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제70회 칸국제영화제 결산 - 주요 부문 수상작들을 둘러싼 이야기들
2017-06-05
글 : 이주현
<120 비츠 퍼 미니트>

결과적으로 영화제 초반에 공개된 <더 스퀘어> <120 비츠 퍼 미니트> <러브리스>가 황금종려상, 심사위원대상, 심사위원상을 가져갔다. 하지만 영화제가 후반에 접어들 때까지도 ‘내일은 더 좋은 영화를 만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야 했다. 남은 경쟁작이 하나씩 줄어들때마다 각국의 기자들은 이상한 초조함을 공유하며, 그래도 후반에는 판을 뒤집을 영화가 나오지 않겠냐는 기대를 품었다. 괜한 낙관이었다. 활기를 불어넣는 영화들이 후반에 등장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할리우드 리포터>의 수석 평론가 토드 매카시도 “올해는 좋은 영화를 넘어 위대한 영화가 없었다”고 칸국제영화제의 경쟁섹션을 평했다. 그러면서 “모든 예술가에겐 업 앤드 다운의 기복이 있다. 하지만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감독들은 대체로 하향된 모습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결국 70주년을 맞은 칸국제영화제는 평작들 속에서 몇몇 빛나는 영화를 발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더 스퀘어>와 <러브리스> , 그리고 <120 비츠 퍼 미니트>

심사위원장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포함한 9명의 심사위원단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더 스퀘어>에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영화가 공개된 직후 이 영화가 재밌다는 데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황금종려상을 점친 이도 없었다. 잘나가던 미술관 아트디렉터(클라에스 방)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대 미술계를 풍자한 <더 스퀘어>는 거침없는 블랙코미디의 향연을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의 칸국제영화제는 코미디영화나 장르영화에 관대하지 않았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마렌 아데 감독은 기막힌 코미디영화 <토니 에드만>을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황금종려상은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받았는데, ‘칸의 도전적이지 못한 선택’이라며 켄 로치조차 당시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마렌 아데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선 세련되게 현실을 풍자한 <더 스퀘어>가 ‘고른’ 지지를 받으며 최고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들은 <더 스퀘어>가 “지적이고 미묘하고 재밌는 영화”라고 칭찬했다. <버라이어티> 역시 “도발적이며 대담한 풍자를 보여주는 이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준 것은 꽤 훌륭한 선택”이라고 지지를 보냈다.

영화제 기간 황금종려상 후보로 강력히 거론된 작품은 사실 <더 스퀘어>가 아니라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러브리스>와 로뱅 캉피요의 <120 비츠 퍼 미니트>였다. 특히 심사위원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마음을 훔친 작품은 <120 비츠 퍼 미니트>였던 것 같다. 그는 “나는 <120 비츠 퍼 미니트>의 모든 장면에 마음이 움직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니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랬다. 캉피요의 영화는 우리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고, 이 영화는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작품”이라고까지 말했다. 1990년대 초반 파리를 배경으로 에이즈 인권운동단체 ‘액트 업 파리’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그린 <120 비츠 퍼 미니트>는 경쟁작 중 유일하게 LGBT 이슈를 다룬 작품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명제를 강력하게, 그리고 먹먹할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낸 <120 비츠 퍼 미니트>는 황금종려상에 가장 근접한 영화로 반복 언급되었고, 결과적으로는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러브리스>는 실패한 결혼생활이 가져온 파국을 러시아 현대사회의 으스스한 풍경에 포개놓은 수작이었다. 전작 <리바이어던>(2014)에 이어 러시아 사회의 도덕적 부패에 대한 날카로운 묘파를 보여준 즈비아긴체프 감독에 대한 기대와 지지는 앞으로도 계속될 듯 보인다.

참고로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120 비츠 퍼 미니트>에 대한 애정을 강력히 피력한 것처럼 심사위원 윌 스미스도 심사위원 결산 기자회견에서 개인의 영화적 취향을 분명히 밝혔다. 윌 스미스는 시리아 난민이 천사로 부활하는 이야기인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의 <주피터스 문>이 “절대적으로 좋았다”면서 “정말 환상적인 영화다. 이 영화를 반복해서 다시 볼 생각”이라고 했다. 영화의 극단적 실험이 극단적 평으로 이어졌던 <주피터스 문>은 결국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윌 스미스는 “때로 민주적인 게 참 맘에 안 든다”라며, 다수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의미있는 시도를 한 영화들에 대한 격려를 잊지 않았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의 작품들이 하향 평준화됐다고 평가받는 이유 중에는 미하엘 하네케라든지 토드 헤인즈처럼 기대를 모은 감독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한 탓이 크다. 거기에 요르고스 란티모스나 린 램지 등 커리어의 정점을 찍을 것 같았던 감독들이 전작을 뛰어넘지 못한 탓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린 램지는 각본상을 공동으로 가져갔다.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시나리오작가 에프티미스 필리푸와 함께 각본을 쓴 <더 킬링 오브 어 세이크리드 디어>는 그리스 비극의 ‘저주’ 모티브를 스탠리 큐브릭의 호러 스타일로 변형한 작품이다. <버라이어티>는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고, 충격적이며, 불가해한” 작품이라 평했지만 <더 랍스터>(2015)나 <송곳니>(2009)를 넘어서는 작품인지는 의문스럽다. <너는 정말 여기에 없었다>는 린 램지 감독이 <케빈에 대하여>(2011)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란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과거의 폭력적 경험이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킬러 조(호아킨 피닉스)가 납치된 소녀를 구하는 이야기로, 조너선 에임스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격렬한 감정, 강렬한 이미지, 간결하게 구성된 플롯, 의외의 순간에 튀어나오는 유머 등이 린 램지만의 리듬으로 잘 재단된 작품이다. 린 램지는 시상식장에서 “클리셰를 피하려 했다”는 말과 함께 “이 영화에선 호아킨 피닉스의 역할이 나보다 컸다”며 배우에게 공을 돌리는 걸 잊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호아킨 피닉스는 <너는 정말 여기에 없었다>로 생애 첫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슈트에 스니커즈를 신고 무대에 오른 호아킨 피닉스는 수상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자신의 스니커즈를 가리켰고, 애꿎은 스니커즈가 카메라에 클로즈업되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경쟁작 중 가장 마지막으로 공개된 작품이 <너는 정말 여기에 없었다>였는데, 이 작품 전까지만 하더라도 벤&조슈아 사프디 형제 감독의 <굿 타임>에서 열연한 로버트 패틴슨에게 남우주연상이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혹은 그런 결과가 나오면 흥미롭겠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여우주연상은 다이앤 크루거에게 돌아갔다. 파티 아킨의 <인 더 페이드>에서 다이앤 크루거는 네오 나치의 테러로 남편과 어린 아들을 잃고 스스로 “전사”가 되는 카티아를 연기했다. TV드라마 같다는 평도 있고,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결말이 충분한 동의를 구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다이앤 크루거의 연기는 압도적이었다. 다이앤 크루거가 처음으로 모국어인 독일어로 연기한 작품이다. 참고로 올해 4편의 상영작에 출연한 니콜 키드먼은 70주년 특별상을 받았다.

<너는 정말 여기에 없었다>

칸국제영화제 속 여성

감독상은 <매혹당한 사람들>의 소피아 코폴라가 받았다. 돈 시겔의 <매혹당한 사람들>(1971)과의 비교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소피아 코폴라는 비교패를 당한 듯했지만 여성의 성적 욕망을 내밀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어쨌든 그녀에게 감독상을 안겼다. 여성감독의 감독상 수상은 칸국제영화제의 70년 역사에서 두 번째에 불과하다(1961년 <크로니클 오브 플레이밍이어스>의 율리아 소른체바 감독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여전히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여성감독은 <피아노>(1993)의 제인 캠피온이 유일하다. 경쟁에 진출한 세명의 여성감독(가와세 나오미, 린 램지, 소피아 코폴라) 중 두명이 감독상과 각본상을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는 방식이나 영화산업 내에서 여성영화인의 지위는 여전히 불만족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심사위원 제시카 채스테인은 결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 속 여성 캐릭터를 보면 이 세상이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여성 캐릭터의 묘사가) 꽤 충격적이었다.”

70번째 칸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 대한 논란이 영화제 초반을 달궜고(영화란 무엇인가), 테러에 대한 경계가 강화돼 수차례 검색대를 통과한 뒤에야 겨우 영화 한편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런 가운데 정작 19편의 경쟁작은 뜨뜻미지근했다. 환호의 순간과 화제의 순간을 연출한 영화가 드물었다. 영화 그 자체의 힘이 부족한 해였다. 이 모든 아쉬움이 71번째 칸국제영화제에선 해소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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