 상영할 계획이다. 그 토론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궁금하다. 나는 영화가 그 자체로 본연의 목소리를 낸다고 생각한다. 토론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즐겁게 들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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