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들②] <영주> 차성덕 감독 - 불편한 것을 들춰보는 이야기에 끌린다
2018-10-24
글 : 임수연
사진 : 김종훈 (객원기자)

<영주>는 가장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서 절실했던 애정을 받는 소녀의 아이러니를 그린다. 그는 부모를 죽게 만든 교통사고의 가해자를 찾아갔다가 상문(유재명)과 향숙(김호정) 부부가 보여주는 친절함에 마음이 풀어지고,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들을 좋아하게 된다. <미쓰 홍당무>(2008), <비밀은 없다>(2015)의 스크립터를 거쳐 첫 장편영화를 만든 차성덕 감독도 극중 영주처럼 10대 시절 부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20살 때 학교 실습시간에 썼던 한줄의 시놉시스에서 시작한 영화다. 문득 내 부모를 죽게 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이야기를 끝내야지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주>는 올해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상영된 작품 중 가장 먼저 개봉이 확정되어 11월 22일 관객을 만난다.

-향숙은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영주에게 선의를 베푸는 인자한 인물이다. 부모를 죽게 한 가해자 가족의 캐릭터를 이렇게 상상한 이유가 있나.

=향숙이 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과 남편 때문에 받은 고통을 감내한 시간 덕분에 그 호의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상상한 가해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자기 삶의 아픔이 있는 사람일 거 같더라. 또한 향숙과 영주는 삶에서 뜻하지 않은 비극이 툭 하고 떨어진 후 이를 감내하며 가정을 지켜온 인물들이다. 향숙은 영주를 보고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선뜻 마음을 줄 수 있었다. 영주에게 마땅히 필요한 어른의 관심을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좋아하면 안되는 누군가가 주는 이야기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영주는 자기조차 모르는 마음속 구멍을 깨닫는다.

-상문과 영주의 관계는 좀더 직접적이다. 상문이 낸 교통사고로 영주의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술에 취해서 영주를 자신의 아들로 착각하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상문은 가장 직접적인 가해자인 동시에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다. 상문은 차라리 누군가가 와서 자길 죽여줬으면 하는 사람이며, 죽지 못해서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영주 또한 책임감을 느끼고 가정을 지탱하려 하지만 그 역시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상문과의 관계에는 그런 식의 접점이 있다. 영주는 1차원적으로 누군가를 원망하는 대신 그들을 만나면서 마음에 약간의 균열이 계속 생기고, 그 틈으로 자랄 수 있게 된다.

-파격적인 감정선을 다룬 만큼 엔딩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원래 시나리오는 지금 영화보다 앞뒤 이야기가 더 있었다. 다른 버전의 엔딩도 있었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지금 <영주>의 엔딩, 딱 거기까지인 것 같더라. 수미상관 구조로 썼던 기존 시나리오는 너무 쉬운 결론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꾹꾹 눌러가며 영주처럼 걸어왔던 영화는 영주처럼 끝나야 했다. 촬영보다 편집이 더 큰 과제로 다가와서 후반작업만 거의 1년이 걸렸다.

-올해 한국영화 섹션에 초청된 작품 중 가장 캐스팅이 화려하다.

=(김)향기를 만나자마자 그가 연기하는 영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나리오상 나이도 낮췄다. 현장에서 그는 아역배우나 어린 소녀가 아니라 그냥 배우였고, 함께 작업하면서 많이 감탄했다. 지금 향기한테 굉장히 중요한 시기일 텐데, 이 시기에 함께 <영주>를 해준 것이 나에겐 큰 행운이었다. 상문은 포인트만 있는 캐릭터라 굉장한 존재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주나 향숙은 생략된 분량도 있지만 상문은 촬영 분량 100%를 다 영화에 썼다. (유)재명 선배님은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기 전에 만났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나 다른 단편영화를 봤을 때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 분이면 진지한 캐릭터는 당연히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김)호정 선배님은 워낙 좋아하는 배우였다. 향숙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묶이지 않아야 하는 캐릭터였는데 선배님은 원래 그런 존재감을 보여줬었다. 그외 영인을 연기한 탕준상도 정말 좋아하는 배우다. 앞으로 더욱더 성장할 친구다.

-그동안 영화 연출을 공부하면서 특별히 영향을 받은 감독이 있나.

=이창동, 켄 로치, 에드워드 양, 다르덴 형제처럼 이야기의 힘을 알고, 정직하고 진실한 시선을 가진 감독을 좋아한다. 스타일은 다 달라도 영화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는 기본을 가르쳐준 분들이다. 켄 로치 감독이 “스타일은 이야기에 복무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앞으로도 그 태도를 갖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두세 가지 아이템을 염두에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뜻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진 후 남겨진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다. 좀더 장르적이고 상업적인 작품을 할 것 같다. 그리고 영화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관객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영화를 보기 전과 후가 달라지는, 영화가 끝난 후 자리를 툭툭 털고 나올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1957), 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1967)…. 어떤 식으로든 불편한 것을 들춰보는 이야기를 나 역시 꾸준히 하고 싶다.

■ 시놉시스_ 영주(김향기)는 사고뭉치 동생 영인(탕준상)을 보살피며 사는 18살 소녀 가장이다. 그는 합의금을 내지 않으면 소년원에 갈 위기에 처한 동생 때문에 심란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부모의 교통사고 관련 판결문을 읽다가 가해자의 집 주소를 발견한 영주는 무작정 그들을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가해자인 상문(유재명)과 향숙(김호정)의 두부 가게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영주. 하지만 동생의 합의금도 내주고 검정고시 준비까지 도와주는 부부의 친절함에 처음과 다른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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