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⑧]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이장호 감독, <별들의 고향> <바람 불어 좋은 날>부터 최근작 <시선>까지
2018-09-26
글 : 김성훈
자유로운 리얼리스트, 그와 재회하다
<바람 불어 좋은 날>

그는 충무로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한해 제작된 120편의 한국영화 중에서 관객수 5만명을 넘긴 영화가 15편이 채 되지 않았던 암흑기에, 그의 데뷔작은 46만여명이나 불러모았다. 서울의 명보극장 한 군데에서만 말이다. 통기타 음악, 청바지, 생맥주 등 청년 문화 바람을 일으켰고,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이라는 대사가 유신 시대에 억눌렸던 대중의 감수성을 건드린 이 영화는 <별들의 고향>(1974)이다. 20살에 당대 최고의 스튜디오인 신필름에 입사해 10년 가까이 신상옥 감독의 연출부로 일하며 어깨너머로 영화 연출을 배운 게 전부인 이장호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29살이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선정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은 이장호 감독이다. 데뷔작 <별들의 고향>을 포함해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과부춤>(1983), <바보선언>(1983), <어우동>(1985),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시선>(2013) 등 그의 1970, 80년대 대표작 7편과 최근작 <시선>을 합쳐 총 8편이 상영된다.

최인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별들의 고향>은 패기 넘치는 신예 이장호의 등장을 알린 작품이다. 주인공 경아(안인숙)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첫 남자와의 사랑에 실패한 뒤 두 번째, 세 번째 남자로부터 연달아 배신을 당하고,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아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해 자살을 선택하는 비극이다. “충무로의 관습에 따르지 않고 손에 원작 소설을 쥔 채 즉흥적으로 찍고, 후반작업에서 구성”한 이 이야기는 젊은 기운이 충만했다. 이장호 감독은 이 영화를 찍은 뒤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감독 자격을 박탈당하고 활동을 쉬었다.

<별들의 고향>

그의 4년 만의 복귀작인 <바람 불어 좋은 날>은 덕배(안성기), 춘식(이영호), 길남(김성찬) 등 농촌에서 상경한 젊은이들의 사연을 리얼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강남 개발지를 둘러싸고 시골 청년들의 순진한 꿈과 좌절을 그려낸 이야기로, 민중의 삶을 농밀하게 담아냈다. 연세대를 졸업한 뒤 현대종합상사에서 일하다가 충무로로 뛰어든 배창호 감독이 조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동철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어둠의 자식들>은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화려해진 도시의 뒷골목에 있는 창녀촌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이곳에서 영애(나영희)는 딸을 병으로 잃고 난 뒤 돈밖에 모르는 여자가 된다. 그러다가 다른 창녀가 아이를 낳고 죽자 영애는 그 아이를 데려와 자신의 딸처럼 애지중지하며 키운다.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을 거뒀지만 평단으로부터 만장일치의 호평을 받진 못했다.

“옛날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스포츠에만 열광하고 영화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영화감독은 자살을 결심하였습니다.” <바보선언>은 한 소년의 내레이션과 함께 한 영화감독(이장호)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며 시작된다. 이 영화는 주인공 동철(김명곤)과 창녀 혜영(이보희)이 오락실, 해변가, 이대 앞, 국회 등 여러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인과관계에 따라 전개되는 보통 상업영화와 달리 플롯과 플롯이 느슨하게 이어지고, 인물의 연기는 무성영화 속 배우처럼 과장됐는데 그러한 요소들이 가진 에너지가 매우 전복적이고 신선했다.

이 밖에도 <과부춤>은 세 과부 이야기를 마당극처럼 신명나게 풀어나간 옴니버스영화고, <어우동>은 조선 최고의 성 스캔들을 일으켰던 어우동 야사를 각색해 이장호에게 흥행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작품이며,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김명곤과 이보희를 데리고 전국을 돌며 실험적으로 찍었던 그의 마지막 걸작이었다. 이처럼 이장호 감독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새로운 리얼리즘을 선보였고,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충무로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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