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허스토리> 로케이션 뒷이야기
2018-06-20
글 : 이화정
90년대의 부산-시모노세키를 재현하다 ②

1992년 12월 23일 관부 재판 원고단 일본 출국. 이후 총 20회의 구두 변론 진행 후 1998년 판결문이 나오기까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부산에서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을 오가는 6년의 시공간을 화면에 구현해야 했다. “90년대 시대극이자, 장소와 계절의 변화가 드러나야 했다”는 박자명 PD는 총 34회차를 25억원의 적은 제작비로 커버하기에 빠듯한 상황을 돌파해야 했다고 말한다. “원래 10억원 미만으로 책정되어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그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규모의 영화였다.” 부산과 시모노세키, 실제 위안소로 쓰인 곳이 아직 남아 있는 중국의 난징까지 해외 로케이션 진행이 필요했다. 효율성을 높이고자 주 배경이 되는 부산의 여행사, 법원을 세트로 충당하다보니 해외 로케이션의 예산은 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세트 하나 만드는 예산이 사극만큼 드니 꼭 필요한 부분을 빼고 모두 한국에서 진행했다.”

중국은 크랭크인 전 2박3일간 메인 스탭이 가고, 일본은 촬영 후 감독, 메인 스탭만 가서 3박4일간 스케치 촬영을 했다. 난징 위안소는 60년간 보존되어 있었는데, 영화 촬영 후 철거됐다. 일본 장면은 한국에서 최대한 일본 분위기를 담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인천, 부산, 군산 등 옛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곳, 적산가옥이 있는 곳을 찾아 진행했다. 할머니들이 간 료칸의 탈의실도 일본이 아니라 부산 지역에서 찾아 내부 세팅을 한 것이다. 당시 차량을 대여하면 렌트비가 높아져 거리 구현도 최소화했다. “시대 재연에 초점을 너무 두지 말자. 정말 최소한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게 목표였다.”

로케이션만큼이나 모든 과정이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단체숏이 많은 영화라 배우 누구라도 상황이 변경될 경우 스케줄 조율이 쉽지 않았다는 점, 법정 내부, 바깥, 강당 등을 채울 보조출연자가 일반 영화보다 많은 것도 과제였다. 후쿠오카 강당의 경우 분할 촬영을 한 뒤 CG로 수를 늘리는 등의 방법을 썼다. 기록물, 인터뷰 등 방대한 자료가 모두 일본어라 번역 작업도 영화를 만드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한 요소 중 하나다.

박자명 프로듀서_ <짝패>(2006), <오감도>(2009)의 제작부를 거쳐 <두 여자>(2010), <간신>(2015), <무서운 이야기3: 화성에서 온 소녀>(2016)의 프로듀서로 활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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