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비올레타, 결국은> <조니를 찾아서>
2017-10-02
글 : 김소미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Close-knit

오기가미 나오코 / 일본 / 2017년 / 127분 / 아시아영화의 창

오기가미 나오코의 맑은 영화가 돌아왔다. 현대인의 보편적인 공허 속에서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카모메 식당>(2006), <안경>(2007) 같은 작품과 달리 대안가족과 성소수자 이슈를 중심부로 끌어왔다는 것에서 새로운 변화와 도전 의식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집 나간 엄마로 인해 삼촌과 함께 살게 된 소녀 토모(가키하라 린카)가 삼촌의 연인이자 트랜스젠더인 린코(이쿠타 도마)와 조우하면서 겪는 생활의 변화를 그린다. 타인을 보살피는 마음이 강한 린코는 토모에게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돌려주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노력한다. 가족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편견 앞에서 그녀는 뜨개질을 통해 내면을 다스린다. 차별을 몸소 겪으면서 토모 역시 뜨개질 의식에 동참하고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결합’(knit)은 점점 더 견고한 진심의 형태를 갖추어나간다. 통렬한 고발이 아닌 양순한 시선으로도 인물의 고난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곧 이 영화의 미덕이다. 가족극과 성장담의 모범을 따라가지만 세심한 캐릭터 설계 덕분에 안일한 인상 없이 전개된다. 밝은 빛으로 부드럽게 처리된 화면이 상냥함으로 길어올린 분위기를 매끄럽게 떠받치고 끔찍한 안타고니스트가 없는 선의의 세계가 펼쳐진다. 따뜻하고 맛있는 식사 시간, 한적한 배경 속에서 인물들의 대화가 롱테이크로 전개되는 오기가미 나오코의 평화로움도 여전하다. 간간이 등장하는 귀여운 소품과 직설적인 대화가 주는 웃음 역시 거부하기 힘들다. 배려와 유머가 온전히 조화를 이룬 연대의 드라마.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파노라마 관객상을 수상했다.

<비올레타, 결국은> Violeta at Last

일다 이달고 / 코스타리카, 멕시코 / 2017년 / 85분 / 플래시 포워드

이혼 후 홀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려는 비올레타(유제니아 차베리)에게 주변인들은 모두 ‘나이에 걸맞은 삶’ 운운하며 난색을 표한다. 꿋꿋이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던 그녀는 얼마 못 가 전남편이 집을 담보로 남긴 큰 빚이 있음을 알게 된다. 평생이 깃든 집을 빼앗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쓸모와 도태를 염려하는 노년의 불안도 함께 찾아온다. 영화는 수영장과 성당, 집의 정원을 오가는 밋밋한 생활을 명랑한 리듬으로 엮어내는 한편 반복되는 내면의 침잠과 고립감 역시 차분히 응시한다. 죽은 부모가 비올레타의 곁을 맴도는 장면들은 일견 시적이고 명상적인 기운마저 감돈다. 비올레타가 ‘결국’ 취하게 되는 선택을 위해 사소한 일상의 미장센들을 꼼꼼히 쌓아나가며 이는 종반부의 강렬한 시각적 대비감과 함께 예기치 못한 활력을 선사한다.

<조니를 찾아서> Missing Johnny

후앙시 / 대만 / 2017년 / 104분 / 아시아영화의 창

영화는 제각기 다른 상처를 지닌 채 도시 생활이 주는 단절감을 경험하고 있는 세 남녀를 느슨한 연결 고리로 묶는다. 생계를 위해 공사 현장에서 온갖 잡무를 담당하는 남자 펑과 인간보다는 새와 더 친밀한 교류를 나누는 여자 수, 그리고 자폐 성향이 있지만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 없이 오롯이 생활하기를 바라는 리는 비슷한 공간을 따로 또 같이 맴돌며 시시한 화제를 공유한다. 생활감이 느껴지는 공간을 배경으로 별다른 극적 사건 없이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돌출되어 보이는 것은 ‘조니’의 존재다. 그는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사실상 서사의 전개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수의 번호로 조니를 찾는 다양한 사람들의 전화가 반복적으로 걸려올 때 영화는 얼마간 도시의 유령적 존재인 우리 스스로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조니를 찾아서>의 매력은 대만 선배감독들의 자장 아래 놓인 쓸쓸하고 고독한 정취 안에 청춘영화의 낭만과 활기 또한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허우샤오시엔이 제작을 맡았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