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결코 놓쳐선 안 될 이름들이 있다. 이 이름들 앞에 세계적인 거장이란 수식어는 어딘가 식상하다. 영화제가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을 믿고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영화의 축제라는 전제하에 차라리 관객을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인 문제적 감독들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마더!>는 단연 올해의 화제작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평화롭던 부부의 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연이어 방문하고 아내는 이들의 무례한 행동이 불편하다. 그럼에도 손님들의 눈치를 보며 극진히 대접하는 남편의 모습에 아내의 불안은 점점 커져간다. 제니퍼 로렌스가 아내 역을 맡아 신경쇠약 직전의 캐릭터를 그려냈다.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북미에서 평단과 관객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호불호가 명확한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영화 중에서도 도드라지게 상반된 평가들이 쏟아지고 있다. 오히려 그 점이 관람 포인트라 할 만하다. 감독과 배우가 영화제 기간 중 내한하니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 기복 없이 늘 찬사를 받아왔던 감독의 색다른 도전을 만날 수도 있다. 가족과 삶에 대한 담담한 시선으로 정평이 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서스펜스 드라마 <세 번째 살인>으로 돌아왔다. 승승장구하던 변호사가 사형이 확실시되는 살인범의 변호를 맡은 후 범행 동기에 의문을 품고 진실을 파헤쳐가는 내용을 담았다. 변호사 역에 후쿠야마 마사하루, 살인범 역에 야쿠쇼 고지가 캐스팅되어 열연을 펼쳤다. 법정물, 스릴러의 외피를 빌려오되 부조리를 통해 내면을 파고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통찰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한편 언제나 자신이 잘하는 것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오우삼 감독은 신작 <맨헌트>에서 다시 한번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선보인다. 2014년 세상을 떠난 다카쿠라 겐에 대한 헌사의 의미로 1976년 일본영화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를 리메이크한 영화이며 누명을 쓴 변호사가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았다. 장한위, 후쿠야마 마사하루, 하지원 등 한·중·일 배우가 모두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포스터에서부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비둘기를 박아넣은, 그야말로 오우삼의 영화다.
제74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도 놓칠 수 없다. 1962년 냉전 시기 미국, 정부에서 극비리에 운영하는 연구소에 물고기 인간이 실험용으로 들어온다. 어느 날 언어장애를 겪는 연구소의 청소부가 물고기 인간과 만나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2006) 등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꾸준히 다뤄온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환상적인 비전과 기묘한 상상력을 접할 수 있는 영화다. “병의 모양에 따라 달라지는 물의 형태처럼 사랑 또한 어떤 모양이든 될 수 있다”는 감독의 설명이 영화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환상의 끝자락에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있다면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드라마의 중심에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인 실비아 창 감독의 <상애상친>이 있다. 세대를 대표하는 세 여성의 삶을 통해 80, 90년대 산업화를 거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다. 대만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감독인 실비아 창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90년대에 대한 향수와 복고를 넘어 삶에 대한 통찰과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