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①] <유리정원> <균형>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2017-10-02
글 : 김현수

<유리정원> Glass Garden

신수원 / 한국 / 2017년 / 117분 / 개막작

변형세포를 연구하는 생물학도 재연(문근영)은 적혈구와 엽록체를 결합시키면 인간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세운 미지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 학계를 상대로 정치나 로비에는 능력도 관심도 없어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던 그녀가 자신을 시기하는 동료들로부터 연구성과를 송두리째 뺏길 위기에 처한다. 설상가상으로 믿고 의지하던 교수(서태화)도 자신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걸 깨달은 재연은 비밀 연구공간인 ‘유리정원’으로 들어가버린다. 한때 떠오르는 신인 작가였지만 수년째 데뷔작을 넘어서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소설가 지훈(김태훈)은 우연히 재연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녀가 세상과 단절된 유리정원에서 괴이한 ‘생체실험’에 몰두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재연이 행하는 실험이 자신에게 인생역전을 가져다줄 소설 아이템임을 깨닫고는 그녀 몰래 웹소설을 연재해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점점 사회에서 도태되어 인생의 위기를 맞던 두 사람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기괴한 과학과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처연하게 묘사된다. <명왕성>(2012), <마돈나>(2014) 등을 연출하며 자본주의사회의 병폐를 파고들었던 신수원 감독은 미스터리와 판타지를 결합한 신작 <유리정원>을 통해 잘못된 믿음과 선택에 빠져들어 파국을 맞는 과학도와 소설가의 삶을 파헤친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배우 문근영이 맑고 순수하면서도 지독하리만치 잔인한 면도 지니고 있는 페이소스 짙은 인물 재연을 연기한다.

<균형> Equilibrium

빈센초 마라 / 이탈리아 / 2017년 / 83분 / 월드 시네마

무시무시한 나폴리 마피아 ‘카모라’가 장악한 캄파니아의 한 교회에 정의롭고 신앙심 강한 신부 주세페(미모 보렐리)가 부임하면서 펼쳐지는 아름답고 잔인한 무혈 투쟁극. 아프리카 선교사로 일하던 주세페는 자신이 영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직감하고는 고향 마을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온 그의 눈에 비친 마을 풍경은 참혹하다. 경건해야 할 교회와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할 놀이터, 마을 사람들의 생활 터전인 아파트 등 거의 모든 마을 시설이 사실상 마피아의 손에 놀아나고 있었던 것. 주세페는 마피아 두목이 개인 사유지처럼 쓰던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마약 판매처로 둔갑한 아파트에 살며 괴로워하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한다. 이 소식을 접한 마피아 보스가 주세페의 목숨을 위협하지만 신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정화에 뛰어든다. 빈센초 마라 감독은 영적인 균형과 사회의 균형을 이뤄내기 위한 주세페의 힘겨운 투쟁을 보여주는 데 편집이나 음악 등 연출상의 기교를 최소화했다. 덕분에 아무런 무장도 없이 오직 신앙의 힘으로 갱단 소굴 곳곳을 누비는 주세페 신부의 뒷모습이 숭고함을 자아낸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니스데이 섹션에 소개된 작품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The Tokyo Night Sky Is Always the Densest Shade of Blue

이시이 유야 / 일본 / 2017년 / 108분 / 아시아영화의 창

도쿄를 배경으로 외롭고 쓸쓸한 도시 청춘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드라마. 도쿄에 사는 젊은이들은 시부야 밤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즐기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들은 낮에 힘들게 일하고 밤거리를 신나게 활보한다. 하지만 숙취 후에 남는 것은 부채처럼 쌓여만 가는 고단한 일상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신지(이케마쓰 소스케)와 토모유키(마쓰다 류헤이)는 일상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여성 바텐더를 만날 수 있는 술집 ‘걸즈바’를 찾는다. 그곳에서 만난 바텐더 미카(이시바시 시즈카)는 도쿄의 값비싼 집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낮에는 간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걸즈바로 출근한다. 토모유키는 미카에게 첫눈에 반하고 갑갑한 일상의 해방구와도 같은 연애를 꿈꾼다. 하지만 이들의 연애가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선사할 리 없다. 토모유키와 아쉬운 이별을 고하게 된 신지와 미카는 서로의 고통을 직시하면서 불확실한 도쿄의 삶을 이어나갈 나름의 방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별까지 7일>(2014), <행복한 사전>(2013) 등을 연출하며 차분하고 섬세한 작품세계를 이어갔던 이시이 유야 감독이 화려한 도시의 삶에 매몰되지 않고 버텨나가는 젊은이들을 보듬는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과 같은 영화들의 21세기 도쿄 버전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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