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물에서 의상은 특히 “그 시대만의 분위기”를 구현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허스토리>의 의상을 담당한 최의영 의상감독은 “90년대, 그리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의상을 만든다는 점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영화 초반, 대한여행사 사장인 문정숙(김희애)을 필두로 모인 여성경제인협회가 등장할 때면 저마다의 화려하고 과시적인 패션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눈이 즐겁다. “성공한 사업가, 정치가들의 스타일엔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는 최의영 실장의 말처럼 자기 힘으로 부와 명예를 꾸린 여성 경제인들은 “과감한 패턴과 컬러”를 입고 자신감을 드러낸다. 배우 김희애와 더불어 김선영의 존재감이 빛나는 것도 의상과의 시너지가 큰 덕분이다.
문정숙의 의상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강경화 장관 등 “사진 한장만 봐도 어떤 성격인지가 느껴지는 거침없는 여성 인물들”의 실제 의상을 참고했다. 90년대 부산을 담은 사진 자료와 다큐멘터리를 거쳐 “투피스 정장, 볼드한 주얼리, 넓은 칼라의 블라우스나 커다란 버튼 디자인” 등 시대적 고증을 철저히 적용시킨 디테일이 따라 나왔다. 정숙의 스타일은 재산을 탕진해가며 재판에 매달리는 와중에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법정에 맞춰 “스카프 정도로 포인트를 절제할 뿐, 고집과 신념만큼 스타일도 철저히 유지한다”는 게 최의영 실장이 바라본 문정숙이다.
실제 자료 중 의상팀의 눈을 붙잡은 것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법정에 나선 할머니들의 모습이었다. “가지고 있는 가장 고운 옷을 꺼내 입는” 모습이 상상되는 지점이다. 영화 속 첫 번째 재판에서 할머니들은 티없이 하얗고 고운 무명한복을 입고 나온다. “결의를 다지는 동시에 한국적인 정서를 살리려는” 의도였다. 특히 서귀순(문숙)이 증언하는 장면에서 입은 한복의 경우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컬러인 옥색”을 찾기 위해 원단을 찾는 데만 한참 걸렸다.
편안하고 소박한 할머니들의 패션이라는 리얼리티를 살리되, 인물별 개성을 살리려는 시도 역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늘 단추를 꽉 채우고 옷을 단단히 여미던 배정길(김해숙)의 자태가 오래 남는다. 정길은 “오랜 세월 입었으나 관리가 잘된 듯한 옷”을 입었다. “가난하지만 정갈함을 잃지 않는 태도”다. <허스토리> 속 의상은 오랜 고난과 역경을 견딘 인물의 삶을 거쳐 비로소 그 원단의 질감과 냄새마저 전달해온다.
최의영 의상감독_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화차>(2011),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등의 의상을 담당했다. 영화의상제작소 영필름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