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추천작①] <리벤지> <공포의 침입자> 外
2018-07-11
글 : 김현수
<씨네21> 기자들이 가려 뽑은 추천작 20편

<리벤지> Revenge

코랄리 파르자 / 프랑스, 영국 / 2017년 / 108분 / 부천 초이스: 장편

아마도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만나게 될 가장 잔혹하고 가장 통쾌한 여성 액션을 볼 수 있는 복수극이지 싶다. 스크린을 핏물로 가득 채우면서도 시대의 정서를 고민하는 장르영화를 기다려왔다면 <리벤지>를 주목하자. 백만장자 리차드의 내연녀인 제니퍼는 사막 한가운데 으리으리하게 세워놓은 별장의 사냥 파티에 초대받는다. 리차드의 초대를 받고 파티에 참석한 친구 두명이 리차드가 집을 비운 틈을 타서 제니퍼를 해코지한다. 남자들로부터 능욕을 당하고 죽을 고비까지 넘긴 제니퍼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이들을 한명씩 처단하기 시작한다. <리벤지>의 미덕은 장르영화 안에서의 성별 역학관계를 뒤집는 것을 핑계 삼아 폭력을 전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더 끔찍한 방식으로 피와 뼈를 다룰지를 고민함과 동시에 자멸하는 남성 권력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한 세 남자의 캐릭터 디자인 또한 숙고한 흔적이 보인다. 무차별 성폭력의 희생자가 될 뻔했던 주인공 제니퍼가 여전사로 거듭나며 가해자 남성들을 처단해나가는 과정 내내 아드레날린을 장착한 선혈이 낭자하니 기대해도 좋다. 흡사 <킬 빌> 시리즈가 이룬 성취도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의 여성감독인 코랄리 파르자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이탈리아 모델 출신의 신예 마틸다 러츠가 인상적인 액션 연기를 보여줬다.

<공포의 침입자> Terrified

데미안 루냐 / 아르헨티나 / 2017년 / 87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은퇴를 한달여 앞둔 푸나스 경감은 최근 이상한 사건에 휘말린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깬 남자가 욕실에서 아내의 자해 현장을 목격한 사건, 교통사고로 사망해 장례까지 치른 아이가 무덤을 뚫고 살아 돌아온 사건 등 한 마을에서 이상한 사고가 연달아 발생한 것. 초자연적 현상임을 직감한 경찰은 초자연적 현상 수사 경력이 있는 수사관과 박사를 소집한다. 데미안 루냐 감독의 <공포의 침입자>는 초자연적 현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나 귀신 들린 집을 소재로 다루는 하우스 호러 장르 영화들, 혹은 원혼에 싸인 집에 서식하는 괴상하고 끈적한 악령의 형체를 보여주는 일본의 공포영화 등 세계 각지의 장르영화 흐름의 장점을 모아 조합한 영화 같다. <컨저링> 시리즈로 대변되는 최근 공포영화의 트렌드도 흡수해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한다. 1980년대 공포영화의 정서와 21세기 공포영화의 전략이 교묘하게 결합한 수작이다.

<사탄의 숭배자> Satan’s Slaves

조코 안와르 / 인도네시아 / 2017년 / 106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한때는 잘나가는 가수였으나 3년 전 원인 모를 질병에 걸린 뒤로 서서히 죽어가는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온 가족이 산속으로 이사를 한다. 그녀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아빠는 장녀인 리니와 아들 토니,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 본다이와 이안 4남매를 책임지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한다. 하지만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던 엄마가 결국 세상을 떠난다. 사건은 엄마의 장례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이들 4남매는 집 안 곳곳에서 죽은 엄마의 흔적을 느끼게 되고 집 안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형적인 오컬트 하우스 호러 영화의 장르규칙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훌륭한 공포영화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르 규칙의 교본 같은 영화다. <조니의 약속>(2005), <포비든 도어>(2009) 등을 연출한 조코 안와르 감독의 신작으로, 2017년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해 역대 자국 공포영화 중 흥행 1위를 차지한 영화다.

<다이너마이트 스캔들> Dynamite Graffiti

도미나가 마사노리 / 일본 / 2018년 / 138분 / 금지구역

일본의 에로잡지 <사진시대>는 1981년에 창간해서 1988년 폐간하기까지, 세이지 구라타, 모리야마 다이도, 아라키 노부요시 등 문제적 사진가들과 작업하며 외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다이너마이트 스캔들>은 <사진시대>의 기획, 취재, 편집과 일러스트, 표지 디자인까지 거의 모든 걸 도맡아 작업했던 전설적인 편집자 아키라 스에이의 자전적인 에세이를 영화화한 작품. 18살의 어린 나이에 도시로 상경해 공장을 전전하던 스에이는 먹고살기 위해 카바레 간판을 그린다. 그러다가 에로잡지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그는 뛰어난 그림 실력과 변태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여러 에로잡지를 연이어 성공시킨다. 영화는 스에이의 젊은 시절 이야기와 함께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성문화와 산업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에로잡지의 메커니즘을 배경처럼 펼쳐 보인다. 당대 도시인들의 저열한 뒷골목 욕망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는 한 남자의 폭발하는 성적 상상력의 근원과 결핍이 무엇이었는지를 들여다보는 영화다.

<칼+심장> Knife+Heart

얀 곤잘레스 / 프랑스, 멕시코, 스위스 / 2018년 / 110분 / 금지구역

1979년 파리, 게이 포르노 영화감독인 안느는 자신의 애인이자 편집자인 로이스에게 실연당한다. 그리고 얼마 뒤 게이들을 노린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안느의 영화를 찍었던 배우들이 하나둘씩 살해당한다. 이에 영화 제작진 모두 충격을 받는데 사랑의 아픔을 잊기 위해 더욱 영화 제작에 매진하던 그녀는 점점 표독스러워지다 못해 살인사건을 소재로 <호모사이드>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 것을 종용한다. 촬영을 거듭할수록 살인사건 역시 반복되면서 모두가 불안에 떠는 와중에, 안느도 살인범도 어느 쪽 하나 멈추지 않고 범죄의 실체는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포르노영화 촬영현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잔혹한 살해 현장의 묘사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드레스드 투 킬>(1980)을, 미스터리한 범죄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은 <필사의 추적>(1981)을 떠올리게 할 만큼 여러 방면에서 드 팔마 스타일을 차용한 스릴러영화다. 안느를 연기한 배우 바네사 파라디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2018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굶주린> Ravenous

로뱅 오베르 / 캐나다 / 2017년 / 100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캐나다에서 날아든 뜻밖의 낯선 좀비영화. 퀘벡의 작은 시골 마을에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간다. 오랫동안 한 마을에서 지내온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지인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게 된다. 죽은 사람들도,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두가 그저 평범한 소년이자 엄마이자 청년들일 뿐이다. 로뱅 오베르 감독의 <굶주린>이 여타의 좀비영화와 조금 다른 점은 바로 영화의 주인공이다. 보통의 장르영화라면 으레 가장 먼저 죽을 것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끝까지 살아남는 모습이 시선을 붙든다. 이유 없이 분노하면서 질주하는 좀비의 형태는 2000년대 이후 변화하는 좀비의 모습과 별다를 바 없지만, 그들이 마지막에 보게 될 을씨년스러운 좀비 마을의 풍경은 기존의 좀비 영화에서 본 적 없는 서글픈 이미지다. 로뱅 오베르 감독은 로베르 브레송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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