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여성 영화인들④] 최은희 감독 - 메가폰을 든 스타
2018-10-03
글 : 공영민 (영화사 연구자)
최은희 1926~2018
<총각선생> 현장에서의 최은희 감독(왼쪽).

배우 최은희의 이력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화려하다. 1943년 연극 무대로 데뷔한 최은희는 1947년 <새로운 맹서>(감독 신경균)로 스크린에 데뷔한 후 1950~6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부동의 ‘스타’였다. 따라서 박남옥, 홍은원에 이은 한국영화사상 세 번째 여성감독이라는 칭호는 배우 최은희의 화려한 명성을 장식하는 ‘특별한 이력’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감독 데뷔 당시에도 하락하는 인기를 만회하기 위한 ‘선전효과’로 크레딧에 이름만 올린 것이라는 세간의 의심과 비판이 따라붙기도 했다. 이러한 시선에 대해 최은희는 ‘인기의 하락’과는 선을 긋되 자의보다는 신상옥 감독의 꾸준한 권유로 연출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데뷔작인 <민며느리>(1965)를 시작으로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까지 ‘감독 최은희’보다는 ‘스타 최은희의 감독작’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흥행을 위한 홍보 아이디어로 시작

공교롭게도 감독 최은희는 신필름의 위기와 변화 국면마다 등장했다. <민며느리>가 발표된 1965년 한국영화계는 200여편에 가까운 제작편수, 청춘멜로드라마·스릴러액션·만주활극액션 등 다양한 장르영화들의 인기, 새로운 스타들의 등장으로 호황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생필름의 부족, 컬러영화와 와이드스크린의 도입, 그리고 물가 상승에 따른 제작비 증가로 영화산업 내부에서는 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또한 배급·상영 환경에 비해 과잉 생산되는 제작편수로 한국영화 내부의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진 데다 ‘007’ 등 스파이물을 중심으로 한 외국영화와의 경쟁력에서도 뒤처지는 형편이었다. <성춘향>(감독 신상옥, 1961) 이후 승승장구하던 ‘대메이커’ 신필름조차 부채로 위기에 처한 것이 바로 196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의 상황이었다. 신필름은 경영 위기에 처하자 홍콩과의 합작영화 제작, 문예영화 제작, 인기 드라마의 영화화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흥행을 위한 홍보 아이디어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바로 최은희의 감독 데뷔였다.

‘스타 최은희의 감독 데뷔’는 신필름의 시스템하에서 안전한 방향으로 기획됐다. 신필름은 최은희의 스타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는 사극 장르 중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이서구 원작의 TV연속극 <민며느리>를 데뷔작으로 선택했다. 순종적인 성품의 민며느리가 온갖 고초를 이겨내고 꼬마 신랑과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이야기는 전작인 <벙어리 삼룡>(감독 신상옥, 1964)으로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을 거둔 최은희의 고전적인 이미지를 이어갈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민며느리>는 ‘인기 드라마를 영화화해 추석에 개봉하는 최은희 감독·주연의 신파 사극’의 모습을 갖추고 ‘최은희의 감독 데뷔’에 홍보 포커스를 맞췄다. 원작의 이름값과 신필름이라는 브랜드를 생각한다면 영화의 제작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톱스타 최은희의 감독 데뷔는 큰 화제가 되어 <민며느리>는 1965년 추석 대목 프로 12편(한국영화 6편, 외국영화 6편) 중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다. 기대한 ‘선전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아 흥행에서는 평균 수준인 5만여명을 동원하며 현상 유지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최은희의 감독 데뷔는 간판스타 최은희의 건재를 알리는 동시에 새로운 기획에 도전하는 신필름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단 한번의 외유로 끝날 줄 알았던 최은희의 감독 이력은 1967년 <공주님의 짝사랑>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연출작 역시 신필름이 직면한 새로운 위기 상황에서 등장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신필름은 1966년 안양촬영소를 인수하며 명실상부한 메이저 스튜디오의 모습을 갖췄지만 무리한 확장으로 다시 한번 심각한 경영 위기에 처하게 됐다. 신필름은 새롭게 출발한 촬영소와 영화사 그리고 신필름 연기실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공주님의 짝사랑>을 제작하며 다시 한번 ‘감독 최은희’라는 브랜드를 활용했다. 따라서 <공주님의 짝사랑>은 <민며느리>에 이어 ‘신필름의 건재와 새로운 출발’을 홍보하기 위해 기획된 작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은희는 배우의 역할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감독 역할만 맡았다. 두번째 변화는 제작규모에 있었다. 궁중사극이라는 배경을 활용한 다양한 로케이션과 스튜디오 촬영, 화려한 의상과 소품, 신필름 연기실 연구생들을 활용한 군중 신 등에서 <민며느리>에 비해 눈에 띄게 커진 스케일이 드러났다.

영화의 규모와는 별개로 <공주님의 짝사랑>의 홍보는 여전히 ‘스타 최은희’에 포커스를 맞췄다. 하지만 <민며느리>가 감독 못지않게 주연배우인 최은희를 강조한 것과는 달리 <공주님의 짝사랑>은 주연을 맡은 신예 남정임, 김광수와 발랄하고 이색적인 러브 스토리를 강조하며 젊은 관객에게 어필했다. 대신 최은희라는 브랜드는 ‘제2회 작품’을 발표한 전문 감독으로 자리했다. ‘감독 최은희’는 남정임 외에도 한은진, 조미령, 전계현, 강미애 등의 스타진과 함께 이 영화를 ‘여성영화’로 홍보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당시 <경향신문>에 따르면, 신필름은 개봉 전 ‘여류인사 초청 시사회’를 개최해 <공주님의 짝사랑>이 여성감독과 여성배우 중심으로 제작된 영화라는 것을 강조했다.

신필름이 내리막길에 있던 1972년 최은희는 세 번째 작품 <총각선생>을 연출했다. 신일룡, 나오미가 주연한 이 영화는 최은희가 감독한 첫 번째 현대물이었으며, 제작도 신필름이 아닌 새한필름이 맡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홍보는 ‘스타 최은희의 제3회 감독작’에 맞춰졌다. 한 가지 덧붙여진 점이 있다면 앞선 두편의 영화에서 신필름 연기실의 연구생들을 동원했던 것처럼 <총각선생> 역시 최은희가 교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의 학생들을 총출연시키며 감독 최은희뿐만 아니라 연기를 지도하는 ‘교육자 최은희’의 이미지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총각선생>은 관객 2만여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최은희와 신상옥의 관계가 파국을 맞고, 그들의 납북사건이 일어나며 남한에서 최은희의 감독 이력은 끝을 맺었다. 그리고 1984년 북한에서 발표한 <약속>까지, 최은희의 감독작은 총 4편으로 마무리됐다.

감독 최은희라는 브랜드가 비록 신필름이라는 시스템과 기획에서 탄생됐고, 최은희 자신조차 연출 배경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제작 상황과 작품의 캐릭터를 통해 최은희 개인의 욕망을 엿볼 수 있다. 감독 데뷔를 앞둔 당시 최은희는 배우로서 여러 가지 편견과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 <맨발의 청춘>(감독 김기덕, 1964)으로 시작된 청춘영화 붐과 고은아, 남정임, 문희 등 대형급 신인배우들의 등장은 한국영화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신호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우 최은희의 입지는 점점 줄어든 게 사실이었다. 새롭게 대두된 젊은 관객에게 최은희는 여전히 ‘성춘향’을 상징하는 대배우였을지는 몰라도 유행을 주도하는 청춘스타는 아니었다. 신필름에도 최은희라는 스타 브랜드가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대중에게 고착된 지고지순한 여인상으로서 최은희의 이미지는 단점이 되기도 했다. 최은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한계 때문에 연기의 깊이와 폭을 넓힐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녀는 “천편일률적으로 남편에 순종하고 어떠한 고생도 감내하는 주체성이 없는 단순한 도덕적인 여인”을 벗어나 “극한상황에 처한 적나라한 여성의 역할”을 꿈꿨다(최은희 인터뷰, “나의 순정파 연기는 모든 여인상의 모태”, <주부생활>, 1966년 1월호, 학원사).

“주체성 있는 적극적인 여성”을 구현

이러한 상황에서 주어진 감독이라는 길은 어쩌면 연기에 대한 갈망을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됐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영화를 통해 적극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배우이자 감독 최은희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공주님의 짝사랑>의 경우 궁중 법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쩌면 배우 최은희가 꿈꾸던 또 다른 자아를 표출한 것인지도 모른다. 남성과의 대등한 관계를 위해 스스로 공주의 자리를 내려놓는 영화의 결말은 (앞서 인용한 같은 인터뷰에서 얘기한) “픽션의 세계인 영화에서”나마 최은희가 보여주고 싶어 했던 “주체성 있는 적극적인 여성”을 구현해냈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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