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어 있던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후, 외로울 줄 알았는데 해방감이 더 컸다. “대부분의 사람과 연락을 끊었고 (중략) 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했고,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았고, 화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없어지는 쪽을 택했다. 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김봉곤, <시절과 기분> 중) 아, 무슨 기분인지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고향을 떠나 이전의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하기 시작한 주인공은 과거의 사람들에게 내가 ‘사라짐’으로써 한층 자신이 선명해짐을 느낀다. 때로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진짜의 나를 흐릿하게 만든다. 9월의 <씨네21> 북엔즈 서가에는 이처럼 마음과 기분, 그날의 분위기를 문장으로 낚아올린 책들이 모였다. 앞서 소개한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이 수록된 소설집은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봄-여름 2018>이다. 문고본의 얇은 분량으로 봄과 여름을 닮은 소설과 작가 대담이 실렸다. 김봉곤, 조남주, 김혜진, 정지돈 등 지금 한국 문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2018년 한국에 사는 복잡한 마음들을 뜰채로 길어 올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소설을 썼다. 그의 영화 <어느 가족>을 소설로 쓴 <좀도둑 가족>이다. 영화에서는 모호했던 오사무, 노부요, 쇼타 등 인물들의 생각들이 소설에서는 선명히 드러나 있다. 1994년부터 20여년에 걸쳐 출간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 산사편을 모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는 여행자의 생각을 통해 풍경이 그려지는 답사기이다. 산사로 올라가는 길, 일주문에 써진 글자와 산사를 둘러싼 옛이야기, 지금의 달라진 풍경을 바라보는 소회까지 이 한권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국 산사의 역사가 손에 잡힌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한 박상영의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도 소개한다. 리드미컬하면서 유머러스한 문장이 살아 있는 소설집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등의 단편이 묶였다. 해원 작가의 <슬픈 열대>는 전직 특수요원 순이가 소녀를 구하기 위해 마약 카르텔 전쟁에 뛰어드는 여성이 주인공인 장르소설이다. 우리가 그동안 살아온 시대를 1990년대 콜롬비아를 통해 은유한다.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우희덕의 장편소설 <러블로그>도 마지막 소설로 꽂혔다. 신인작가다운 개성과 블랙 유머로 무장한 이 소설은 현실과 허구를 중첩시켜가며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블로그에 담긴 현실과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주인공의 여정이 펼쳐진다. 5권의 소설집과 1권의 답사기, 6권의 책을 읽을 여유들이 있는 시간이 이 가을에 당신에게 주어지기를 바란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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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소설 보다: 봄-여름 2018>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 <슬픈 열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러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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