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소설 <좀도둑 가족>을 내면서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고 다시 영화를 보는 순서를 추천한다”고 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러한 순서를 작가가 추천한 이유를 납득하게 된다. 소설은 영화와 거의 같은 순서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영화에서 미묘하게 표현되었던 인물의 표정이나 대사를 소설에서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둘 중 누가 회사를 관둘 것인지 다투던 동료에게 린의 존재로 협박을 당한 노부요가 일 대신 린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노부요의 마음을 자세히 알 수 없다. 단지 ‘엄마’가 된 노부요에게 유리가 무척 중요해졌다는 것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반면 소설 속 노부요는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긴 자신을 엄마라고 정확히 자각한다. 그리고 해고된 후 ‘나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동네의 작은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던 쇼타가 “동생에게는 시키지 마라”라는 주인의 말을 들었을 때의 마음 역시 소설은 자세히 묘사한다. ‘할아버지의 한마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쇼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가슴 깊은 곳에서 몇번이고 씁쓸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좀더 친절해진 고레에다의 텍스트는 자기만의 해석을 즐기는 관객에게는 단점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었던 인물의 마음이 더 가까이 만져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윤락업소에서 동생의 이름인 사야카를 가명으로 쓰는 아키의 마음은 공감이 가도록 설명되어 있고, 영화에는 없었던 아키와 동생 사야카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도 소설에는 등장한다. 특히 따뜻한지 음험한지 좀체 속을 알 수 없는 할머니 하쓰에의 속마음 역시 소설에서는 알기 쉽게 그려진다. 심플한 문장과 설명으로 이미지가 쉽게 떠올라 잘 읽히는 것은 에세이에서부터 소설에까지 계승된 고레에다 텍스트의 힘이다. <좀도둑 가족>은 각본이 먼저 쓰였고 영화를 찍은 후 소설로 쓰였다. 이미지를 다시 글로 만들어가면서 감독은 더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덧붙였다. “찍는 행위보다 글쓰기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한 감독의 첫 소설이다.
안아줄게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노부요는 린을 꼬옥 안아주었다. 뺨과 뺨이 찌부러질 만큼 힘껏 끌어안았다. 노부요는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르는 걸 느꼈다. 옷을 태우는 불 때문인지 눈물이 따뜻했다. 린은 뒤돌아 노부요의 얼굴을 보며 작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 아이가 무척 귀엽다든지 안쓰럽다든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이 아이를 안고 안기는 것만으로, 자신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1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