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에이즈로 먼저 눈을 감은 사람들, 가혹한 대우를 받으면서 싸웠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헌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후보였던 <120 비츠 퍼 미니트>의 로뱅 캉피요 감독이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전한 수상소감이다. 감독 본인과 공동 시나리오작가 필립 망거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120 비츠 퍼 미니트>는 1990년대 초반 에이즈운동단체 ‘액트 업 파리’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감각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려낸다(액트 업 파리는 1987년 설립된 ‘액트 업 뉴욕’을 모델로 삼아 1989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격렬하게 시위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영화 속 젊은이들의 모습은 칸을 찾은 영화인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로뱅 캉피요는 로랑 캉테 감독과 오랫동안 협업한 각본가이자 편집감독으로 유명하며, <120 비츠 퍼 미니트>는 <돌아온 사람들>(2004), <이스턴 보이즈>(2015)에 이은 그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영화는 정치적 행동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한다.
=그 문제는 내게 처음부터 중요한 사안이었다. 나는 1990년대 초반 액트 업 파리에서 활동했고 그 당시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정치적인 이야기와 게이 친구들의 사랑 이야기 사이에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90년대 초반 액트 업 활동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여러 문제들, 감염으로 인한 건강 문제, 삶의 외로움, 정치적 활동에서 오는 고민을 담고자 했다. 당시 활동가들은 커다란 분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분노가 모여 일종의 해방운동이 되었다. 분노가 해방운동이 될 수 있었던 건 함께 토론하고 꿈을 꿨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린 모두 행복했다. 이처럼 각본은 내 기억에 기대서 작업했고, 애초 선명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적 이야기인 동시에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다. 둘 중 어느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었나.
=둘 사이의 연결점을 찾는 동시에 각각에 맞는 표현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주인공 네이선(아르노 발루아)과 숀(나우엘 페레스 비스카야르트)은 섹스를 하고 사랑을 한다. 네이선은 아픈 숀을 위해 의학적 공부를 하고, 그 작업에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싸울 때의 모습을 보면 연인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가끔 싸우지만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숀은 정치적 생각을 절대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만약 그가 정치적 생각을 멈췄다면 그건 그의 숨이 멎었기 때문이다. (에이즈로 고통받는) 숀의 몸은 이미 정치적이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어느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네이선과 숀은 함께 섹스를 하고 함께 정부의 책임을 묻는다. 그들에게 섹스와 정치는 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에선 10대, 20대의 어린 친구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관계를 맺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속 몇몇 인물은 실제 존재했던 이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내가 만난 21살의 어떤 친구는 장 뤽 고다르의 엄청난 팬이었는데, 에이즈로 인해 3개월 뒤에 세상을 떴다. 당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그런 충격적인 일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렸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에이즈에 대한 공포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컸다. 모든 일이 너무 빨리 벌어지고 있었다.
-음악의 역할에도 무게를 묵직하게 싣는데, 미스터 핑거스와 지미 서머빌의 곡을 사용한 게 인상적이었다.
=미스터 핑거스의 하우스 뮤직 <What about This Love>와 지미 서머빌의 <Smalltown Boy>가 영화에 나온다. 지미 서머빌의 경우 실제로 액트 업 파리의 활동과도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액트 업 파리의 기금 마련 콘서트에 그가 참여했고, 1984년에 발표된 <Smalltown Boy>는 적어도 내 세대의 게이 친구들에겐 의미 있는 곡이라 할 수 있다. 또 1984년은 에이즈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해서, 이번 영화에선 그 노래를 90년대 버전으로 편곡해서 헌사(트리뷰트)의 의미로 사용했다. 영화에 하우스 음악이 계속 나오는데, 하우스 음악의 효과가 재밌었다. 어떨 땐 멜랑콜리한 분위기도 만들어내고. 액트 업 파리의 슬로건이었던 ‘댄싱=라이프’와도 상통해서 음악을 적극적으로 썼다.
-프랑스의 젊은 동성애자 친구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 같나.
=영화에 젊은 게이 친구들이 출연한다. 우선 그들이 특정 단어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 그들에겐 이 영화가 마치 SF 같았던 모양이다. (웃음) 정치적 상황이나 성적 문화, 에이즈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으니까. 그래서 배우들에게 정치적 설명 또한 자세히 해야 할 때가 있었다. 또 내 세대에서 콘돔은 해방을 위한 도구, 누구와도 섹스를 할 수 있는 섹스 해방의 도구였는데 지금의 세대엔 손쉽게 준비 가능한 보편적인 도구가 돼버렸더라.
-배우들이 멋진 앙상블을 보여준다.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캐스팅에 아주 많은 공을 들였다. 실제로 캐스팅을 하기까지 6개월쯤 걸렸다. 내게도, 배우들에게도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영화와 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한데 모였다. 서로 공격적으로 논쟁을 하지만 그 안에서도 조화를 이뤄야 하고, 또한 캐릭터들 사이에 충분한 대비가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그걸 찾는 게 내게는 중요했다. 그들을 한 공간에 모아놓고 3일 동안 리허설을 한 뒤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도 좋겠다는 확인을 한 다음 그들의 특성을 반영해 캐릭터를 수정하기도 했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면 분명 이성애자(스트레이트) 캐릭터가 등장했을 것 같은데, 이 영화에는 이성애자 캐릭터의 얘기가 없다.
=글쎄, 이성애자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지 여성 캐릭터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액트 업 파리에 많은 여성 멤버들이 있었으니까.
-1990년대 초반 이야기이지만 2017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무엇이었나.
=세상의 변화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질문, 우리가 해야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적어도 프랑스에서 동성애자들의 인권에 대한 이슈와 논점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액트 업 파리는 에이즈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는 아주 중요한 걸 바꿔냈고, 지금도 그 변화는 가능하다. 이런 문제들이 다시 정치적 논쟁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더이상의 노스탤지어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에이즈라는 유행병은 공포스러웠고 우리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기 우리는 즐거웠고 강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었다. 오늘날엔 정치적 행동을 하기가 더 쉬워졌다.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페이스북에 손쉽게 글을 쓸 수 있다. 페이스북에선 너도나도 급진적이다. (웃음) 하지만 인터넷 밖 세상에선 어떤가. 오늘날의 이런 위장된 진보적 포지션이 조금은 걱정된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 쉬우니까. 만약 정치적 발언을 하고 싶다면 거리로 나가서 함께하라. 액트 업 파리가 정말 강했던 이유는 그들이 몸을 부딪혀가며 행동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캐릭터와 비교했을 때 실제로 당신은 어떤 인물에 가까웠나.
=네이선? 사실 그보단 덜 섹시했지만. 아니 거의 섹시하지 않았다. (웃음) 혹은 (액트 업 파리의 대표) 티보에 가까웠던 것도 같다. 그룹의 대표가 된 적은 없지만 티보처럼 공격적이지 않은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