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들④] <아워바디> 한가람 감독 - 몸을 통해 건강한 여성의 에너지를 표현하기
2018-10-24
글 : 이주현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아워바디>는 고시합격의 길은 멀기만 하고 취업의 문턱은 좁기만 해 번번이 실패를 경험하는 주인공 자영(최희서)을 통해 청년 세대의 답답한 현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자영에게 섹슈얼리티라는 새로운 탐구영역을 제시한다. <아워바디>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연출전공 33기 출신인 한가람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청년 세대’이자 ‘여성’으로서 감독 개인의 경험을 많이 반영했다는 <아워바디>는 자영을 연기한 배우 최희서의 극사실적인 연기와 섬세한 연출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아워바디>의 주인공 최희서는 제23회 부산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미래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청년 세대의 좌절과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결합했다. 어떻게 구상한 이야기인가.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연구과정을 준비할 때부터 청년 세대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당시 운동이라곤 모르고 평범하게 살던 지인이 갑자기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내게도 운동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 사람의 심리가 궁금해서 ‘왜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냐’고 물어봤는데, 운동에 빠지게 된 이유가 암울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나 역시 취업을 못해서 마음고생이 심하던 때였다. 그때 운동을 열심히 하던 지인이 그런 말을 했다. ‘살면서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몸만은 운동한 만큼 변하더라. 그래서 운동을 그만둘 수가 없다.’ 그 말을 듣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업 준비생의 좌절, 삶의 전환점이 되는 달리기, 몸에 대한 자신감, 섹슈얼리티의 발견 등 시나리오를 써나가는 과정에서 좀더 집중한 키워드는 무엇인가.

=평범한 내 또래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아워바디>를 여성영화로 받아들이는 게 신기했다.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청년 세대의 이야기가 영화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에 주인공은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주인공의 단짝 친구도 여자일 거고, 가족으로는 엄마와 여동생이 등장하면 좋겠다 싶어서 하나씩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그 과정이 내게는 자연스러웠는데, 얼마나 여자들이 나오는 영화가 없었으면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이렇게 집중을 하나 싶더라.

-영화가 자영의 변화를 따라가는 만큼 자영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캐릭터의 매력을 부각하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자영의 경우, 고시 공부를 오래했던 친구들을 보고 느낀 것들을 많이 반영했다. 영화에선 자영이 현주(안지혜)를 동경하지만, 현주와는 다른 자영만의 강함이 있다고 봤다. 자기 얘기나 주장을 세게 하지 않지만 강한 근성이 있는 사람,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누구보다도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의 기질이 잘 표현되길 바랐다.

-자영은 달리기를 하는 건강한 현주에게 자극을 받고 끌린다. 그 끌림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실제 내 경험을 반영한 부분인데, 백수 시절에 할 일이 없어 한강에 자주 나갔다. 운동복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한강공원을 왔다 갔다 하는데, 뒤에서 갑자기 어떤 여자가 ‘좀 지나갈게요’ 하고 뛰어가더라. 여자 뒤에는 남자 두명이 함께 뛰고 있고. 그 순간 ‘저 여자는 나랑 너무 다르다. 나와는 달리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를 부러운 마음도 들었고. 영화에서도 그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두 사람 사이에 동성애 코드가 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그런 의도는 없었다. 최근에 최은영 작가의 소설 <쇼코의 미소>를 읽었다. 거기 나오는 한 구절이 자영과 현주의 관계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것 같다. ‘어떤 우정은 연애 같고 어떤 연애는 우정 같다.’ 누군가를 동경하는 마음은 성적인 끌림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졌을 때 ‘이건 우정이고 이건 성적인 관심이야’라고 딱 잘라 구분짓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복합적인 감정이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적인 끌림으로 표현하려 하진 않았다.

-현주를 만나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자영은 날씬해지고 화장도 하고 옷도 갖춰 입기 시작한다. 외모의 자신감이 일상의 자신감으로 연결되는 지점에선,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적 시선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가능할 듯한데.

=달리기를 하기 전후의 신체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최희서 배우가 몸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신체의 변화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생각한 건 예쁜 몸이 아니라 건강한 몸이었다. 현주 역할을 캐스팅 할 때도, 날씬한 배우들은 많은데 강한 몸을 가진 배우가 의외로 없어서 어려웠다. 자영이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도 날씬해져서, 예쁜 옷을 입어서가 아니라 몸에 근육이 붙고 강해져서 새로운 아우라가 생겼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의 에너지가 변화를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결말은 자신을 옭아매던 것으로부터 자영이 완전히 자유로워졌다는 뜻인가.

=결말이 시원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웃음) 하지만 영화를 통해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인 것 같다. 결말에 이르러 자영은 지금껏 자신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자신의 몸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자영이 오롯이 자기의 몸을 느끼는 결말을 만들었다. 그걸 건강하게 찍고 싶었다.

-<박열>(2017)의 후미코로 놀라운 카리스마를 보여준 최희서를 캐스팅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온 배우들의 프로필을 살펴보는데, 최희서 배우의 얼굴이 바로 내가 찾던 얼굴이었다.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근성이 느껴지는 얼굴! 그때가 <박열> 개봉 직전이었고, 나는 최희서 배우가 <박열>을 찍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카데미 동기들은 <박열> 이후 최희서 배우와 독립영화 작업하는 건 힘들지 않겠냐 했지만 일단 물어는 봐야겠다 싶어서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기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웃음) 최희서 배우는 늘 첫 테이크가 좋았다. 준비를 워낙 많이 해오지만 본능적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이 좋다.

-작품상만큼이나 배우상에 대한 기대도 클 것 같다(올해의 배우상 수상 이전에 인터뷰가 진행됐다.-편집자).

=7개월 동안 편집하면서 매일 자영의 얼굴을 봤다. 자연스럽게 매일 최희서 배우를 생각했다. 편집 과정에서 우선했던 것도 자영의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거였다. 배우상을 통해 고생한 배우들이 조금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다면 감독으로서 당연히 기쁠 것 같다.

■ 시놉시스_ 행정고시에 매진하느라 책상 앞에서 자신의 20대를 모두 보낸 자영(최희서)은 문득 시험을 포기하기로 한다. 남자친구에게도 차여 우울한 어느 날, 자영은 맥주나 마시러 공원에 외출했다가 열심히 달리기를하는 현주(안지혜)를 보고 그녀의 건강한 에너지에 매료된다. 현주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달리기는 자영의 삶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낮에는 친구 민지가 일하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달리기를 하며 삶의 의욕을 되찾아가던 자영은 그러나 현주의 갑작스런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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