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들⑤] <메기> 이옥섭 감독 - 위로와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있었으면
2018-10-24
글 : 김성훈
사진 : 김희언 (객원기자)

<메기>는 꼭 열성팬들을 몰고 다니는 인기 아이돌 그룹 같았다. 관객과의 대화는 팬미팅을 방불케 할 만큼 열기가 뜨거웠고, 관객은 이옥섭 감독이나 배우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쫑긋 세웠다. 배우 이주영을 응원하는 플래카드도 간간이 보였다. 분명한 건 이 영화가 <4학년 보경이>(2014), <연애다큐>(2015), <걸스 온 탑>(2017), <세 마리>(2018) 등 여러 단편영화에서 보여준 이옥섭 감독의 색깔을 충실하게 유지하되, 전형적인 서사 문법에 얽매여 있지 않으면서 느슨하게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에피소드들을 재기 넘치게 연결한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메기>는 CGV아트하우스상을 포함해 시민평론가상, KBS 독립영화상, 올해의 배우상(이주영 수상) 등 올해 영화제의 굵직굵직한 상 4개를 싹쓸이했다. “시상식 직전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어 숙소에서 누워 있었다. 구교환 선배가 다른 수상자를 축하해주러 가야 한다고 해서 박수치러 간 건데 수상자로 호명받을 줄은 전혀 몰랐다. (웃음)” 그의 첫 장편영화가 가능성을 입증한 순간이다.

<메기>는 어느 병원에서 이상한 엑스레이가 돌아다니면서 시작된다. 그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다가 찍힌 사진이다. 병원 사람들이 사진 속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하는 가운데, 윤영(이주영)과 그의 애인 성원(구교환)은 그게 자신들일 거라고 짐작한다. 다음날 윤영은 사직서를 들고 이경진 병원 부원장(문소리) 을 찾아간다. 이경진 부원장은 엑스레이가 윤영의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한다. 서사는 크게 두 줄기로 전개된다. 하나는 엑스레이를 둘러싼 병원 사람들의 이야기고, 또 하나는 윤영과 성원 두 연인에 관한 이야기다.

때때로 믿음은 모래성과 같다. 확인하지 않거나 확인이 어려운 의심에서 나온 결과일수록 더욱 쉽게 무너지곤 한다. <메기>는 우리의 믿음이 어쩌면 불완전한 확신(과 그것에서 비롯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닐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살면서 진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거나, 거짓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던 순간들을 많이 겪었다. 오해가 커지는 걸 지켜보면서 어쩌면 세상은 오해를 견디면서 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에서 믿음에 대한 불안감이 항상 내재되어 있고, 그래서 믿음에 의문을 수시로 던진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인 <4학년 보경이>이나 <세 마리>의 한 대목도 연상된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영화제작 연구과정 시절에 썼던 시나리오도 주인공 여성이 새로 만난 남자가 누구를 죽였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는 이야기였다. 의도치 않았지만 믿음을 주제로 다룬 이야기를 많이 써왔다. 그건 아마도 평소 남들을 잘 못 믿어서 불안해하고, 다른 사람의 유혹에 잘 빠지는 나의 성격에서 나온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메기>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열네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평소 청년들의 다양한 모습을 다뤄온 이 감독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주문받은 키워드는 역시 청년(과 관련된 문제)이다. 사건의 발단이 되는 엑스레이 신도 여성들 사이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불법 촬영 문제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불법 촬영 문제와 관련된 기사가 나올 때마다 내가 찍혔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화장실에 갈 때 습관적으로 모자를 쓰는 것도 카메라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나온 행동이다.”

이옥섭 감독은 이야기 중간에 종종 등장하는 민물고기 메기를 통해 청년들을 따뜻하게 내려다본다. 메기는 “위로와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설정한 장치다. “특히 등장인물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작 <걸스 온 탑>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천우희가 메기 목소리를 맡았다. “얼굴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을 낯설지 않게 하기 위해 (천)우희씨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걸스 온 탑>에서 천우희가 연기한 우희는 천장이 낮고 추운 집안에서 선인장을 더이상 키울 수 없게 돼 이별을 결심하는 여자인데, 친구가 그런 우희에게 “그냥 곁에만 있어주면 되는 건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해준다. <걸스 온 탑>과 <메기>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우희가 친구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걸스 온 탑>), 메기가 되어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을 따뜻하게 지켜보는 존재가 됐다(<메기>)고 연결하면 지나친 과장이나 억지일까.

<메기>는 오랜 파트너인 구교환과 함께 상업영화를 준비하는 도중에 맡게 된 프로젝트인 만큼 “평소 시도해보고 싶은 건 모두 자유롭게 시도”했다. “상업영화의 규칙에 맞는 시나리오를 쓰다가 독립영화를 준비하니 ‘이렇게 가도 되나’ 싶을 만큼 온갖 시도를 다 했다. 지루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뭐라도 해야 했다. (웃음)” 문소리, 권해효, 동방우 등 연기 선수들이 힘을 보태준 덕분에 다소 느슨해 보이는 이야기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옥섭은 예측할 수 없는 변덕을 즐기는 작업자다. 그가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언제나 시나리오 이상의 자극과 기대를 준다”라는 파트너 구교환의 말대로 ‘이옥섭 월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의 다음 도전은 상업영화다. “<메기> 때문에 잠깐 중단된 프로젝트를 멈추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번 수상으로 이후 영화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이나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이야기가 될 지 모르지만 엉뚱한 그의 매력은 계속 볼 수 있을 듯하다.

■ 시놉시스_ 마리아사랑병원에서 이상한 엑스레이가 돌아다닌다. 그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병원 엑스레이실에서 섹스를 하다가 찍힌 것으로, 뼛속까지 드러나는 아주 적나라한(?) 사진이다. 병원 사람들이 사진 속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하는 가운데, 윤영(이주영)과 그의 애인 성원(구교환)은 사진 속 주인공이 자신들이 아닐까 의심하다가 자신들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한다. 이경진 병원 부원장(문소리)은 윤영이 문제의 당사자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윤영이 엑스레이를 들고 가는 걸 본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윤영에게 일을 잠깐 쉴 것을 권유한다. 이 일 때문에 병원을 그만둘까 잠깐 고민했던 윤영은 이 부원장의 말을 듣고 “엑스레이에 찍힌 사람은 내가 아니”라며 “병원을 계속 다니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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