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허스토리> 촬영 뒷이야기
2018-06-20
글 : 송경원
90년대의 부산-시모노세키를 재현하다 ①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6년간의 법정 투쟁, 90년대 풍경을 스크린 속에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박자명 PD, 박정훈 촬영감독, 이나겸 미술감독, 최의영 의상감독에게 제작과정을 들었다.

촬영

“뭔가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고 담백하게 접근하는 게 유일한 컨셉이었다.” <악녀>(2017)를 찍은 박정훈 촬영감독이 <허스토리>를 찍으면서 세운 단 하나의 원칙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였다. 슬픔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클로즈업을 최대한 배제했고 인물들에게서 가능한 한 거리를 둔 것이다. “기본에 충실했고 멋보다는 안정적인 프레임, 객관적인 이미지에 신경 썼다. 할머니들의 그룹 숏이 언뜻 사이즈가 어정쩡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쌓이고 쌓여 자연스런 거리가 만들어진다. 워낙에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라 포커스만 맞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찍었다.” 색감도 주목할 만하다. <허스토리>는 색깔은 있되 살짝 빛바랜 사진마냥 필터를 통해 미묘한 거리감을 표현했다. “90년대는 지금이랑 많이 떨어진 것도 아니라서 약간 애매한 시기다. 막연하게 생각한 90년대의 느낌은 살짝 노랗게 빛바랜 필름사진이었다. 한국에서의 공간은 따뜻한 필름의 질감을 살리려 했고, 일본의 공간은 할머니들이 느끼듯이 조금 더 차가운 느낌으로 가져갔다.”

관부 재판을 소재로 한 만큼 할머니들의 법정 진술에 상당 분량이 할애됐는데 이것 역시 여느 법정물과는 차이를 뒀다. 언뜻 연극 무대 같은 느낌도 주는 법정 장면들에서는 인물에게 핀 포인트를 주는 등 조명의 사용도 과감하다. “공간이 인물을 억누르는 느낌을 주기 위해 세트의 규모에 신경을 많이 썼다. 프레임을 위쪽으로 많이 개방하고 상단에 배치된 창문까지 잡았다. 햇볕이 할머니들에게 직접 닿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이 사는 산동네, 정숙(김희애)의 여행사, 시모노세키의 여관과 지방법원 등 공간마다 특색을 부여하고 있지만 촬영에서 이를 굳이 구분하고 싶진 않았다고 한다. “공간마다 개성이 확실해서 카메라가 거기에 있을 자리를 찾기만 하면 딱 맞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넓지도 않고 타이트하지도 않게, 배우의 눈빛을 담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찾는 게 숙제라면 숙제였다.” 겸손한 카메라는 그렇게 배우의 힘을 담아내는 걸로 제 몫을 다한다.

박정훈 촬영감독_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2002) 촬영팀으로 시작해 <설행_눈길을 걷다>(2015), <악녀>(2017) 등의 촬영감독을 맡았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