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③] <렛미폴> <신들의 땅> <내 몸의 기억들>
2018-09-26
글 : 전효진 (객원기자)

<렛미폴> Let Me Fall

발드빈 조포니아손 / 아이슬란드, 핀란드, 독일 / 2018년 / 136분 / 월드 시네마

영화의 첫 장면에는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순진한 표정을 한 10대 소녀 매그니아가 있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매그니아의 삶은 친구 스텔라를 만나면서 점차 나락으로 떨어진다. 늘어선 술병, 자욱한 담배 연기, 질주하는 파티가 감각적인 화면과 사운드로 재구성된다. 청춘의 방황을 그린 수많은 영화가 떠오르지만 <렛미폴>의 시도는 일탈을 그리는 여느 영화와 맥락을 달리한다. <렛미폴>은 돌이킬 수 없는 무너짐의 순간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 심연의 끝이 어디인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발드빈 조포니아손 감독은 실제 약물 중독 청소년의 가족들과 인터뷰를 해 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고요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를 배경으로, 약물 중독에 처참히 망가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연기한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관객을 압도한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플롯 또한 비극을 극대화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신들의 땅> Land from God

케빈 피아몬테 / 필리핀 / 2017년 / 62분 /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보라카이의 투어리스티피케이션(주거지역이 관광지화되면서 기존 거주민이 이주하는 현상) 문제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천국의 섬이라 불리는 필리핀의 대표 휴양지 보라카이. 이곳에는 백사장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아띠족’이 있다. 까만 피부와 곱슬머리가 특징인 이들은 보라카이섬이 관광지로 유명세를 치르기 한참 전부터 이곳에 살던 원주민이다. 해마다 섬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호텔과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아띠족이 설 자리는 줄어들었다. 개발을 시작한 사람들은 아띠족의 원시적인 삶의 방식이 관광지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아띠족을 쫓아냈다. 카메라는 보라카이섬의 아름다운 경관 대신 그곳에 오랫동안 존재했지만 조명되지 않았던 문제를 파고든다. 자신들의 땅에서 배제된 아띠족의 목소리, 공존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아띠족의 권리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균형감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올해 초 환경 오염 문제로 보라카이섬의 전면 폐쇄가 결정되기 몇달 전 촬영되었다.

<내 몸의 기억들> Memories Of My Body

가린 누그로호 / 인도네시아 / 2018년 / 106분 / 아시아영화의 창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거장 가린 누그로호의 신작. 인도네시아 사회의 정치·문화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탐구해온 가린 누그로호가 이번에는 신체와 젠더의 영역에 주목한다. 주인공은 인도네시아 전통 춤 댄서 와휴 주노. 영화는 그의 삶을 덤덤히 훑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후 춤을 배우기 시작하고,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며 무용수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진다. 영화는 성소수자인 개인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것에서 나아가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제목에 암시된 바대로, 그가 겪는 모든 경험과 차별은 몸에 아로새겨지고 그것은 곧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부가 된다. 영화의 중간중간에는 성인이 된 와휴 주노가 춤추는 장면들이 삽입된다. 그는 자신의 몸을 통해 성장기의 기억들을 감각적으로 재현한다. 그의 아름다운 움직임은 남성과 여성으로 이분화된 젠더의 경계를 허물기에 충분하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경쟁부문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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