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하리리, 모영, 나부락 등 아시아 혹은 홍콩 여성 액션배우들의 세계와 한국의 경우
2017-06-19
글 : 주성철
여검객, 남장 여성이 펼치는 액션의 서사, 그리고...
<여살수>의 하리리.

앞서 따로 언급한 정패패와 혜영홍을 제외하고, 빼놓을 수 없는 배우가 바로 정패패에 이어 쇼 브러더스를 대표하는 라이벌이었던 하리리와 리칭이다. 한국에서 <철낭자>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하리리의 대표작 <봉비비>(1991)에서, 하리리는 성폭행을 당해 억울하게 죽은 언니의 복수를 실행하는 검객이었다. <철수무정>(1969), <아랑곡의 혈투>(1970)에 출연한 리칭은 오히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으로 출연한 최루성 멜로드라마 <스잔나>(1967)로 유명한데, 당시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전역의 청춘영화에 큰 영향을 끼치며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는 능파로, 익히 알려진 ‘뮬란’ 이야기인 <여장군 화뮬란>(1963) 등에 출연했다. 이들 세 사람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특수효과를 선보인 블록버스터였던 <14인의 여걸>(1972)이다. 송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가문의 남자들이 모두 전사하자 과부가 된 양씨 가문 여자들이 전쟁에 참여해 활약하는 이야기다.

이어 <용쟁호투>(1973)에서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리(이소룡)의 누이동생 모영은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실력으로만 보자면 단연 최고수였다. 베이징오페라 단원 출신인 그녀는 <흑연비수>(원제 ‘합기도’, 1972), <흑권>(1973) 등 여러 편의 한·홍 합작영화에 출연했으며 호금전의 <영춘각의 풍파>(1973)와 <충열도>(1977)에 출연하기도 했다. <수라설희>(1973)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파계>(1977)에서는 ‘홍콩의 가지 메이코’처럼 등장해, 자신을 겁탈하려는 세 남자의 목에 전갈을 던져 그대로 죽여버릴 정도였는데, 매 작품 살기 가득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실제 이소룡의 제자였으니 엽문의 계보는 모영으로까지 이어진다 할 수 있다. 한편, 정패패, 모영 외에 <협녀>(1971), <공산영우>(1971), <산중전기>(1971) 등 작품 수로만 보자면 정패패보다 호금전과 더 긴 시간을 함께했던 단호하고 서늘한 표정의 서풍, <용문객잔>(1967)의 상관영봉도 빼놓으면 안 될 호금전의 당당한 여협객들이다.

<예스마담>의 나부락과 양자경(왼쪽부터).

역시 따로 언급한 양자경을 제외하고, 과거 여검객이나 여협객물만큼 많이 만들어진 1980년대 이후 홍콩영화계의 <예스마담> <패왕화> 시리즈 등 ‘여경찰물’에서 맹활약한 배우들을 빼놓을 수 없다. 먼저 예스마담 자리를 넘겨받은 양리칭은 <예스마담> 3편 격인 <자웅대도>(1988)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촬영하여 화제가 되고 리즈 시절의 견자단도 출연한 4편 격의 <직격증인>(1989) 등에 출연했다. 이 시리즈를 본떠 만든 <패왕화> 시리즈의 호혜중과 이세봉, 그리고 대도유가리도 빠지면 섭섭할 이름이다. 이들의 존재감은 세월이 흘러 <네이키드 웨폰>(2002)의 매기큐에게까지 이어진다 할 수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나부락’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미국 국적의 신시아 로즈록도 있다. 소림사에서 정통 쿵후를 배운 나부락은 맨손 기술은 물론 다양한 무기술에도 능했다. 이후 홍콩으로 건너가 액션영화에 입문했고 양자경과 함께 출연한 <예스마담>(1985)이 실질적인 데뷔작이었다. <부귀열차>(1986), <집법선봉>(1986), <마비취>(1987), <땡큐마담>(1988) 등에 출연했으며 이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가디언 엔젤>(1994), <체크메이트>(1996) 등에 출연하며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최근에는 브리짓 닐슨, 비비카 A. 폭스, 조 벨, 크리스타나 로컨 등 ‘한 액션’ 하는 여배우들이 총출동한 <외인부대: 암살자들>(2014)에 출연했다.

한편, 또 다른 여협객 임청하를 말하기 위해 젠더를 바꿔 출연하는 홍콩영화계의 흔한 전통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서극이 <양축>(1994)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던, 이한상 감독의 고전 <양산백과 축영태>(1963)에서 무남독녀 축영태는 남장을 해서 남자학교에 들어가고 그에게 사랑을 느낀 양산백은 고민을 거듭하던 중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안심한다. 양산백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앞서 얘기했던 능파다. <동방불패>(1991), <신용문객잔>(1992)은 물론 <동사서독>(1994)으로까지 이어지며 중성 혹은 남장역할로 더 익숙한 임청하도 사실 남장의 역사가 오래다. <창외>(1973)로 데뷔한 뒤 대만에서 멜로영화의 히로인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이한상 감독의 요청으로 <홍루몽>(1977) 출연 제의를 받게 된다. 원래 임대옥이라는 아름다운 여인 역할을 제의받았으나 카메라 테스트를 해본 이한상은 불현듯 남자인 가보옥 역을 맡기고,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협녀>의 서풍.

알려진 한국 배우 중에서는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던 남정임, 문희, 윤정희 중 남정임과 윤정희가 각각 <십오야>(1968)와 <팔도검객>(1970), <3인의 여검객>(1969)에 검객으로 출연한 것을 제외하면(실력은 남정임의 한판승), 홍세미와 김정란을 기억해야 한다. 1967년 세기영화사 ‘춘향’ 공모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홍세미는 김수용 감독의 <춘향>(1968)에 신성일과 함께 출연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뒤 <무정검>(1969), <백면검귀>(1969), <유정검화>(1970) 등에 출연해 우아하고 세련된 검술 실력을 뽐냈다. 이어 <금호문>(1977), <소림사 흑표>(1977), <애권>(1980)을 비롯해 성룡과 함께 <오룡대협>(1978), <사학비권>(1978)에 출연한 김정란도 빠지면 섭섭할 이름이다. 세월이 흐르면 액션영화의 탁월한 장인이었던 이두용 감독의 영화들이 있다. 1980년대 중반, 이두용 감독은 카 스턴트 등 물량과시형 할리우드식 액션과 자신의 장기인 격투 액션을 결합한 <돌아이>(1985)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매니저 황석(전영록)과 함께 밤무대를 누비는 여성 5인조(민복기, 오덕, 김미현, 손은주, 신은정) 그룹 ‘드릴러’의 존재감이 빛났다. 물론 훈련되지 않은 여배우들이 상당한 액션 분량을 소화하면서 다소 어설픈 부분도 있지만, 그전까지 과장되고 현란한 무협액션과 마초영웅으로 대표되던 액션영화의 본류에 내러티브의 들러리가 아닌 여성 캐릭터를 액션의 주체로 설정한 것만은 사실이다. 심지어 당시 영화 포스터에는 “女性은 더이상 희생당할 수 없다!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문구도 있었다. 이어 오디션을 통해 발굴한 배우 이진을 캐스팅한 이두용 감독의 또 다른 액션영화 <흑설>(1990)이 있다. 강도 높은 액션 신을 직접 소화해내고 있는데, 영화에서 언제나 야전 점퍼에 워커화를 신고 다니는 것은 물론, 첫 번째 액션 신에서 치한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치는 장면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를 분명히 한다. 이후 또 다른 액션 신을 보자면, 학원에서 만난 불량배들과의 격투 신도 그 연장선에 있다. 단숨에 니킥을 구사하여 맞은 남자는 나무 벤치 뒤로 넘어가버리고, 또 다른 불량배를 처리하기 위해 별다른 장면전환 없이 바로 화단의 벽돌을 집어든다. 그야말로 잘 훈련된 싸움꾼처럼 다소 과격한 액션 신을 펼치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외 <꼭지딴>(1990)의 최진실, <조폭마누라>(2001)의 신은경, <예스터데이>(2002)의 김윤진과 김선아도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경우다. 아마도 현 시점에서 충무로 최고의 여성 액션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하지원과 전지현일 것이다. 먼저 드라마 <다모>를 비롯해 <형사 Duelist>(2005), <1번가의 기적>(2007), <7광구>(2011)에 출연하며 사극 액션과 복싱까지 두루 익힌 하지원의 노력을 따라갈 이는 없을 것이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스턴트맨 길라임으로 등장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편, 전지현은 오래전 <엽기적인 그녀>(2001)에서 이미 영화 속 영화 장면에 출연하며 현란한 와이어 액션과 총기 액션, 그리고 여검객의 모습까지 선보였다. 이후 <블러드>(2009)에서는 뱀파이어 헌터 사야로 등장하여 강도 높은 액션 신을 무리 없이 소화했고 <베를린>(2012), <도둑들>(2012), <암살>(2015)에 이르기까지 최근작에서도 언제나 일정 정도 이상의 액션 분량을 멋지게 소화해내고 있다. 끝으로 최근 개봉작인 <악녀>의 김옥빈은 물론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 척사광으로 출연해 화려하고도 우아한 곡산검법을 선보인 한예리를 더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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