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례는 1957년 8월 20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연극영화학과에 재학하면서 스승 유현목 감독의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한국영화사의 거장 유현목의 조감독으로 여성이 등장하자 여성감독이 드문 영화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졸업 후 김호선의 조감독을 거치는 등 현장 경험을 더 쌓은 이미례는 1984년에 <수렁에서 건진 내 딸>로 데뷔했다.
데뷔작 <수렁에서 건진 내 딸> 큰 흥행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은 비행청소년 문제를 다룬 가족영화이다. 모범생이었던 유리는 아버지의 외도로 인한 부모의 불화를 겪으면서 방황하기 시작하는데, 딸을 수렁에서 구해내려는 부모의 악전고투가 눈물겹다. 특히 심리치료와 상담 개념이 거의 없었던 시대에, 청소년 문제 담당자가 부모에게 딸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제시하는 방안들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개봉한 해에 한국영화 흥행 순위 5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에서 유리 역을 맡은 김진아(한국영화사의 대스타 김진규와 배우 김보애의 딸이다. 김보애는 유리의 엄마 역을 연기했다)는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미례는 성공적인 데뷔작을 통해 박남옥, 홍은원, 최은희, 황혜미 이후, 한국영화계가 처음으로 건져낸 여성감독으로 주목을 받았다. 여성감독 자체가 별종으로 취급받는 시대에 ‘파마머리’에 담배를 물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28살의 여성감독 이미례는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미례의 두 번째 영화는 1985년의 <고추밭의 양배추>. 에로티시즘 영화가 한국영화의 주류를 이루는 시절이었기에 이 영화 역시 제목만으로는 그런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7년 동안 대학을 다니고 있는 수환이 오지랖이 넓어 사사건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이미례의 세 번째 영화는 1987년의 <물망초>. 감독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손꼽는 이 멜로드라마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부유하고 철없는 남학생 철수와 예쁘고 생활력 강한 여학생 영희가 오로지 사랑의 힘만을 믿고 대학생 부부가 되는 사건을 저지른다. 그들은 ‘철없는 애송이 부부’라는 사회의 편견을 깨고 꿋꿋하게 자립하려고 분투한다. 그들은 아이까지 낳아 키우며 악전고투하지만, 철수가 불치병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젊은이들의 발랄한 분투기가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리면서 짙은 여운을 남긴다. 영희는 한국영화의 여주인공 대부분이 매춘부와 호스티스였던 시기에 씩씩하고 활달한 캐릭터로서 주목할 만하다. 철수 역은 당시 스타로 발돋움하던 최재성이 맡아 눈길을 끈다. 이 영화를 찍은 다음 해인 1988년, 이미례는 2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이미례는 1987년에 <학창보고서>, 1990년에 <영심이>, 1991년에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를 연출했다. 모두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하이틴영화이다. 이 시기 한국영화에서 하이틴영화가 유행한 데다 여성감독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다.
세편 가운데 특히 배금택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심이>는 평범한 여고생 영심이가 가정과 학교에서 겪을 수 있는 사건들을 코믹하게 그려내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가요계의 최고 스타였던 댄스가수 박남정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이재은, 김민종, 이경영, 노사연 등 화려한 출연진도 화제를 모았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박남정과 백댄서들이 출연해 박진감 넘치는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인다. 가수 노사연의 코믹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1990년 ‘한국영화 베스트10’에 선정되었다. <학창보고서>는 열등학급으로 전학 온 주인공 창하가 스터디그룹을 결성하고 학우들을 다독여 학급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이야기이다. 이상아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무용수의 꿈이 좌절되자 방황하는 해리 역을 맡았다.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는 새로 부임한 젊은 남자 교사가 주인공이다. 그는 학생들을 변호하다 교장과 마찰을 빚기 일쑤인데, 결국 문제 학생을 위기에서 구해주려다 희생하게 된다. 학생들은 비로소 스승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오열한다. 이미례의 하이틴영화는 모범학생이 아니라 평범하거나 다소 불량한 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들이 즐기는 하위문화를 다채롭고 코믹하게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이미례는 작품으로 인정받거나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고, 당시까지는 유일하게 6편의 영화를 찍은 여성감독이자 영화계의 홍일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계속 주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영화계를 떠나게 된다. 인터뷰에 따르면, “제작자들이 깊이도 없는 청소년영화만 맡기는 바람에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계속 청소년영화만 하라고 하니,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쿼터 맞추려고, 아니면 장사하려고 한국영화 찍는 분위기도 싫고, 청소년 영화감독으로 꼬리표가 붙는 것도 싫었다. 이래저래 탈진해서 영화를 놓아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미례는 영화 대신 공중파의 방송다큐멘터리, EBS의 <육아일기> 등을 연출했다. 그리고 프로덕션 ‘미례비전’을 설립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우석대 영상학부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여행을 다니고 벗들과 어울리며 한가하게 쉬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여섯편의 영화, TV, 독신 생활, 교수로서의 일…
이미례는 1996년, 독신 생활의 노하우를 집약한 책 <모르면 큰일나는 혼자살기 테크닉>을 출판했다. 이 책을 내면서 그녀는 “혼자 사는 게 꽤 재미있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나를 위해 요리를 만들고 청소를 했다. 그런 노력이 독신 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관건인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나날이 늘어가는 독신 여성을 위해 책을 썼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으로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1997년 5월, 그녀는 등산전문잡지 <사람과 산> 편집부장이자 산악인인 박기성과 결혼했다.
이미례는 애초에 영화계를 완전히 떠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한동안 쉬려고 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사이 10년이 훌쩍 흘러가고 말았다. 2001년, 그녀는 산악영화 <화이트 케어>를 들고 컴백하려고 했다. 백두대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두 여성이 산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여성 버디무비가 될 예정이었다. 시나리오 작업도 잘 끝냈고 제작자도 나선 상태였기에 바로 제작에 들어갈 듯했지만, 이미례가 10년 만에 영화계로 돌아온다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끝내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07년, 이미례가 쓴 시나리오를 원작으로 <안나푸르나>라는 연극이 개막했다. 1999년, 산악인 엄홍길과 함께 안나푸르나를 등반하고, 하산길에 실종된 여성 산악인 지현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다. 여기에 여성 산악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들의 견고하고 끈끈한 우정을 담아내려고 했다. 이미례는 <안나푸르나>가 반드시 만들고 싶은 꿈같은 영화이기에, 저예산 독립영화로 직접 제작하려고까지 했으나 결국 영화화하지는 못했다.
2008년, 이미례는 여성영화인모임이 주최하는 ‘2008 여성 영화인축제’에서 ‘올해의 여성 영화인 공로상’을 받았다. 여성 영화인이 없는 환경에서 후배 여성들을 위해 길을 터준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미례는 영화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다짐해왔지만, 현재는 2005년에 문을 연 음식점 ‘여자만’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남편의 고향이 전남 고흥인 데다 시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아 비법을 전수받다보니 음식 솜씨가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영화 제작이 계속 무산되자 먹고살기 위해 음식점을 차리게 되었는데, 인사동 맛집으로 대박이 나면서 분점까지 여는 성공을 거두었다.
여전히 이미례는 한국영화사에서 여섯편의 영화를 연출한 몇 안 되는 여성감독으로 기록되고 있다. “죽을 때까지 영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 그게 가장 행복한 삶일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던 그녀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새로운 신화를 쓰게 될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