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과 영화판
2018-05-09
글 : 이동은 (영화감독) | 일러스트레이션 : 마이자 (일러스트레이션) |
선거판과 영화판

선거는 많은 사람을 설득할수록 이기는 게임이다. 이 점에서 선거행위는 영화산업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극장의 매표소를 뜻하는 박스오피스는 투표함과 어감부터 닮았다. 박스오피스를 통해 영화 흥행 순위가 집계되니 선거의 당락이 결정되는 투표함과 서로 기능도 비슷하다. 날마다 전국 상영관에서는 입후보한 여러 영화가 유권자인 관객을 대상으로 선거를 치른다.



선거는 또한 집단 선택의 과정이다. 그래서 종종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이른바 중도파의 함정이다.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전쟁: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전략>에서 중도파란 없다고 주장했다. 중도파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사안에 따라 보수적 관점을 취하기도 하고 진보적 견해를 따르기도 한다. 이는 그들이 각각 동조한 의견의 전체 평균값이 중간 지점에 위치할 뿐, 쟁점에 따라 입장은 저마다 다름을 의미한다. 유권자를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중간을 추구하는 선거 전략은 자칫 위험한 전략일 수 있다.



그럼에도 영화라는 선거에는 중도가 난무한다. 거대 정당이 기획한 영화 후보들은 특히 유권자의 평균적 취향에 맞춰 제작되고 입후보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들 모두가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는 못한다. 그렇다. 선거처럼 영화에서도 중도 전략은 종종 실패한다. 그것이 후보의 매력을 담보해주진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는 이상한 영화”라는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뱅상 말로사의 말처럼, 그런 이상을 목표로 했다가는 정말로 이상해져버려 사람들이 외면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극장에는 거대 정당 후보의 투표소가 즐비하다. 거대 정당이 투표소마저 장악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 투자부터 배급, 상영까지 장악한 거대 정당 후보는 종종 투표소와 투표시간마저 독과점한다. 그뿐인가, 막대한 자본을 거느린 외국인 후보 역시 이 투표소 싸움에 가세한다. 이들 후보가 끌리지 않는 유권자는 다른 매력적인 후보를 찾지만, 선거에 참여하기 어렵다. 유권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큰 곳에는 군소 후보나 무소속 후보의 투표함 자체가 없다. 투표 의지가 있어도 제한된 시간에 발품을 들여야만 겨우 투표할 수 있다. 이렇게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군소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이 극복할 방법은 사실상 희박하다.



투표소를 장악한 권력은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 핑계를 대지만 진정으로 유권자를 위한 길은 다른 데 있다. 문제는 룰이다. 척박한 환경을 지속한다면 참여자는 자신을 스스로 소외시켜버릴지 모른다. 그렇게 유권자가 선거를 외면하고, 투표율 자체가 떨어지는 현상을 우리는 이미 경험해보았다. 공정한 선거가 확립돼야 유권자는 다양한 매력을 지닌 후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후보들은 신념을 버린 채 중도의 허상을 좇기보다는 자신이 진심으로 믿고 있는 바를 어떻게 유권자에게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는지 고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