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를 여행하는 유홍준의 길은 산사 밖 진입로에서부터 시작한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외국인 커미셔너들에게 한국 문화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어 순천 선암사를 함께 찾은 유홍준은 선암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진입로를 따라 30분을 걸어 올라간다. “우리나라 산사 건축은 진입로로부터 시작된다. 산사의 진입로는 그 자체가 건축적, 조정적 의미를 지닌 산사의 얼굴”이라고 믿는 그는 친구 캐서린으로부터 산사 진입로에 대한 품평을 듣고 감탄한다. “길이 아름답고 인간적인 크기입니다. 특히 계곡을 따라 돌아가도록 멋있게 디자인되어 있네요.” 한국 산사의 진입로가 인간적인 크기이며 인공이 가해지지 않았음에도 디자인 개념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확인한 저자가 얼마나 뿌듯해했는지는 책에도 잘 드러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이하 <산사 순례>)는 지난 6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것을 기념으로 출간되었다. 1994년부터 시작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국내편 중 산사를 소개한 글들을 묶은 책이기에 새로 쓴 글들은 아니다. <산사 순례>에는 그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실렸던 남한의 대표적인 산사 20곳과 아직 가볼 수 없지만 언젠가 꼭 가고 싶은 북한의 산사 2곳을 가려 실었다. 산사의 가람 배치와 건축의 한국적 미, 산사 건축 당시의 역사적 사실들과 과거 고승들의 유쾌한 에피소드들이 마치 한 자락의 판소리처럼 물 흐르듯 쏟아진다. 특히 부안의 내소사와 개암사를 소개하며 “소중한 아름다움을 끝끝내 지켜운 절집들”이라고 했는데, <산사 순례>에 묶인 절들 대부분이 개성이 다름에도 소중한 아름다움을 산속 깊은 곳에서 끝끝내 지켜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소개되는 영주 부석사에는 유홍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짧게 소개된다. 외가댁 건너편 왕방마을에 어린애들을 모아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해 ‘양달대포’라는 별명을 가진 아저씨가 살았다고 한다. 산사의 절경을 ‘알고보면 더 잘 보이는 지식’으로 재미있게 늘어놓는 유홍준이야말로 ‘양달대포’가 아닌가 싶다.
산사의 서정
교동 고분군은 아무런 내력을 모르고 보아도 그 자체로 신비롭고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곳이 잃어버린 왕국 비화가야의 유적임을 떠올리면 그 아름다움이 애잔한 서정으로 바뀌면서 마치 눈망울이 젖은 미인의 애틋한 얼굴 같기도 하고, 수능시험 잘못 본 딸아들 둔 엄마의 수심 어린 얼굴처럼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2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