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
STORY_ 소곤소곤 이야기가 들리는 고궁 산책로, 밤거리를 걷는 연인 지은(이지은)과 K(정준원). 평범한 연인의 산책 같아 보이지만 이들의 대화는 어딘가 수상쩍다.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으면서…”라는 지은의 핀잔에 “제멋대로 죽어버려놓고…”라고 응수하는 K. K의 꿈속에 나타난 죽은 연인 지은과의 대화. 꿈에서 깨면 사라질 시공간에서 연인이 안타까운 둘만의 밤을 걷는다.
“저녁 8시 종묘공원, 빨간 점 찍은 곳으로 오세요.” 첨부한 지도에는 제작진으로부터 온 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 촬영 현장이 표시되어 있다. 고궁 앞 산책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잿빛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미스터리한 날씨다. 이미 죽어버린 여자 지은의 걸음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있을까.
<밤을 걷다>의 연인은 특별하다. 외로웠던 지은은 얼마 전 죽어버렸고, 연인 K의 꿈속에 나타나 자신들의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본다. 흑백 화면, 유령이 된 연인을 바라보는 슬픈 정서가 바탕이지만 촬영장에서는 티격태격하는 여느 젊은 연인의 대사가 앞선다. 죽은 혼을 연기하지만 이지은이 표현하는 유령 역시 뭔가가 다르다. “죽음으로 헤어진 연인이 가진 슬픈 정서가 바탕이지만 귀엽고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가득한 캐릭터”라는 게 김종관 감독의 설명이다.
김종관 감독은 네편의 프로젝트 중 첫 번째 촬영의 스타트를 끊는 데다 ‘배우 이지은’의 첫 영화 데뷔작을 연출한다는 데 대한 부담도 있었다고 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와 같은 감정적으로 바닥을 치고 세게 보여주는 정서는 가져가되 좀 가볍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스럽고 귀여우면서도 쓸쓸한 정서만큼 북적임 없이 조용한 현장. 밤새 진행될 촬영장의 유일한 방해꾼은 조명을 보고 잔뜩 몰려온 여름 모기뿐. 첫 촬영이 이렇게 순조롭게 흘러간다. 2018.07.06